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우리말 논술
통합논술 교과서 / (49) 소수집단과 주류의 갈등과 통합- 다르다고 떠밀지 말아요
관련 논제 해결하기 / [난이도 수준-고2~고3]
< 논제 > 제시문에 나타난 사회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시오. (1,000±100자)
(가)
유정이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유정이의 부모는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노동을 하고 있지만 유정이의 신분은 '미등록'이다. 현행법상 이주 노동자의 대부분인 생산기능직 종사자는 거주를 목적으로 가족을 동반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부모는 합법 체류자라고 하더라도 자녀는 대부분 비합법적 경로를 통해 입국한 미등록 외국인이 된다. 유정이도 그런 경우다.
"제 신분이 불안하니까 늘 '학교에서 사고치면 끝장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들의 '지원을 끊겠다'는 협박은 그래서 가슴을 찌른다. 중2 때부터 시작한 한국 학교 생활은 이제 3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한창 멋부리고 떠들 나이, 자신을 '외국인 문제아' 보듯 하는 선생님의 눈빛을 보면 반항심만 커져간다.
"우리는 버스 탈 때 청소년 요금도 적용 안 돼요." 무비자로 있으니 신분확인이 안 되고, 신분확인이 안 되니 각종 청소년 혜택에서 제외된다. 은행 거래도 할 수 없고 인터넷 사이트 가입도 실명 확인에서 가로막힌다. 학생증에까지 주민등록번호가 찍혀 나오는 '이상한 나라'에서 그들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남자 '1000000', 여자 '2000000'이다. 누가 볼까, 늘 번호가 있는 면을 밑으로 둔다.
지현(15·가명)이는 2년 전에 한국 남성과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들어왔다. 엄마가 재혼한 지 2년 만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몽골에서 이모와 살았다. 지금은 어엿한 중학교 2학년. 한데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당연히 학교 수업도 따라갈 수 없다. "한국말이 잘 안 되니까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자꾸 몽골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나요." 지금은 인근 교회에 다니며 한국말을 배운다.
몽골인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박규영 선교사는 '아버지의 결정'에 좌우되는 이주여성 재혼 가정의 현실을 지적했다.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경우에 한국 아버지의 경제적 능력이나 인성에 따라 아이들이 별 문제 없이 지내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또 "실제로 매일 두들겨 맞고 지내면서도 비자 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엄마도 아이도 아버지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다. 집에 가서 보면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친구들의 시각도 벽이 된다. 혜영(18·가명)이는 얼마 전 '아우팅'을 당했다. 애초부터 학교 적응이 어려울 것 같아 선택한 검정고시 학원에서 기어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윤리 교과 시간에 선생님이 '북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한 학생이 "우리 반에도 탈북자 있어요, 저기요!"라고 외쳤던 것. 10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웅성이며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혜영이는 쏠리는 시선 속에서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수그렸다. "도망치고 싶었죠. 공부고 뭐고, 내가 왜 여기 앉아 있나 싶더라고요."
이후 혜영이는 학원마저 그만뒀다. 다행히 한 시민단체를 통해 새터민 아이들의 공부를 일대일로 도와주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연결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쟤가 탈북자예요!"라는 손가락질은 꿈에 나올 정도로 생생하다.
미주(16·가명)는 한국인과 다른 머리색·눈동자색 때문에 고생했다. 몇 대 위 조상에 러시아인이 있었다는 그의 머리색은 노란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도 투명한 갈색이다. 몽골에서 한국에 온 지 3년 만에 초등학교 6학년으로 '입학'했고 중학교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늘 선생님들의 '단속 대상'이었다. 선생님들은 볼 때마다 염색과 컬러렌즈 착용을 의심했다.
