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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의 몰락...함께 사는 길 찾아야 할 자동차산업

설경. 2008. 11. 11. 16:12

국내 자동차산업에 내우외환의 시름이 깊다. 내수는 줄었고, 미국의 압박과 규제는 커졌다. 세계 경제의 장기침체 조짐과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미국 자동차산업의 회생' 선언으로 수출에까지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자동차업계로서는 구조조정이라는 '비상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조직 슬림화, 비용 절약, 생산 감소에 따른 감원 고통이 사실상 시작됐다. 쌍용자동차는 최근 공장부지를 팔고 유급휴직과 희망퇴직을 받고 있으며, 현대ㆍ기아자동차도 살 빼기에 나섰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오토넷의 합병으로 기술개발의 중복을 없애면서 인력도 줄이기로 했다. 중국 미국 등 해외공장의 가동도 줄여 올 하반기에만 10만 대나 감산하기로 했다.

적극적 대처를 통한 생존전략도 함께 세우고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불황으로 고급 대형차보다는 소형차가 많이 팔리는 세계적 흐름에 맞춰 생산 차종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거나,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는 '혼류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위기에 따른 변화와 대응에는 희생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위기 극복의 열쇠 역시 노사가 그것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자동차 노사관계를 보면 걱정스럽다. 위기가 닥칠수록 대립의 각을 더욱 날카롭게 세우곤 했다. 사측은 해고의 칼부터 일방적으로 휘두르려 했고, 노조는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을 외면하곤 했다.

도요타나 혼다 등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이미 갖춘 혼류생산 체제를 현대ㆍ기아차가 아직도 도입하지 못한 이유도 노조와의 협약 때문이다. 특정 차종의 생산 공장이 바뀌었는데도 해당 근로자를 몇 년째 배치하지 못하는 일까지 있다.

각국이 사활을 걸고 벌이는, 특히 미국이 총공세에 나선 자동차전쟁에서 이제 후진적 노사대립과 이기주의, 경직된 생산협약으로는 살아 남기가 어렵다. 노사협력과 유연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양보를 통해 고용불안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위기를 더 큰 위기와 불안으로 만드는 것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드는 것도 노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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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3'의 몰락… 한국 자동차산업 스스로를 돌아볼 때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가장 큰 목적은 GM·포드·크라이슬러, 이른바 '빅3'를 살려 보려는 것이다. 이미 빅3는 정상적인 기업으로 생존하기가 불가능한 상태다. 과거 GM 혼자서만 50%를 넘었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이 지금은 빅3를 합쳐도 50%가 안 된다. 2004년 이후 GM의 누적 적자만 700억달러를 넘고, 신용등급은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진 지 오래고, 주식 가치는 사실상 제로(zero)로 평가되고, 돈줄은 막혀 정부 구제금융 말고는 달리 기댈 데가 없다.

빅3의 미국 내 고용인원은 24만여명이다. 부품업체를 포함해 직·간접 연관산업까지 포함하면 자동차산업과 관련된 고용은 300만명에 이른다. 빅3 중 한 곳이라도 파산하면 미국 경제에 중대한 충격을 주게 된다.

그러나 오바마 당선자는 빅3 몰락 원인부터 크게 잘못 짚었다. 빅3의 시장점유율 추락은 우선 에너지 절약형 차 개발을 외면한 채 '기름 먹는 하마'로 불리는 픽업트럭, 미니밴, SUV 등에만 매달리다 고(高)유가로 타격을 받은 데 있다. 강성 자동차노조에 밀려 퇴직자에게까지 의료보험 혜택을 주고, 근로자 해고 때 평균 임금의 95%를 5년 동안 지급하는 경제 상식에 어긋난 경영이 명줄을 더 단축시켰다. 2005년부터 적자를 내면서도 노조에 밀려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했다. 빅3 몰락의 역사를 뒤집으면 그 뒤엔 미국 자동차 노조의 승리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 새 정부의 자동차 통상 압력은 세계 경제 침체로 휘청거리고 있는 국내 자동차업계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지난 9월까지 수출물량은 196만대로 작년보다 3.4% 줄었다. 올해 1~10월 한국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작년의 4.8%에서 5.2%로 0.4%포인트 느는 사이 일본차는 36.8%에서 39.9%로 3.1%포인트 늘어나 격차가 더 벌어졌다.

해외공장 과잉 투자문제도 심각하다. 현대·기아차는 내년 말까지 해외에서 300만대 생산체제를 갖추게 된다. 국내 자동차 5개사의 국내 생산능력 500만대를 합치면 연간 800만대 생산체제다. 그런데 올해 판매량은 수출과 내수 합쳐 500만대를 넘기 어렵고 내년에도 잘해야 올해 수준 정도밖에 안되리라는 전망이다. 이미 현대·기아차 해외공장 중 인도를 제외한 다른 공장들은 대부분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으며 감산 조치에 들어갔다고 한다.

노사문제는 한국 자동차의 앞날을 예고하는 불길한 조짐이다. 연례 행사처럼 파업을 벌여 수천억원의 생산 차질을 빚어 놓고도 격려금 명목으로 파업기간 중 임금은 다 챙기며, 수출이 잘되는 소형차 생산에 인력을 더 투입하려 해도 노조 허락 없으면 안 된다. 인력 감축 같은 구조조정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 자동차노조의 승리 역사가 바로 미국 자동차산업의 몰락 역사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지금 세계 자동차업계는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영과 노조의 양대(兩大) 혁신이 즉각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 자동차업계는 이 혼돈의 시대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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