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사설] 종교편향 방지 조처, 진정성이 없다

설경. 2008. 8. 27. 19:14


불교계의 이명박 정부 규탄대회를 앞두고 정부가 부산스럽다. 대통령은 엊그제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종교 문제와 관련해 공직자들이 국민화합을 해치는 언동과 업무 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어제 사과 뜻을 밝히고, 종교 차별 방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불교계는 떨떠름하기만 하다. 정부 조처라는 것이 임시방편에 불과한 까닭이다. 왜 분노하는지 모를 리 없는데도 핵심 조처는 제외했다.

불교계가 똘똘 뭉쳐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정부 규탄 시위를 벌이는 것은 온전히 이 대통령에게서 비롯됐다. 서울시장 때 ‘서울 봉헌’ 발언으로 논란을 야기했던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개신교에 대한 편향을 거침없이 보여줬다. 정부 조각이나 청와대 수석 인사에서부터 자신의 교회 인맥을 대거 기용했고, 목사를 청와대 핵심 비서관에 앉혔다. 게다가 목사를 청와대로 불러 예배를 보았으며,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에 포항을 기독교 도시로 만들겠다며 예산까지 배정하려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을 임명했다. 순복음교회 창립 행사에는 영상 축하메시지를 보냈지만, 역대 대통령이 보내던 부처님 오신날 축전은 빼먹었다.

대통령이 이런 태도를 보이자, 공직사회는 알아서 기기 시작했다. 경호실 차장이 정부 복음화가 소원이라고 발언하고, 경찰청장은 경찰복음화 행사 포스터에 등장했다. 경찰은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량이라는 이유로 더 악착같이 검색을 했다. 국토해양부의 대중교통 정보시스템이나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지리 정보시스템 등에선 전국의 사찰이 제외됐다. 용기백배한 개신교 목사들은 불교 등 타종교 비난에 열을 올렸다. 한 유명 목사는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산다”, “석가모니도 불교를 만들어선 안 됐다”고 종교 분쟁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애꿎은 공직자만 나무랐다. 그러니 누가 그 진정성을 믿을까. 설사 공식 사과는 않더라도, 종교 편향의 상징적 인물에 대한 일벌백계는 필요했다. 그래야만 공직자들의 종교 편향이 조금이라도 제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불교계가 대규모 시위에 나서고, 대한민국은 전근대적인 종교 차별 국가로 만방에 알려지게 됐다. 이 불행한 사태는 이 대통령의 뼈저린 반성 없이는 풀릴 수 없다.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한겨레신문 구독 |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