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을 ‘고구마 파는 늙은이’ ‘환율, 주가변동 모델링을 한 죄밖에 없는 늙은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미네르바. 그에게 네티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그의 분석과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 미네르바는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국내외 금융시장 흐름에 대한 분석과 함께 현 정부정책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200여개의 글을 올렸다. 그의 주장들은 지난 7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의 불똥이 곧 한국에 튈 것을 예측했을 때만 해도 황당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 9월을 전후해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함께 경제가 구체적으로 위기상황에 돌입하면서 대부분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곤두박질친 펀드와 주가 때문에 전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제위기 상황이다. 정부는 계속 헛다리를 짚고 있다. 반면 미네르바의 분석은 예리했고, 전망은 정확했으니 신뢰를 보낼 수밖에.
그 다음 요인은 그가 제공하는 정보의 질에서 찾을 수 있다. 미네르바가 자신의 글에서 제공하는 각종 경제관련 자료들은 일반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전문적인 정보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는 이런 정보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영향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어떻게 그것을 피해야 하는지를 경제 문외한들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딱딱한 경제가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대리전사 역할도 훌륭히 해냈다. 경제살리기는커녕 시장을 엉망으로 만드는 정부의 정책들이 왜 잘못됐는지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엉터리 정보와 근시안적인 전망들에 대해서 꼬치꼬치 따졌다.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아주 논리정연하게. 그런가 하면 따끔한 충고로 사람들을 흔들어 깨웠다. 그는 누구든 경제지식이 없으면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세상이라며 “살아 남으려면 공부하라.”고 독려했다.
사이버상에서 미네르바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부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눈엣가시같은 존재를 그냥 넘어가자니 부정적 효과가 너무 크고, 입을 다물게 하자니 네티즌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고민에 대한 해법은 간단하다.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내놓으면 된다. 그래서 미네르바의 예측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많은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타고 전달되는 시대에 임시방편으로 국민들을 속일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투명해졌으며 국민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네르바와 같은 사이버 논객들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고 해서 정부 차원에서 수사하고 재갈을 물릴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자충수일 뿐이다. 건전한 토론을 막고, 건설적인 비판의 수용을 거부하면서 진정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미네르바 신드롬이 우리 사회에 던진 교훈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 Copyrights ⓒ서울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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