결국 미주는 학교에 조용히 다니기 위해 머리를 '한국 사람처럼' 검정색으로 염색했다. 염색 의혹을 뿌리치기 위해 염색을 한 셈이다. 그렇게 노력해도 한 선생님이 그의 눈 색깔을 보고 '컬러렌즈를 낀 게 확실하다'며 눈동자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그런 식의 문제아 취급은 정말 지긋지긋해요."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팀장은 "미등록 이주아동 한 명을 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키려면 수십 군데를 쫓아다니며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어려운 입학 과정이 지나면 아이들은 또다른 벽에 부딪힌다. 우선 한국말을 몰라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학교에서는 좀처럼 이 부분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한국말을 배울 만하면 교사와 친구들의 편견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임지선 기자, < 한겨레21 > 2008년 5월8일 제709호
(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를 종식시킨 지 14년 만에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의 공포로 얼어붙고 있다.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와 인근 지역에서는 주변 아프리카 국가 이주민을 겨냥한 대규모 폭동사태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으며, 지난 16일 이후에만 적어도 22명의 외국인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고 영국 < 비비시 > (BBC) 방송 등이 19일 일제히 보도했다.
18일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야구방망이와 흉기로 무장한 남아공의 젊은 군중들이 한 이주민 주거지역을 덮쳐 판잣집에 불을 지르고 소지품을 약탈했으며 이웃 나라에서 온 이주민을 상대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주말인 17일 밤 사이 클리블랜드 지역에서만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날 짐바브웨 난민 1천여 명이 대피한 교회도 공격을 받았다. 난민들은 교회 안에 벽돌을 쌓아 공격에 대비했으며, 경찰은 고무탄을 쏘며 무장한 남아공 젊은이들과 맞서는 등 도심 곳곳이 사실상 무법지대로 변했다.
경찰은 폭동이 시작된 11일 이후 지금까지 200여명을 체포했다. 남아공 적십자사는 3천여명의 난민이 최근 들불처럼 번진 폭력사태로 주거지에서 피신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남아공의 경제 침체와 높은 실업률, 만성적인 범죄로 시달리던 남아공의 사회적 모순이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폭발된 것으로 풀이된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경제국으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1994년 이후 짐바브웨·모잠비크·말라위·소말리아 등 주변국에서 수백만 명의 이주민들이 일자리와 피난처를 찾아 몰려들었다.
-조일준 기자, < 한겨레 > 2008년 5월 20일치
(다)
박찬욱 감독의 단편 <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 는 한국말이 서툰 한 네팔 여성 노동자가 행려병자로 취급되어 무려 6년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던 당시, 나는 이런 황당하고 무자비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한편으로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그러한 감정들은 이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러한 인권침해를 가능케 한 조건이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에 대해 증언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 사건의 공범으로 등장한다. 어느 누구도 한국인과 흡사한 외모의 그녀가 외국인일 수도 있다고 짐작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 관련자들 중에서는 자신이 네팔 사람이라는 그녀의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누구도 그녀의 신원을 적극적으로 확인해 보지 않았다. 동료 네팔 노동자들의 실종신고는 한국 관료들에 의해 간단히 무시되었다. 찬드라에게 가해진 인권침해는 이러한 총체적 상황의 합작품이었다. 그 일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이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어느 누구도 우리와 닮은 외모를 한 그녀가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또한 그것은 한국 사회에 내면화하고 있는 위계적 언어관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녀가 '좀 모자라는 사람', 어린애 취급을 당한 건 단지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대한 사람들은 그녀가 구사하는 네팔어를, '우리보다 못한 나라'인 네팔어를 우리말과 동등한 위상을 가진 한 나라의 언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네팔어를 사용하는 그녀를 우리와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은 있다. 사투리가 표준어에 비해 '우습거나', '좀 격이 떨어지는' 말로 받아들여져 주눅 든 기억도, "Do you speak English?" 하고 낯선 외국인이 다짜고짜 영어로 말을 건넬 때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한 기억도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들이 한 인간에 대한 폭력과 인권 침해를 가능케 하는 문화적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한다. 언어는 위계적 인간관을 내면화하는 매개물이다. 국내 비영어권 외국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동질화하고 그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어린애 취급'하는 광경을 쉽게 목도하게 된다.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 한겨레 > 2007년 10월 22일치
관련 논제에 대해 글을 써 보낼 분들은 edu@hani.co.kr로 보내주세요. 곧 독자적인 사이트가 완성되면 그곳에서 첨삭도 이뤄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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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논술 교과서 / (49) 소수집단과 주류의 갈등과 통합- 다르다고 떠밀지 말아요
관련 논제 해결하기 / [난이도 수준-고2~고3]
< 논제 > 제시문에 나타난 사회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시오. (1,000±100자)
(가)
유정이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유정이의 부모는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노동을 하고 있지만 유정이의 신분은 '미등록'이다. 현행법상 이주 노동자의 대부분인 생산기능직 종사자는 거주를 목적으로 가족을 동반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부모는 합법 체류자라고 하더라도 자녀는 대부분 비합법적 경로를 통해 입국한 미등록 외국인이 된다. 유정이도 그런 경우다.
