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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의 실마리…‘인간 존엄성은 절대가치’ 곳곳서 강조
교과서는 안락사 등 생명윤리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생명 존엄을 강조하며 이것이 어떤 이유로도 침해받아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인간 존엄을 가장 강조한 곳은 『철학』(대한교과서)의 ‘생명의 가치’ 단원이다. 존엄에 대한 믿음에서 생명 존중 의식이 생기고 도덕성의 기초도 만들어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민과 윤리』(교육인적자원부) ‘생명 존중과 윤리’엔 좀 더 실천적 내용이 담겨 있다. 인간은 생명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교과서는 강조한다. 또 이런 자세를 인류가 갖출 때 삶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과목엔 이 문제의 현실 적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법과 사회』(교학사)의 ‘국가 생활과 법’은 소극적 안락사의 현실적 필요와 부작용을 동시에 다룬다. 삶의 질을 높이고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소극적 안락사가 필요하지만 허용할 경우 비윤리적 악용이나 생명 경시로 나타날 수 있다며 ‘생명’이란 절대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목은 인류가 물질 문명 발전을 위해 생명을 경시하고 희생시킨 경향이 있었다며, 미래는 생명 윤리의 강화를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생물II』(대한 교과서)의 ‘생물과 인간 미래’ 는 생명 윤리를 분명히 깨닫고 연구해야 인간복제ㆍ유전자 조작ㆍ안락사 등 생명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형일 기자 hikim@joongang.co.kr
법학▶쉽게 허용하기보다는 신중한 태도로 접근해야
존엄사는 생명에 대한 가치 판단적 개념이다. 따라서 주관적 의미를 담은 존엄사는 법적 측면에서 큰 의미가 없다. 법은 ‘행위’에 대한 법적 평가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했는지 여부는 판단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보다 어떠한 행위가 생명을 중단시켰는지가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의사가 소생 가능성 없는 환자에 대해 인위적으로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해 생명을 단축ㆍ중단시키는 행위는 형법상 살인죄ㆍ자살방조죄 등에 해당할 수 있다. 설사 그 동기가 환자나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일지라도 그 결과가 생명을 끊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률상 ‘생명’은 절대적이며 동일한 가치다. 형법은 ‘생명’이라는 표현 대신 ‘사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람’이란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시기(始期)부터 더 이상 사람으로 볼 수 없는 종기(終期)까지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여기서 종기는 사망 시기로 그 판단은 아주 엄격한 논의와 연구를 거쳐 사회적 합의로 결정된다. 환자가 회복 가능성이 없거나 의미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연명해도 생명의 절대 가치와 법률 적용은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현실적 필요나 상황에 따라 생명 침해 행위를 차별적으로 허용한다면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 따라서 존엄사 인정은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쉽게 허용하기보다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존엄사 여부를 결정하는 의학적 판단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인간다운 죽음을 악용한 범죄나 비도덕적 행위를 막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법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생명 존엄성‘이라는 자연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절대 존중’은 사회의 올바른 유지를 위해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다.
김민호 교수(성균관대ㆍ법학)
☞생각 플러스: 존엄사를 허용할 경우 어떤 비윤리적 악용 사례가 있을 지 밝히고 부작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에 대해 말해 보라.
의학▶무의미한 치료보다는 의사의 양심에 맡겨야
생명과 건강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특히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고통에서 구하도록 교육받았기에 더 그렇다. 그런 의료인이 왜 죽음을 앞둔 환자의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자고 주장하는가. 우선 최근의 흐름을 살펴보자. 의료 기술 발달로 감염성 질환이나 사고에 따른 사망은 줄었다. 반면 암ㆍ고혈압ㆍ당뇨 등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의 역할이 완치에서 간호(care)로 바뀌었다. 그리고 인공영양ㆍ인공호흡기ㆍ심폐소생술ㆍ신장투석 등 생명유지 기술은 회복 불능 말기 환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연시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명유지 기술이 오히려 환자의 고통과 죽음만을 연장할 뿐이며 환자 가족들도 어려움에 시달리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존엄사 허용에 대한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존엄사’란 최선을 다했음에도 죽음이 임박했을 때 ‘무의미한 치료’ 를 중단하고 품위 있는 죽음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수용하는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와 다르다. 소극적 안락사는 희박하지만 회복 가능성 있는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같은 의미 있는 치료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다. 따라서 의료계는 ‘소극적 안락사’를 명백하게 반대한다. 반면 존엄사는 환자에게 선을 베풀고 손해를 피한다는 ‘선행의 원칙’과 ‘악행 금지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따라서 존엄사 여부를 환자가 미리 정하는 사전의사결정(Advance directives)과 편안한 임종을 위한 ‘호스피스 완화 의료’로 환자가 자율적 선택을 통해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기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일은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이 아닌 편안한 죽음일 수 있다. 병을 고치는 의사가 ‘존엄사’를 찬성하는 이유는 환자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다.
