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대학입시가 자율화하면서 일부 대학이 ‘본고사형’ 논술 문제를 출제하는가 하면 고교등급제까지 도입해 정부가 추진해온 ‘3불정책(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 금지)’이 사실상 무너졌다. 대학들이 올해 초에 2010학년도 입시까지는 ‘3불’을 유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정부와 대학 모두 수험생과 학부모를 우롱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일 각 대학과 입시학원 등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치러진 일부 대학의 수시모집 논술고사에서 상당수 문제가 수학과 과학의 이론을 가미한 심층 문제풀이에다 외국어 해석까지 요구하는 본고사형 문제로 출제됐다.
외국어대는 지난 10월 3일 수시 2-1학기 ‘외대 프런티어전형Ⅰ’ 인문계열 논술고사에서 영어 지문을 제시했다. 영어 지문을 완벽하게 해석하지 못하면 문제를 풀 수 없어 본고사형 문제나 다름없었다.
서강대도 9월 수시 2-1학기 일반전형 자연계 논술고사에서 ‘진우와 서희가 도착 가능한 시간으로 x와 y축을 각각 설정해 둘이 만날 수 있는 확률을 구하라’는 수학 문제를 출제했다.
경희대 역시 수시 2-1학기 자연계 논술에 ‘어떤 시각 t에서의 전력을 구하는 함수를 제시한 뒤 하루 중 전력 소비량이 가장 큰 시간을 구하라’는 물리 문제를 출제해 논란을 가중시켰다.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연세대 등 26개 대학의 수시 2학기 논술고사에서도 이 같은 유형의 문제가 잇따라 출제될 것으로 보여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또 올해 입시에서는 사실상 고교등급제도 도입됐다. 고려대는 지난달 수시 2-2 1단계 전형에서 ‘조정 내신’을 적용했다.
‘조정 내신’은 과목 평균이 지나치게 높거나 표준편차가 작은 과목은 변별력이 없는 것으로 보고 등급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표준편차가 작고 평균점이 높은 외고는 등급이 올라가 사실상 고교에 따라 차별을 받는 고교등급제와 유사한 효과를 낳는다.
이처럼 대학들이 입시 자율화를 명분으로 ‘3불’을 어기고 있는데도 교육과학기술부를 대신해 입시를 총괄하는 대교협은 “제재 권한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박종렬 대교협 사무총장은 “대교협의 대입 관여 범위에 한계가 있고, 입시권한을 위임받았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교육정책은 행정기관 몫”이라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대학 입시 업무가 대교협으로 이미 넘어갔기 때문에 대교협 측의 문제 제기가 없는 이상 정부가 나서서 조사나 제재를 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의 최미숙 대표는 “대입 자율화를 통해 다양한 학생들이 선발될 것을 기대했는데, 특목고 출신 등 일부 학생들만 혜택을 보고 있다”며 “학생과 학부모로서는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경희 기자 sorimoa@segye.com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교육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고 학생은 나랏돈 17배 더 받는다 (0) | 2008.11.21 |
---|---|
홍대 김승연 교수 "십수년간 목격한 미대 입시비리, 이제는 입 열어야" (0) | 2008.11.21 |
김선호 "대학·전공 선택, 수능점수가 첫째 기준 아니다" (0) | 2008.11.19 |
최초 “사회심리치료사” “심리진단분석사” 전문자격증 (0) | 2008.11.19 |
수능 아랍어 열풍,3만여명 최다 (0) | 2008.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