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대입논술 가이드]‘사이버 모욕죄’와 국가권력

설경. 2008. 10. 21. 16:21

생태환경이 변해서일까. 중추(仲秋)가 지난 지 꽤나 됐는데도 열려진 문과 창으로 모기가 들어와 밤잠을 설치게 하거나 예민한 상념의 순간을 헤집는다. 조금 귀찮지만 그래도 여름에 한 것처럼 창과 문을 단속하고 싶지는 않다. 왜. 가을날의 정취를 그런 식으로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변하는 것은 자연적 생태환경뿐만이 아니다. 인공적 생태환경도 마찬가지다. 최근 필자는 컴퓨터 장애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전문 업체에 맡겨 해결할 수도 있지만, 현대인의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수단의 문제를 남의 손에만 맡기는 것이 내키지 않아 직접 해결해보느라 날밤을 새우기도 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치러야 하는 필요비용이라 생각한다.

인간을 둘러싼 생태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최근의 변화 대부분은 인간 자신이 초래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변화에 대한 책임이 있고 이를 감당하고 감내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자초한 것이니까. 인터넷 환경도 그런 것의 일종이다. 인터넷이 일반화되고 더 나아가 보편화된 것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문화적 지체 현상도 일반화·보편화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가 반드시 지향해야 할, 반드시 지켜야 할 원리·원칙적인 가치가 있다. 서양 역사 수백 년에 걸쳐서 획득하고, 우리가 60여 년의 역사를 통해 성취해낸 민주주의적 가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논의할 때 가장 중요한 전제는 평등이다. 그중에서도 이성적 능력의 평등이다. 인터넷 문화는 지금까지 그 어떤 매체(media)보다도 이런 측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인터넷상의 네티즌이 대통령이든 총리든 길거리 노숙자이든 이성적 평등의 측면을 문자 그대로 표출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문화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지금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어느 사회 현상이든 긍정적·부정적 측면이 동반할 수밖에 없고, 특히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저항이 항상 있어왔던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과도기에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을 지나치게 일반화·보편화해서 이를 이용해서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는 것은 결국 무고한 희생을 거친 뒤에서야 교정되어왔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위 ‘사이버 모욕죄’의 입법 가능성을 접하면서 잡다한 생각들이 든다. 사이버, 달리 말하면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네티즌들 간의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국가 간섭의 노골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모욕죄의 본질인 당사자의 감정과 무관하게 모욕적으로 (국가에서) 판단하는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해 처벌하겠다는 것 때문이다. 근대의 역사에서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은 입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입헌 국가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입법한 모든 법은 헌법적 가치를 내세웠지만 그중에는 악법이 수도 없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사이버 모욕죄가 겉으로 드러나는 온갖 정당성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국가의 자의적 개입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자의적 법 적용의 폐해는 국가보안법의 예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한 것이 사이버 모욕죄다.

필자가 언뜻 드는 생각은 부부간의 은밀한 행위조차도 감시·감독했던 서양의 중세적 규범이 느닷없이 한반도에 환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국가보안법의 모호한 규정과 이에 근거한 국가 권력의 횡포가 배태될 수 있는 사이버 모욕죄의 제정은 우리를 앞으로 몇 년, 몇 십 년을 괴롭힐 수도 있다. 사이버 모욕죄 제정의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국가보안법보다 더 자의적인 성격을 갖게 될 현 정부가 상정한 사이버 모욕죄는 시대착오적이다. 철지난 모기를 퇴치할 방법은 좀더 정확한 진단과 평가가 필요하다.

1 사이버 모욕죄를 논의해보라.

2 ‘최진실법’ 주장의 의미를 평가해보라.

3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와 사이버 모독죄 신설을 연결해 입법의 문제를 논의해보라.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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