"제 신분이 불안하니까 늘 '학교에서 사고치면 끝장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들의 '지원을 끊겠다'는 협박은 그래서 가슴을 찌른다. 중2 때부터 시작한 한국 학교 생활은 이제 3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한창 멋부리고 떠들 나이, 자신을 '외국인 문제아' 보듯 하는 선생님의 눈빛을 보면 반항심만 커져간다.
"우리는 버스 탈 때 청소년 요금도 적용 안 돼요." 무비자로 있으니 신분확인이 안 되고, 신분확인이 안 되니 각종 청소년 혜택에서 제외된다. 은행 거래도 할 수 없고 인터넷 사이트 가입도 실명 확인에서 가로막힌다. 학생증에까지 주민등록번호가 찍혀 나오는 '이상한 나라'에서 그들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남자 '1000000', 여자 '2000000'이다. 누가 볼까, 늘 번호가 있는 면을 밑으로 둔다.
지현(15·가명)이는 2년 전에 한국 남성과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들어왔다. 엄마가 재혼한 지 2년 만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몽골에서 이모와 살았다. 지금은 어엿한 중학교 2학년. 한데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당연히 학교 수업도 따라갈 수 없다. "한국말이 잘 안 되니까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자꾸 몽골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나요." 지금은 인근 교회에 다니며 한국말을 배운다.
몽골인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박규영 선교사는 '아버지의 결정'에 좌우되는 이주여성 재혼 가정의 현실을 지적했다.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경우에 한국 아버지의 경제적 능력이나 인성에 따라 아이들이 별 문제 없이 지내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또 "실제로 매일 두들겨 맞고 지내면서도 비자 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엄마도 아이도 아버지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다. 집에 가서 보면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친구들의 시각도 벽이 된다. 혜영(18·가명)이는 얼마 전 '아우팅'을 당했다. 애초부터 학교 적응이 어려울 것 같아 선택한 검정고시 학원에서 기어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윤리 교과 시간에 선생님이 '북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한 학생이 "우리 반에도 탈북자 있어요, 저기요!"라고 외쳤던 것. 10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웅성이며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혜영이는 쏠리는 시선 속에서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수그렸다. "도망치고 싶었죠. 공부고 뭐고, 내가 왜 여기 앉아 있나 싶더라고요."
이후 혜영이는 학원마저 그만뒀다. 다행히 한 시민단체를 통해 새터민 아이들의 공부를 일대일로 도와주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연결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쟤가 탈북자예요!"라는 손가락질은 꿈에 나올 정도로 생생하다.
미주(16·가명)는 한국인과 다른 머리색·눈동자색 때문에 고생했다. 몇 대 위 조상에 러시아인이 있었다는 그의 머리색은 노란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도 투명한 갈색이다. 몽골에서 한국에 온 지 3년 만에 초등학교 6학년으로 '입학'했고 중학교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늘 선생님들의 '단속 대상'이었다. 선생님들은 볼 때마다 염색과 컬러렌즈 착용을 의심했다.
