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은 어디까지일까. 서울 서부지법이 의학적으로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 인간답게 죽을 권리, 즉 ‘존엄사’를 인정하는 국내 첫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판결의 핵심은 “평소 의사 표현·생활 태도, 기대 생존기간, 절망적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본인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사를 갖고 이를 표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대목이다. 사실상 죽음에 이른 개인이 헌법이 보장하는 인격·행복 추구권에서의 자기운명 결정권에 따라 죽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비록 하급심이지만 재판부의 판결에는 시대의 변화상을 담으려는 고민이 녹아있다고 본다. 신의 영역으로 통해온 생명이 의학기술 발달로 연장되면서 죽음과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이다. 삶과 마찬가지로 이제 죽음도 권리의 문제가 된 것이다. ‘자연스러운 죽음이 신의 섭리’라는 원칙이 변할 수는 없겠지만 의학 발달이 ‘자연스러움’에 대한 다른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 결과라 하겠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40여개주와 일본, 네덜란드 등이 존엄사를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국립암센터가 지난 9월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조사를 벌인 결과 85.7%가 ‘무의미한 치료 중단’에 공감한다는 답을 내놨으나 “생명경시 풍조와 장기매매 성행 등 부정적 측면이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한국기독교교단협의회 박용웅 생명윤리위원장의 말처럼 존엄사 불가론도 엄존한다.
그렇다면 ‘품위 있게 죽을 권리’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로 삼고, 누가 정할 것인가. 부작용 차단 장치는 있는가. 궁극적으로 생의 외경심을 잃지 않으면서 존엄사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는 가능한 일인가. 우리 사회에 던진 철학적이고, 의학적이며, 법학적인 난제들이다. 폭넓고 본격적인 논의를 통해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미룰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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