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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논제 해결하기 [난이도 = 고등]
<논제> 제시문 (가), (나), (다)를 참고하여 웃음과 연관된 문화적 요인에 대해 논술하시오. (600~700자)
(가) 에이브와 그의 친구 솔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전혀 낯선 동네에 들어서게 되었다. 마을에는 교회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가던 둘은 이상한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새로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는 분께 1천 달러를 드립니다.’
“저게 무슨 뜻일까?”
현수막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이브가 말했다.
“아무래도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금방 나올테니까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솔은 길가의 벤치에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10분, 20분, 30분…. 솔의 인내력이 한계에 다다를 무렵, 마침내 에이브가 나타났다.
“어떻게 됐어?”
궁금증을 참지 못한 솔이 물었다.
“뭐라고 하던? 너보고 교회에 나오라고 꾀던? 돈이 그렇게나 많대? 1천 달러는 정말 준대?”
그러자 짐짓 성난 목소리로 에이브가 말했다.
“그저 돈, 돈! 너희 백성들은 하나같이 돈밖에 모르는구나.”
‘유태인들이 세상 그 무엇보다 돈을 중시한다’는 세상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바가 없을 뿐 아니라 ‘에이브’나 ‘솔’이 유태인들의 이름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우스개를 들려준다고 생각해 보자. 백이면 백, 주인공들의 이름에 대한 자질구레한 설명에서부터 유태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이 어떠하다는 둥, <베네치아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어떤 인물이었다는 둥, 중세 고리대금업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 이러저러하게 와전되었다는 둥,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우스개의 기본 착상이 가진 맛을 풍부하게 살려 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럴 경우 과연 그 사람이 이 우스개를 재미있어 할까?
물론 아닐 것이다. 왜? 그 이유는 수용자가 우스개에 앞서서 무엇인가를, 그것도 당신이 말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알고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이런 면에서 우스개는 퍼즐이나 수학 문제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여섯 사람이 피자를 나누어 먹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그것을 나눈다고 생각해 보자. 그가 피자를 정확히 여섯 등분한다는 걸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일단 나이프를 든 사람이 이성적이고 피자를 적절한 크기로 자를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전제할 때, 그 해결책은 피자를 자른 사람 이외의 나머지 다섯 사람에게 피자 조각을 먼저 선택하도록 우선권을 주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피자를 자르는 사람으로서는 자신이 가장 작은 조각을 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똑같은 크기로 자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경우, 문제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해법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에 대해 설명해 주고 그 해법을 전해 주면 그 뿐인 것이다. 하지만 우스개를 나눌 때 이런 방법을 쓰게 되면 그것의 성공적인 교환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우스개는 두 사람이 같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는 암묵적인 합의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두 사람이 함께 우스개 속에 들어와 있다는 의식이 배경에 깔려 있을 때, 우스개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스개의 기반이 되는 ‘친교’이다. 우스개가 성공할 때 친교는 더욱 두터워지고, 듣는 이는 그 우스개에 과거의 당신과 같은 반응을 보임으로써 당신과 하나가 된다.
그럼 친교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어떤 느낌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 속에서 구성원들은 소속감을 느끼고, 서로 교감을 나눈다. 우스개에 초점을 맞출 경우, 공동체의 친교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진다. 첫 번째 요소는 신념, 성향, 선입견, 기호 등으로 이루어진 공통 분모-공통의 세계관 혹은 그것의 일부-이고, 두 번째는 공통의 느낌-어떤 일에 대한 공통된 반응-이다. 첫 번째 요소는 굳이 우스개가 아니더라도 가꾸거나 일깨울 수가 있고 두 번째 요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스개가 가입할 경우, 두 번째 요소는 첫 번째 요소에 의해 더욱 확대된다. 이것이 바로 우스개의 놀랍고도 흥미로운 점이다.
내가 우스개를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서, 친교를 나눔에 있어서 우스개가 수행하는 역할을 과대평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친교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같은 것을 보고 함께 웃는다면, 그것은 대단히 특별한 경험이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 같이 웃는다면, 그것 자체만으로 놀랍고 소중한 일이다. 우리가 함께 웃는 그 순간은 뿌리 깊은 인간적 갈망이 충족되는 순간이자,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소망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서로를 느끼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우리 모두가 같았으면 하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인 것이다.