결국 미주는 학교에 조용히 다니기 위해 머리를 '한국 사람처럼' 검정색으로 염색했다. 염색 의혹을 뿌리치기 위해 염색을 한 셈이다. 그렇게 노력해도 한 선생님이 그의 눈 색깔을 보고 '컬러렌즈를 낀 게 확실하다'며 눈동자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그런 식의 문제아 취급은 정말 지긋지긋해요."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팀장은 "미등록 이주아동 한 명을 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키려면 수십 군데를 쫓아다니며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어려운 입학 과정이 지나면 아이들은 또다른 벽에 부딪힌다. 우선 한국말을 몰라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학교에서는 좀처럼 이 부분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한국말을 배울 만하면 교사와 친구들의 편견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임지선 기자, < 한겨레21 > 2008년 5월8일 제709호
(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를 종식시킨 지 14년 만에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의 공포로 얼어붙고 있다.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와 인근 지역에서는 주변 아프리카 국가 이주민을 겨냥한 대규모 폭동사태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으며, 지난 16일 이후에만 적어도 22명의 외국인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고 영국 < 비비시 > (BBC) 방송 등이 19일 일제히 보도했다.
18일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야구방망이와 흉기로 무장한 남아공의 젊은 군중들이 한 이주민 주거지역을 덮쳐 판잣집에 불을 지르고 소지품을 약탈했으며 이웃 나라에서 온 이주민을 상대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주말인 17일 밤 사이 클리블랜드 지역에서만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날 짐바브웨 난민 1천여 명이 대피한 교회도 공격을 받았다. 난민들은 교회 안에 벽돌을 쌓아 공격에 대비했으며, 경찰은 고무탄을 쏘며 무장한 남아공 젊은이들과 맞서는 등 도심 곳곳이 사실상 무법지대로 변했다.
경찰은 폭동이 시작된 11일 이후 지금까지 200여명을 체포했다. 남아공 적십자사는 3천여명의 난민이 최근 들불처럼 번진 폭력사태로 주거지에서 피신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남아공의 경제 침체와 높은 실업률, 만성적인 범죄로 시달리던 남아공의 사회적 모순이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폭발된 것으로 풀이된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경제국으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1994년 이후 짐바브웨·모잠비크·말라위·소말리아 등 주변국에서 수백만 명의 이주민들이 일자리와 피난처를 찾아 몰려들었다.
-조일준 기자, < 한겨레 > 2008년 5월 20일치
(다)
박찬욱 감독의 단편 <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 는 한국말이 서툰 한 네팔 여성 노동자가 행려병자로 취급되어 무려 6년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던 당시, 나는 이런 황당하고 무자비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한편으로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그러한 감정들은 이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러한 인권침해를 가능케 한 조건이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에 대해 증언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 사건의 공범으로 등장한다. 어느 누구도 한국인과 흡사한 외모의 그녀가 외국인일 수도 있다고 짐작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 관련자들 중에서는 자신이 네팔 사람이라는 그녀의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누구도 그녀의 신원을 적극적으로 확인해 보지 않았다. 동료 네팔 노동자들의 실종신고는 한국 관료들에 의해 간단히 무시되었다. 찬드라에게 가해진 인권침해는 이러한 총체적 상황의 합작품이었다. 그 일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이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어느 누구도 우리와 닮은 외모를 한 그녀가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또한 그것은 한국 사회에 내면화하고 있는 위계적 언어관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녀가 '좀 모자라는 사람', 어린애 취급을 당한 건 단지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대한 사람들은 그녀가 구사하는 네팔어를, '우리보다 못한 나라'인 네팔어를 우리말과 동등한 위상을 가진 한 나라의 언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네팔어를 사용하는 그녀를 우리와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은 있다. 사투리가 표준어에 비해 '우습거나', '좀 격이 떨어지는' 말로 받아들여져 주눅 든 기억도, "Do you speak English?" 하고 낯선 외국인이 다짜고짜 영어로 말을 건넬 때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한 기억도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들이 한 인간에 대한 폭력과 인권 침해를 가능케 하는 문화적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한다. 언어는 위계적 인간관을 내면화하는 매개물이다. 국내 비영어권 외국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동질화하고 그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어린애 취급'하는 광경을 쉽게 목도하게 된다.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 한겨레 > 2007년 10월 22일치
관련 논제에 대해 글을 써 보낼 분들은 edu@hani.co.kr로 보내주세요. 곧 독자적인 사이트가 완성되면 그곳에서 첨삭도 이뤄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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