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아비투어 논술]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설경. 2007. 11. 27. 10:29



현대인은 하루 평균 30회 이상 감시 카메라에 노출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공간 이동을 할 때마다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얘기다. 보는 자는 누구이며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나 국가가 어떤 의미에서 구성원들에 대한 감시 시스템의 네트워크 체계로 정의될 수 있다면, 그 사회나 국가의 노림수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푸코의 대답은 근대 국가 이후의 권력 구조와 사회 구성원들의 개인화 과정에 대한 가장 의미심장한 설명이 될 것이다. 더구나 정보화 사회의 도래로 감시 시스템의 기술적 역량이 한층 강화된 오늘날 무엇이든 보여질 수밖에 없는 노출의 심각성과 보는 자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명쾌한 일별은 푸코 이전과 이후에는 없다.

▲ 배경지식넓히기

1. 미셸 푸코(M. Foucault): 프랑스 출신의 현대 사상가인 푸코는 무의식적인 심적구조, 사회구조, 그리고 언어구조가 일체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주체로서의 인간과 자아라고 하는 관념을 허구적인 것으로 보았다. 푸코의 사상은 크게 정상·비정상, 동일자·타자, 내부·외부, 이성·비이성 사이에 만들어진 경계를 밝히고, 이를 허무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나아가 이러한 경계를 만들고 유지시키는 ‘지식-권력(savoir-pouvoir)’의 존재를 추적하고 그것이 미치는 효과에 대해 분석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말과 사물’ ‘앎(지식)의 고고학’ ‘광기의 역사’ ‘담론의 질서’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등이 있다.

2. 감시와 처벌: 이 책은 감옥을 정점으로 하는 감시처벌의 기구(가정, 학교, 병원, 공장 등)를 분석하고 있다. 감옥, 죄수복, 쇠사슬, 처형장 등의 물질적인 형태뿐 아니라 범죄, 형벌, 재판, 법률 등의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푸코는 단순하게 감옥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감옥과 감시의 체제를 통한 권력의 정체와 전략을 파헤쳤다. 즉, 권력이 인간과 신체를 어떻게 처벌하고 감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근대적 인간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또한 근대사회를 감금사회, 관리사회, 처벌사회, 감시사회로 이해하고 있다.


<문제> 제시문 (가)의 CCTV는 제시문 (나)와 (다)에 등장하는 ‘감옥’의 현대적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CCTV를 통해 사회구성원들을 감시하는 목적은 무엇이며, 지속적으로 그러한 감시에 노출된 사회구성원들은 어떤 행동양상을 보일지, 그리고 그러한 사태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지 제시문 (나)와 (다)의 감시체계를 참조하여 논술하시오. (1000자 내외)

(가)서울 ○○구 A전자 공장에서는 10여명의 직원이 천장에 달린 카메라 3대의 감시를 받으며 제품 검사를 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 강남에 있는 본사 사장실의 컴퓨터 화면에는 공장 상황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현장→카메라→디지털 저장 장치→인터넷→서버→인터넷→PC 단말기로 연결되는 신종 CCTV 시스템은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PC 단말기를 실시간으로 24시간 내내 볼 수 있어 감시·보안 장치에도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장비가 설치된 공장의 직원 김모씨는 “처음 6개월 동안은 본사에서 언제 어느 순간 나를 관찰할지 몰라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보, 2000년 10월4일) -고등학교 ‘사회문화’, 지학사

(나) ‘파리 소년감화원을 위한 규칙’ 중 일부 발췌.

제18조 기상. 첫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조용히 기상해 옷을 입고 간수는 독방의 문을 연다. 두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침상에서 내려와 침구를 정돈한다. 세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아침 기도를 하는 성당에 가도록 정렬한다. 각 신호는 5분 간격으로 한다.

제19조 아침 기도는 감화원 소속 신부가 주재하고, 기도 후에 도덕이나 종교에 관한 독송을 행한다. 이 일은 30분 이내에 마치도록 한다.

제20조 노동. 여름에는 5시45분, 겨울에는 6시45분에 재소자는 마당으로 나와 손과 얼굴을 씻고 빵 배급을 받는다. 뒤이어 즉시 작업장별로 정렬하여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여름에는 6시, 겨울에는 7시에 시작해야 한다.

제21조 식사. 10시에 재소자는 노동을 중단하고 마당에서 손을 씻고 반별로 정렬하여 식당으로 간다. 점심식사 후 10시40분까지를 휴식 시간으로 한다.

제22조 학습. 10시40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정렬하여 반별로 교실로 들어간다. 읽기, 쓰기, 그림 그리기, 계산하기의 순서대로 한다.

제23조 12시40분에 재소자는 반별로 교실을 나와 마당에서 휴식을 취한다. 12시55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작업장별로 다시 정렬한다.

제24조 1시에 재소자는 작업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노동은 4시까지 계속한다.

제25조 4시에 작업장을 나와 안마당으로 가서 손을 씻고 식당에 가기 위해 반별로 정렬한다.

