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美 검은 혁명> 역사를 다시 쓴 `흑진주' 오바마

설경. 2008. 6. 4. 18:24
(워싱턴=연합뉴스) 김재홍 특파원 = 미국 대선 사상 최대의 돌풍이자 이변을 넘어서 미국 정치권과 사회의 지각변동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버락 오바마(46.일리노이) 상원의원이 3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마지막 선거지역인 몬태나와 사우스다코타주 프라이머리를 마무리하면서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과반수(매직넘버)를 확보했다.




미국인들 뿐아니라 전 세계인들 모두 반신반의했던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선 후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진정한 다인종 이민국가로서 다시 태어날 계기를 맞게 됐으며, 전 지구촌 사람들이 이러한 역사적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며 변화와 희망을 기치로 내건 오바마의 후보 지명은 특히 흑인들에게 미 합중국을 건설한 사람들이 백인들만 아니라 자신들과 똑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자부심을 다시 금 일깨워 줄 것으로 보인다.

흑인으로 미국 외교수장의 자리까지 오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미국내 인종문제를 가리켜 "미국 건국과정에서 태생적 결함이 인종문제 대처를 지금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로 인종문제는 그들에게 하나의 헤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이제 오바마는 이런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 오는 11월4일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자리를 놓고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결전을 벌이게 됐다.

누구보다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고 자임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승리한 오바마 의원은 백인이 주류인 미국사회에서 비주류인 흑백혼혈인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변화와 희망'이라는 메시지로 승화시켜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그는 1961년 8월4일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주(州)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바마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그가 두 살 때 부모가 이혼을 했고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한 이후 어린 시절 가운데 4년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하와이에 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집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청소년시절에는 인종문제로 정체성 갈등을 심하게 겪으며 마약을 접하기도 했다.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내적인 갈등과 방황은 그러나 그를 미 대선 후보 자리에 까지 다가설 수 있게 만든 담금질이자 토양이 됐다. 오바마는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서 누구 못지 않은 사랑과 교육을 받아 희망을 키웠다는 메시지로 많은 감동을 줬다.

그는 혼혈이라는 인종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을 뿐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인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지냈고 다양한 문화 배경을 지닌 인종들이 섞여 살고 있는 동서양의 접점으로 불리는 하와이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특히 하와이에서의 청소년기는 문화적인 이해와 관용, 그리고 서로 인정하는 태도를 매우 중시하는 `알로하 정신'을 체득하게 만들어 인종과 계층, 성별을 가리지 않고 전 계층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도 여러 인종이 뒤섞여 있어 오프라 윈프리가 언급했듯이 한번 모이면 `미니 UN'이 된다고 한다.

오바마는 이런 다문화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좀처럼 하기 힘든 경험을 통해 문화의 충돌로 불리는 세계의 문제를 통합의 가치로 새롭게 풀어낼 수 있는 21세기의 새로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키워온 셈이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 후 시카고 빈민지역에서 공동체 운동을 벌이다가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지역환경 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과 정치체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 하버드 대학원을 진학, 법학박사를 받고 변호사가 됐다.

하버드 법대 시절에는 법대 학회지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하버드 로 리뷰'의 흑인 최초 편집장이 돼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90년대 초 시카고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고 시카고 대학 로스쿨 교수를 지냈다.

그리고 1996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본격적인 발을 디디게 됐고 2004년 여름 보스턴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연설에 나서 "미국인은 모두 하나"라는 내용의 기조연설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그해 11월 그는 연방 상원의원이 됐고 현재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이다.

오바마 의원은 지난달 대선 유세 지원을 위해 시카고 대학병원 대외업무 담당 부원장직을 그만 둔 부인 미셸(44)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미셸은 흑인 소방관 가정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법대를 나와 자수성가한 대표적 인물로,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를 지원하는 각종 유세에서 맹활약을 하면서 선거 초반 오바마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였던 흑인지지표 몰이에 큰 몫을 해왔다.

jae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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