윤영호 부장 (국립암센터 암관리사업부)
☞생각 플러스: 존엄사를 허용할 경우 ‘무의미한 치료 중단’이라는 의사의 판단이 결정적이다. 의사의 판단 오류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는 무엇이 있을까
사회▶소극적 안락사·존엄사 수용한 나라 늘어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한 간경변증 환자의 산소공급을 중단해 사망하게 한 의사 2명이 최근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존엄사’를 인정한 사법당국의 첫 판단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불과 3년 전 대법원은 뇌출혈 환자를 아내의 요구로 퇴원시켜 숨지게 한 의사 2명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안락사(euthanasia)는 ‘좋은(eu: good)’ ‘죽음(thanasia: death)’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안락사는 소생 가망이 희박한 말기 환자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를 말한다.
안락사의 개념은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눌 수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말기 환자에게 독극물 등을 인위적으로 주입해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루게릭병 환자에게 독극물을 투입해 자살을 도운 죄로 8년여를 복역한 미국의 잭 케보키언 박사의 사례가 적극적 안락사에 해당된다.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는 각각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나 ‘회복 불가능한’ 이에게 고통을 덜거나 품위 있게 임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적 추세는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점차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사윤리지침 제30조는 ‘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에 대한 존엄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78년 본인이 동의한 경우 불치의 말기환자에 대한 존엄사를 허용하는 안락사법을 제정했다. 이후 미국의 다른 주와 유럽 여러 나라로 이 같은 움직임은 확산됐다. 그러나 적극적 안락사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네덜란드와 스위스, 벨기에 등 일부 국가만 이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서는 오리건 주만이 유일하다. 우리나라 대한의사협회가 제정한 의사윤리지침 제58조도 적극적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종수 교수(한성대ㆍ대한의사회 국민의학지식향상위원)
☞생각 플러스: 수년 동안 키운 반려 동물이 불치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당할 경우 안락사를 시킬지 말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라
철학▶칸트 윤리는 반대입장 … 공리주의는 허용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은 생명의 신성불가침과 자기결정권이라는 대립에서 출발한다.
생명의 신성성은 그 기원이 기독교에 있다. 생명은 신의 영역으로, 위탁관리자인 인간은 아무 권한이 없다. 이 같은 생각이 오늘날 생명존중 사상으로 일반화돼 세속 윤리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했다.
이런 입장에서 생명권은 근본적으로는 타인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을 권리다.
따라서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안락사는 절대 허용될 수 없다. 이와 유사한 입장을 보인 근대의 대표적 철학자는 칸트다.
칸트는 도덕규칙이 만족시켜야 할 조건으로 세 가지 형식의 정언명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언명법에서 추론해 낼 수 있는 실천규칙은 생명을 자의적으로 단축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생명을 수단화하지 말고 목적으로서 존중하라는 것 등이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입장은 근세 자유주의 이념에서 뚜렷하다.
이 입장은 자율성 존중의 원칙에 입각할 때, 고통스러운 생명의 존속 여부 결정은 전적으로 생명 소유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인 한 안락사는 허용될 수 있다.
근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보인 공리주의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공리주의는 신성 불가침과 자기 결정권에 관한 논변은 다루지 않는다. 행위가 낳은 결과에 입각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뿐이다. 공리주의 관점에서 안락사는 ‘욕구의 최대만족과 최소좌절’을 가져올 때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된다.
따라서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죽음으로써 더 많은 개인적·사회적 욕구가 달성될 경우 안락사는 허용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비자의적 안락사도 욕구 충족 결과가 크게 나타날 때에는 당연히 허용될 수 있다.
따라서 자의적ㆍ비자의적ㆍ반자의적 안락사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공리주의에서 모든 것은 오직 그 결과에 의해서만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가 판가름날 뿐이다.
김상배 교수(서울시립대ㆍ철학)
☞생각 플러스: 칸트의 도덕규칙과 공리주의 철학을 정리해 안락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
출처 : 별먹는 빛
글쓴이 : 설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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