-테드 코언 <농담 따먹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 66~69쪽에서 발췌
(나)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중요한 한 측면은 얼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폴 에크먼과 그의 동료들은 특정한 표현을 담게 되는 안면 근육들의 움직임을 기술하기 위해 ‘안면 행위 부호화 시스템(Facial Action Coding System:FACS)’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그들은 이 방법을 통해, 얼굴에 나타나는 감정 표현을 해석함에 있어서 기존의 비일관적이고 모순되는 제멋대로의 판단이나 분류 방식을 지양하고 나름의 정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은 감정 표현의 기초적 형태는 모든 인간들에게 있어서 동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비록 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존재하지만, 에크먼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들은 다윈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에크먼과 프리슨은 뉴기니의 한 고립된 원시 부족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였는데, 이들 원주민들은 이전에 서구인들과 접촉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 여섯 가지 감정(기쁨, 슬픔, 분노, 혐오, 두려움, 놀라움)을 표현하는 얼굴 표정이 담긴 사진들을 보여주었을 때, 이 뉴기니 부족 집단 구성원들도 이러한 감정들을 공통적으로 구별해 낼 수 있었다.
(중략)
에크먼과 프리슨은 FACS 체계를 사용하여 신생아들의 안면 근육 움직임에서도 어른들의 감정 표현 양식과 비슷한 몇 가지 얼굴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유아들도 신맛에 대한 반응에서 어른들이 혐오감을 표현하는 방식-입술을 오므리고 얼굴을 찌푸리는-과 유사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감정을 얼굴 표정으로 나타내는 것이 천성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하더라고, 정확한 안면 운동 형태와 그런 표정이 적용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인식은 개인적, 문화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어떻게 웃는가 하는 것, 즉 입술과 다른 얼굴 근육들의 정밀한 운동 형태와 그리고 웃음을 얼마나 지속하는가 등은 각 문화 유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앤서니 기든스 <현대사회학> 100~101쪽에서 발췌
(다) 웃음을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이른바 웃음 생리학(gelotology)은 웃음을 유머나 간지럼, 혹은 재미있는 상황이나 행동에 대해 인간이 보이는 즉각적이고 생리적인 반응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것이 웃음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진 못한다. 실제로 우리가 1주일 동안 웃는 횟수를 조사해 보면 그 중에서 유머나 재미있는 상황 때문에 웃음이 터지는 경우는 10~20%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메릴랜드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및 신경과학과 로버트 프로빈(Robert R. Provine(1943~)) 교수는 최근 <웃음:그에 관한 과학적 탐구(Laughter. A scientific investigation)>(2000)라는 책을 출간해 학계뿐 아니라 대중들에게까지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웃음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 돋보이는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버트 프로빈 교수는 이 책에서 웃음은 그저 유머에 대한 생리적인 반응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사회적 신호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그는 매릴랜드 주립대학교 학교 광장과 근처 거리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 1,200명의 대화 내용을 분석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대화 도중 웃는 상황 중에서 농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 때문에 웃는 경우는 10~20%에 불과하며, 대부분 ‘그동안 어디 있었니?’ 혹은 ‘만나서 반가워요’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가장 많이 웃는다고 한다. 또 가장 큰 웃음이 터진 대화들을 분석해 봐도 그다지 포복절도할 내용은 아니었다고 한다. 게다가 농담을 듣는 사람보다 농담을 하는 사람이 1.5배 이상 더 많이 웃는다는 것도 발견했다. 결국 대화 상대에게 친밀감이나 호감을 느끼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즐거워 웃는 것이지, 농담을 주고받아야만 웃음이 넘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심리학과 학생들에게도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이나 코미디 영화를 혼자 볼 때와 여럿이서 함께 볼 때 웃음의 빈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함께 영화를 볼 때 무려 30배나 더 많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혼자 있을 때는 재미있는 장면에서 그저 미소를 짓는 경우가 많았으며 무의식중에 크게 웃다가도 이 웃음을 들어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면 이내 웃음이 입가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정재승 <과학콘서트> 55~56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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