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 컴퓨터를 '접다'

설경. 2007. 9. 2. 00:48


▲ 1980년대 초 삼보컴퓨터를 설립, 한국 IT 산업의 초석을 다진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 그는“기술이나 지식보다는 인성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휴먼 인프라’구축에 여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애들이 몇 살이오? 초등학생?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지? 오늘부턴 아이한테, 30분만이라도 책을 읽어줘 봐요. 그리고 부모가 터득한 교훈들을 들려줘….”

‘한국 IT산업의 전설’, ‘국산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며 25년간 컴퓨터 회사를 경영했던 이용태(74) 전 삼보컴퓨터 회장의 결론은 ‘컴퓨터’가 아니라 ‘인성(人性)’이었다.

1981년 국산 PC를 처음 선보였고, 1982년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통신 사업(데이콤)을 주도했고, 1996년 ‘두루넷’을 세워 ‘초고속 인터넷’을 퍼뜨렸던 그가 이젠 컴퓨터를 접었다.


지난 6월 그는 ‘이야기로 키우는 인성 교육법’이라는 책을 펴냈다. 평생 사업을 하면서 겪은 일과 깨달은 것, 소중히 간직해온 이야기를 모아 1년 넘게 집필했다. 대학이나 기업, 각종 모임 등을 찾아다니며 강의도 한다. 주제는 컴퓨터가 아니라 ‘도덕적 리더십’, ‘현명한 자녀로 키우는 법’ 등 순전히 인성, 인간에 관한 것들이다.

오는 7일부터는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 개설되는 ‘인성교육지도자 양성과정’에 초빙돼 1년간 총 90시간을 강의할 예정이다. 이 과정은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가 이 전 회장의 강의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어 개설했다.

그가 ‘IT 전도사’에서 ‘사람 빚는 전도사’로 변신한 건 2005년 5월 삼보컴퓨터가 경영난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부터. 중국산 저가 컴퓨터 공세, 2세들의 경영실패 등으로 회사가 침몰의 길을 걷자 그는 ‘절망’보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이 IT 강국은 됐지만, 게임 중독·사이버 범죄 등 폐단도 늘었습니다. 오랜 기간 IT 사업을 하면서 이런 부채의식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젊었을 때 일에만 빠져 내 자식들을 가르치는 데는 소홀했다”며 “손주들이라도, 우리 후손들이라도 잘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영남의 유학자 집안 종손인 그는 어릴 때부터 선비의 모습을 보고 배워 왔다. 퇴계 이황 선생의 사상을 공부하는 모임인 ‘박약회’에서 20년째 활동하고 있다. 퇴계학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남는 시간은 붓글씨와 독서로 보내고 있다. 한 달에 한두 번, 유치원생부터 회사원까지의 손자 손녀 10명을 집에 불러다 놓고 훈장님처럼 가르친다. 그저 “착하게 살라”는 정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윈-윈 하라’ ‘어려운 건 5% 더 하고, 좋은 건 5% 덜 가져라’ 같은 삶의 지혜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곁들여 들려준다. 그가 바라는 인간은 ‘겉도 바르고 속도 발라서, 남도 나도 즐겁게 해주는 사람’. 삼보 신화가 무너진 뒤 그가 얻은 결론은, 기업이나 어떤 조직이든 결국에는 인성을 제대로 갖춘 인재를 길러야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한국은 일류국가가 되는 데 필요한 에너지(교육열, 사업의욕 등)를 충분히 갖췄지만, 엔진(인성을 갖춘 인재)이 신통치 않다”며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이 어린이 인성교육에 관해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이명원 기자


[류정 기자 wel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