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문학 숲 논술 꽃]‘나와 너’의 ‘너’를 잃어버린 현대인

설경. 2008. 6. 23. 16:05
[동아일보]
타인과 인격적 만남 대신 돈-지위 등 우선… '나와 그것'에 집착
● 자아 잃은 오늘날 현대인은 고독하다
대중이 생산과 소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현대 시민 사회는 대중사회의 성격을 띠게 됐다. 주권자로서 국가와 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 대중은 그 사회적 지위가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대중은 타인지향성과 익명성 속에 자신을 숨긴 채 행동하기도 한다. 이 때 대중은 비인격적 인간관계 속에 서로 간의 친밀감과 유대감을 상실한 채 고독감에 시달린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나와 안, 그리고 아저씨로 통할 뿐이다. 딱히 이름을 알 이유도 없고 이름을 통해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도 없다. 우연히 동행하게 되어 하룻밤 묵게 된 여관에서 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거짓 이름과, 거짓 주소, 거짓 나이와 직업을 쓰고 나란히 붙어있지만 각각 격리된 방으로 들어간다.

이 소설에 비친 인물들의 모습은 인간소외로 빚어진 인간관계의 단절을 보여준다. 소설 속 인물들은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는다. 작가는 상대방과의 소통을 배제하고 삶의 진정성을 상실한 채 고독하게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특히 같이 동행했던 사람이 죽자 애도하고 슬퍼하기보다 귀찮은 문젯거리가 될까봐 피해버리는 등장인물의 모습은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사라진 인간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하겠다. 이처럼 현대인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못한 채 각자의 삶 속에 숨어버리고 있기에 고독한 것이다.

● '나와 너'의 관계를 망각하고 있는 현대인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는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나',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너'의 '나'와 '나와 그것'의 '나'로 존재한다. 이러한 관계는 내가 세계에 대하여 취하는 이중적인 태도에 따라서 나에게도 이중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곧 내가 '나와 너'로서 대하면 세계도 '나와 너'로서 다가오는 것이고 내가 '나와 그것'으로 대하게 되면 세계도 '나와 그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현대인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나와 그것'의 세계에 집착하며 살아간다. 바쁜 현대인들은 대상의 고유한 본질을 보지 못하고 서로 길들이지 못한 채 아무런 의미 없는 그것의 존재로서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 관계의 목적은 관계 자체, 곧 '너'와의 접촉이다.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 그것은 비인격적 존재로서 애정이나 관심과 거리가 먼 '돈, 사회적 지위, 효율성' 등의 조건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익명의 존재로 남고 마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이름을 기억해야 하듯 자신의 존재가 상대에게 하나의 존재감을 갖게 하려면 '그것'이 아닌 '너'로서 상대를 마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어린 왕자의 '길들이기'는 오늘날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은정 ㈜엘림에듀 집필위원·엘림에듀 대치 직영학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