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대입논술 가이드]세계경제위기와 시장만능주의

설경. 2008. 10. 27. 15:21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후 사회주의의 역사 실험은 종지부를 찍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통해 역사 발전은 종착점에 도달했으며 그것은 바로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였다. 이는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표방한 신자유주의를 정치철학적으로 정당화한 것이다. 이후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날개를 단 듯 확산되었고, 도도한 흐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화의 핵심적 가치는 시장만능주의다. 지구촌 사회 개별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시장의 독재를 의미했다. 시장에 의한 시장을 위한 시장의 메커니즘 앞에 그 어떤 것도 무릎을 꿇어야 했으며, 그렇게 하도록 강요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경제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FRB 의장은 이를 “100년에 있을까말까 할 정도의 신용 쓰나미”라고 지적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저금리 정책과 시장만능주의로 사실상 지금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인 그가 자신의 과오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실토한 말이다.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강조한 그는 은행의 파산상품 판매에 대한 규제에 반대하며 시장에 맡기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위기는 바로 그 파생상품에서 비롯하였다. 시장이 만능일 수 없음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만약 현 상황이 그린스펀의 말대로 100년에 있을까말까 할 정도의 사태라면, 당장의 위기 해법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관점에서 현 상황을 진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후쿠야마가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개방경제 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강의 기적도 경제의 개방 정도와 궤를 같이 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개방에 있어서도 문턱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세계화 담론은 일반인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은 상태였다. 1997년 환란위기와 IMF에 의한 경제통치를 거치면서 국민들도 세계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며, 아울러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가 순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역사적 흐름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그나마 개방의 폭과 한도를 조정했던 마지막 보루인 문턱마저 무너져버렸다. 개방경제 체제에서 문턱은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운명이다. 하지만 문턱이 너무 급격하게 무너짐으로써 우리는 지난 10년간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문턱을 무너뜨린 시장만능주의는 이를 당연시하고 정당화했다.

소위 좌파 정권이며 시장보다는 평등을 강조했다고 하는 지난 10년의 정권들조차도 시장만능주의의 위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느 전직 대통령의 말대로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지도의 변화는 시장이 모든 문제 해결의 적임자로 간주하는 국민들의 의식에 힘입은 바도 크다. 종교의 힘은 교리 그 자체의 완결성이나 완전성보다는 이를 믿는 신자의 수에 비례해서 나오는 것처럼, 시장이나 시장만능주의의 힘은 이를 신봉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의 영혼은 시장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친기업 정책을 표방하고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그런 신봉자들의 성원을 얻어 등장했다. 당연히 시장을 강조한다. 그런데 시장의 실패가 시장만능주의의 본고장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원조 시장만능주의의 패착을 들어 규제완화 위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을 태세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이기적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인)의 고삐(규제)가 풀리면 어떤 파국적 결과가 발생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임이 분명한데도, 우리는 고삐를 없애는 것만이 지고지순의 덕목인 것처럼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 사태는 역사적·문명사적 전환의 단초일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고 심대하다. 당장 우리 앞에 놓인 위기를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반성과 성찰을 통해 비전을 만들어내고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체제의 전환은 당대만이 아니라 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 시장의 자율성과 그 한계를 논의해보라.

2 ‘시장 독재’의 의미와 그 현상을 논의해보라.

3 시장만능주의란 무엇인가.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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