제26조 저녁 식사 및 휴식은 5시까지로 하고, 재소자는 다시 작업장에 들어가야 한다. -레옹 포쉐, ‘감옥의 개혁에 대해서’

(다) 벤담(Bentham)의 ‘일망(一望) 감시시설’(판옵티콘, panopticon)은 이러한 조합의 건축적 형태이다. 그 원리는 잘 알려져 있다. 주위는 원형의 건물이 에워싸여 있고, 그 중심에는 탑이 하나 있다. 탑에는 원형건물의 안쪽으로 향해 있는 여러 개의 큰 창문들이 뚫려 있다. 주위의 건물은 독방들로 나뉘어져 있고, 독방 하나하나는 건물의 앞면에서부터 뒷면까지 내부의 공간을 모두 차지한다. 독방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는데, 하나는 안쪽을 향하여 탑의 창문에 대응하는 위치에 나 있고, 다른 하나는 바깥쪽에 면해 있어서 이를 통하여 빛이 독방을 구석구석 스며들어 갈 수 있다. 따라서 중앙의 탑 속에는 감시인을 한 명 배치하고, 각 독방 안에는 광인이나 병자, 죄수, 노동자, 학생 등 누구든지 한 사람씩 감금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역광선의 효과를 이용하여 주위 건물의 독방 안에 감금된 사람의 윤곽이 정확하게 빛 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탑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완전히 개체화되고, 항상 밖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한 사람의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수많은 작은 무대들이자 수많은 감방이다. (중략)

사람들은 저마다 감시인이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독방 안에 감금된 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양쪽의 벽은 그가 동료들과 접촉하는 것을 차단시킨다. 그는 보여지긴 해도 볼 수는 없다. 그는 정보의 대상이 되긴 해도, 정보 소통의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 중앙 탑과 마주하도록 방을 배치함으로써 일종의 축을 형성하는 가시성이 강요되는 반면, 원형건물의 분활된 부분들과 완전히 분리된 독방들은 측면에서의 불가시성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불가시성은 질서를 보장해준다. (중략)

‘일망 감시장치’는 ‘봄-보임’의 결합을 분리시키는 장치이다. 즉, 주위를 둘러싼 원형의 건물 안에서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채 완전히 보이기만 하고, 중앙부의 탑 속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결코 보이지는 않는다.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예시답안>

감시의 1차적 목적은 감시당하는 자의 신체와 정신을 통제하는 데 있다. 그 결과 감시하는 자의 목적은 감시당하는 자의 행동으로 표현된다. 제시문 (가)의 CCTV는 노동자의 노동 행위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목적인데, 그로 인해 노동자는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 채 스스로 행위에 제약을 가하며 노동에 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자는 발가벗겨진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 느낌이 서술된 바와 같이 6개월 정도만 지속된다는 데 있다.

6개월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노동자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이 지점에서 역설적으로 감시의 최종 목적이 달성된다. 노동자는 감시를 인지하지 않고서도 자신을 스스로 훌륭하게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누군가가 보고 있느냐 보고 있지 않느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는 자의 시선이 이미 노동자의 시공간적 행위 전반에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제시문 (나)의 소년들 역시 감화원의 규칙에 따라 일정 기간 자신의 행동 양상을 고정시키면 규칙의 목적에 감화된 사회 일원으로 재생산된다. (다)의 일망 감시시설이 지니는 특성인 불가시성이 질서를 보장해 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질서는 곧 감시의 목적이 훌륭하게 수행되는 사태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감시당하는 자들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일방적 시선에 노출시킴으로써 감시 집단의 규율 권력을 내면화한 채 ‘질서정연한 개인들’로 탄생되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국가나 사회는 감옥의 감시 체계가 확장된 형태로 정의될 수 있다. 그 속에서 구성원들은 감시하는 권력을 내면화함으로써 주체적 자율성을 박탈당한 개인이 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인간관계 내부로 침투하는 국가 권력을 경계하고 자율적 개인들의 연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바로 인간의 존엄성 회복으로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전펼치기

감옥 안에서 정부는 인신의 자유와 수감자의 시간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교육의 힘은 엄청난 것이다. 하루뿐만 아니라 연속적인 나날과 심지어는 여러 해에 걸쳐 사람에 대해 일어나고 잠자는 시간, 활동과 휴식의 시간, 식사의 횟수와 소요시간, 음식의 질과 배급량, 노동의 성격과 생산물, 기도의 시간, 이야기하는 방법, 그리고 말하자면 사유의 방식까지 규제할 수 있는 교육, 식당에서 작업장으로나, 작업장에서 감방으로의 단순하고 짧은 도정에서 육체의 움직임을 규제하고 휴식시간조차 시간의 사용방법을 결정하는 교육, 한 마디로 사람이 지닌 모든 육체적·정신적 능력과, 사람이 본래의 모습으로 놓여있는 시간을 지배하여 사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교육의 힘은 대단한 것이다.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해설

감옥 안에서 교육의 힘은 실로 엄청난 것이라는 푸코의 언술은, 그 이질적 용어들이 가지는 낙차의 폭으로 인해 충분히 역설적이다. 그 역설 안에서 감옥은 이미 죄를 벌하는 단순 수용소라는 정의로부터 이탈하여 교정과 교도와 교육의 도장으로 변한다. 감옥 안에서 행사되는 정부(국가)의 규율 권력은 개인의 신체와 정신에 전면적으로 내면화되고, 그 내면화의 결과는 지속적으로 사회화된 하나의 개인들을 생산해 내는 데에까지 이른다. 감옥이 아닌 교도소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통제와 규제가 습관화된 개인의 생산. 근현대 사회의 감시 체제로부터 주체성을 박탈당한 개인. 이제 개인은 국가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통제한다. 그 방식이 국가가 원하는 방식이라는 인식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는 석방될 것이다. 수많은 석방된 개인들이 형성하는 국가. 감옥을 학교나 공장이나 군대로 바꿔 푸코의 글을 다시 읽어 보라. 모든 개인들은 석방되었거나 혹은 석방되자마자 더 큰 교도소에 재수감되었다는 사실을 몸서리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출문제

1999학년도 연세대 정시, 2006학년도 숙명여대 수시 2, 2007학년도 서강대 수시 2

이지영|자음과모음 논술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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