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대입논술 가이드]역사교과서 수정 논란과 역사 망각

설경. 2008. 11. 10. 15:34

몇 년 전부터 우익(소위 ‘뉴라이트’) 세력이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편향이며, 반대한민국적이고, 반자유민주주의적이라고 집요하게 공격해왔다. 국방부 또는 대한상의와 같은 단체에서도 이에 편승했다. 그러더니 교육과학기술부가 마침내 이에 굴복해 교과서 수정 권고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교과부의 주요 검토의견을 요모조모 따져봐도 왜 수정권고를 하는지 도통 그 까닭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 격이다. 문제로 지적된 구절들은 역사학 전문가가 봤을 때 저자가 어떤 사관이나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저자와 사관이나 입장이 다른 사람의 편에서는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르지만, 검인정제도 자체가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를 참아내지 못한다면 제도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보수 진영에서는 여전히 날선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교과부의 시정권고를 “국가정통성과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내용을 바로잡겠다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 더욱 엄격한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실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이런 주장은 허공을 향해 칼질을 하고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삿대질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과거’가 부끄럽다면 차라리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어느 날 갑자기 한강의 기적과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라는 점만을 역사에 기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E H 카의 말대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면, 그리고 소위 보수 우익의 말대로 현재의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우리가 한없는 자긍심을 느껴야 하는 그런 나라라면, 우리가 걸어온 길 역시 자랑스럽고 긍지를 가질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길을 걸어오는 중에 실패와 좌절, 수치와 오욕, 성공과 환희, 자랑과 영광이 뒤범벅됐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을 있게 한 원인이요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과거, 우리의 역사는 우리 것이고 소중한 것이다. 과거 역사적 현재 속에서 ‘우리’와 우리 ‘선조’가 완전하고 완벽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우리를, 우리 선조를 높이 평가하고 기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우리, 과거의 우리 선조가 현재의 우리처럼 불완전하고 결점을 지닌 존재였기 때문에 소중하게 생각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자긍심을 갖는 것 중의 하나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요 나라라는 것이다. 숱한 외적의 침입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이유 없이 침략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해석은 오늘의 입장에서, 달리 말해서 현재 상황에서 과거와 대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무기력한’ 민족이라고 부정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지만, 험난한 과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우리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역사를 선택적으로 망각하는 민족은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선택적 망각에 따라 만들어진 역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과거를 지배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보수 우익 세력들은 ‘현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있게 한 과거를 ‘완전하고 완벽한’ 역사로, 아니면 적어도 그에 가까운 역사로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과거에서 결점은 가급적 제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를 망각하는 것이요, 게다가 선택적으로 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쨌든 역사교육의 의미와 의의를 새롭게 부각시켜줬다는 측면에서 최근 우익의 문제제기와 교과부의 부화뇌동은 우리에게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줬고, 이것은 또 하나의 우리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다.

1 교과부의 역사 교과서 수정권고 조치를 평가해보라.

2 역사란 무엇인가를 논의해보라.

3 “역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을 논의해보라.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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