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장한나 칼럼] 내가 평생 사랑할 남자―베토벤

설경. 2007. 9. 2. 00:32


▲ 장한나 첼리스트
숨이 멎을 것 같다. 온통 슬픔뿐이다. 손으로 꽉 붙잡았다고 믿는 순간, 손 안의 희망은 다시 사라진다. 더 이상은 어두워질 수 없다고 믿는 순간, 운명이 어깨를 움켜쥐고 가차없이 흔든다. 가슴이 미어터진다. 몸과 마음이 고통의 리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결국 조각이 나서 바람 따라 이리저리 떠돈다.

내 영혼을 이렇게 송두리째 휘두르는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중 2악장. 이 음악을 만든 사람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회고록을 쓴 작가의 눈앞에도, 초상화를 그린 화가의 눈앞에도 베토벤은 살아 숨쉬고 있다. 그들이 나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

식사 시간과 책상에서 작곡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베토벤은 하루 종일 도시에서, 시골에서, 숲속에서 산책했다. 몇 달 동안 이발은커녕 빗질도 안 한 것 같은 사자 머리에, 뒷짐을 지고 구부정한 자세로, 헐고 더럽고 간혹 찢어진 옷을 입고, 야수의 부르짖음 같은 큰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불렀다. 한동안은 가만히 서서 조그마한 공책에 마구 뭔가를 갈겨쓰고, 다 쓰고 나면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급한 걸음으로 또다시 막 걸어가던 사람. 그가 바로 베토벤이었다.

한번은 베토벤의 집 주인이 그가 이틀째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나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밖에서 들을 수 있는 기척은 베토벤의 노래 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뿐이었다. 잠시 후, 베토벤의 방문이 열리고 귀신과 씨름이라도 한바탕 치른 듯한 모습으로 그가 나온다. 그의 눈은 마치 저 세상을 본 것 같다. 쉰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리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날 몇 달 동안 고민하며 고치던 그의 대작 ‘미사 솔렘니스’ 중 ‘크레도’ 악장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런 베토벤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위대함은 노력만이 만든다는 것을 배운다. 베토벤은 본론만을 말한다. 그에게는 센티멘털할 여유도, 슬며시 제시하는 조심성도 없다. 그의 음악은 표현의 수단을 넘어서 그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던진다. 그래서 베토벤의 곡을 연구하고 연주할 때마다 그 곡에 담겨있는 감정이 자유롭게 살아 움직이는 듯 하다.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베토벤이 쓴 유서가 있다. 26세에 처음 청력(聽力)이 나빠질 때부터 그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사람들을 멀리 해야만 했다.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했지만, 항상 그의 마음속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고 한다. 치유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삶을 포기하려고 맘을 먹었지만 예술이 그를 붙잡았고, 그의 인생의 가이드로 ‘인내’를 선택했다고 한다.

“주여, 그대는 내 마음속 인류를 위한 사랑과 선을 행하겠다는 나의 의지를 다 보십니다. 신이여, 나에게 딱 하루만, 딱 하루만 온전한 기쁨을 주십시오. 내 마음속에서 기쁨이 울린 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다시는 온전한 기쁨을 못 느낀다면, 아, 너무 잔인합니다!”

그 어느 음악도 베토벤의 음악만큼 마음을 진정으로 충전해주는 건강한 음악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벗어날 수 없는 귓병과 음악에 대한 사랑이 거꾸로 본인의 내면에 있는 힘을 찾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암울한 환란을 진정한 기쁨으로, 고통을 승리로 전환시키는 힘이 베토벤에게는 있다. 고통 속에서도 내면의 예술 세계에 충실한 그의 열정이 베토벤이라는 예술가를 만들었다. 그 힘을 찾지 못했다면 오늘 우리가 아는 베토벤은 없을 것이다.

베토벤을 알아가면서 그의 음악관을 알아가고, 예술가로서 가져야 할 마음자세를 배운다. 그의 음악 안에 잠들어 있는 그의 혼을 어떻게 깨울지, 연주자로서 많은 고민을 하며 나와 베토벤만의 관계를 만들어간다.


[장한나 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