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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칼럼] 불씨 살린다고 휘발유 퍼붓나?

설경. 2008. 8. 21. 21:05



[한겨레] 이준구칼럼


정부가 눈치 보기를 접고 급기야 본격적인 주택경기 부양에 나설 모양이다. 이미 예견된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막상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앞선다. 간신히 잠든 투기 열풍이 또다시 거세게 휘몰아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불씨를 살린답시고 휘발유를 퍼붓는 어리석은 짓을 하려 들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다.

주택경기 침체가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지 않도록 신경을 쓸 필요는 있다. 또한 현행 주택 관련 세제나 규제에 손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 김에 쇠뿔을 뽑으려는 듯 모든 것을 한꺼번에 손대려고 서두는 모습은 불안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게 해서 어떤 부작용들이 생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는 눈치다.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주택시장은 언제라도 다시 폭발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들을 안고 있다. 경기가 침체되어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잘나가는 사람들은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 이 돈이 결국 어디로 흘러들어갈 것인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 기회를 엿보며 대기하고 있는 대규모 자금은 주택시장으로 물꼬가 트이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정부의 발 빠른 개입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움직일 수 없는 현실로 만들어 버린다. 지난 10년 동안 전국의 주택가격은 두 배 이상의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최근 들어 3~4% 정도 내렸을 뿐인데 큰일이 난 듯 대규모 개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런 든든한 후원이 있기에 부동산을 사잰 사람은 늘 발 뻗고 잘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부동산 투자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주택경기를 정확하게 바람직한 수준으로 띄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스마트폭탄처럼 정교한 정책 수단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거의 이루기 힘든 목표다. 투기심리를 잘못 건드리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과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종부세, 양도세, 각종 규제를 한꺼번에 건드리는 융단폭격 방식은 큰 화를 부르기 십상이다.

또 한번의 주택가격 폭등이 일어난다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서민들의 삶은 한층 더 팍팍해질 것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더욱 멀어질 뿐 아니라, 수많은 세입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 쾌재를 부르게 될 유일한 계층은 집부자들이다. 게다가 종부세·양도세까지 크게 깎아준다고 하니 그들로서는 더 좋은 일이 없다.

어찌 보면 최근의 상황은 주택경기 과열이 간신히 진정된 국면일 수 있다. 지난 정부가 취한 일련의 정책이 시차를 두고 지금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렵사리 진정된 주택시장을 쓸모없이 뒤흔드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주택시장 버블이 한국호의 침몰을 가져오는 어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라도 한단 말인가?

현행 주택 관련 세제나 규제를 개선하자고 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노골적으로 집부자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고 하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주택시장의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까지 뿌리째 뽑아내려 하고 있다. 거침없는 정부의 행보를 자못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주택시장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냉탕, 열탕 요법을 번갈아 써 왔다. 이런 근시안적인 정책운영이 우리 주택시장의 체질을 약할 대로 약하게 만들었다. 지금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열탕 요법은 그런 어리석은 대응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주택시장 혼란이라는 또 하나의 과오를 실정의 목록에 보태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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