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자 Why? 지면을 마감하는 날이 수능(修能) 시험일이었습니다.
'수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독자 여러분마다 특유의 기억이 되살아 나시지요?
제가 고3 때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입시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꿔버렸습니다.
본고사 준비에 여념 없던 여름방학 끝 무렵, 본고사를 폐지하고 예비고사로 대체한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났겠지만 그때는 찍소리 못할 무시무시한 분위기였습니다.
▶어른들은 시험날 지각해 학교로 달려가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찼습니다.
"저렇게 중요한 날 늦잠을 잘 수 있느냐"는 거죠. 그 덕인지 시험 당일 새벽 4시 반에 강제로 일어나 시험장소인 대성고로 갔습니다.
얼마나 일찍 갔던지 교문은 닫혀있고 꿈결을 헤매던 수위가 "왜 왔느냐"고 묻던 일이 기억납니다.
난로도 없는 추운 교실에서 3시간 넘게 덜덜 떨다 치른 시험성적이 잘 나왔을 리 있겠습니까. 재수는 하지 않았지만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땅의 젊은이들은 강한 단련을 받았지요.
시험이 인생의 전부냐는 반론이 있지만 대학입시 외에도 중학입시, 고교입시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은 성인이 돼 가지요. 부모들은 아이들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일일이 간섭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교육열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당시 부모들은 알고 있었던 거지요.
지금은 어떤가요.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딸이 무슨 경시(競試)를 치른다고 한 중학교에 데려다 줬습니다. 거기서 말로만 듣던 광경이 펼쳐집니다.
아이의 자리에 앉아 덥혀주는 어머니, 보온병에 빨대를 꽂아 물을 먹여주는 어머니, 책상 높이가 안 맞자 몸소 바꿔주는 어머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감독교사가 와도 교실과 복도에서 버티고 물러서지 않더군요.
그들의 자식 사랑에 감탄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 하나 낳는 시대에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풍경(風景)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높은 사교육비도 좀체 꺾이지 않을 것이고요. 그런데 과연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Why?에서 제기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들은 지인(知人)들이 한결같이 말립니다.
편애(偏愛)가 될 수밖에 없는 부모의 자식사랑에 이의(異議)를 제기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고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갑식 기획취재부장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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