오피니언(사설,칼럼)

[일사일언] 꽃은 지고 녹음은 오래간다

설경. 2008. 5. 20. 13:19
봄을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산천에는 초목들이 무성하다. 도심을 벗어나 교외의 숲을 지날 때마다 신선한 공기에 자연의 고마움을 느낀다. 옛 시에 '푸른 나무와 향기로운 풀이, 꽃피는 시절보다 낫다(綠陰芳草勝花時)'고 한 것도 싱그러운 신록에 대한 예찬이다. 꽃은 필 때는 아름답지만 지고 나면 허무함만 남고, 짙어가는 녹음은 화려하진 않지만 풍부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매주 성균관 한림원에서 《통감절요(通鑑節要)》를 강의할 때면, 중국 전국(戰國)시대의 칠웅(七雄) 간의 정치문제를 다루며 치도(治道)와 인사(人事)를 논해본다. 이때마다 느끼는 것은 바로 어느 시대이건 흥망이란 바로 인물의 득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선악을 가려 인재를 등용하고, 바른 사리판단을 위해서는 진위(眞僞)를 가려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엄하게 해야 한다.

제(齊)나라 위왕(威王)은 자신의 신하인 즉묵대부(卽墨大夫)가 평판이 좋지 않아 알아보니 그것이 허위임에 포상을 내리고, 아대부(阿大夫)가 평판이 좋아 알아보니 그것은 사실이 아님에 벌을 내렸다.

고금을 막론하고 염량세태(炎凉世態)에는 항상 공통적인 현상과 요인이 있다. 그것은 눈에 아름다워 보임이 오히려 부패함이었고 귀에 거슬린 것은 정도라는 모순된 사실이었다. 진리는 주로 사물의 이치에서 발견되며 인간사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시비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은 이라면, 화려한 꽃보다는 오래갈 수 있는 은은한 녹음이 더욱 소중하게 보일 것이다. 자연의 허와 실이 인간의 생활에도 같은 원리로 본보기가 되는 것 같다.

[노승석·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대우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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