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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사 "과학과목은 식은죽먹기… 호기심을 가지세요"

설경. 2008. 12. 5. 15:01

초등과학은 단순 암기학습만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중등과정으로 넘어갈수록 논리적 사고가 수반되어 있지 않으면 과학은 어려운 과목, 비켜가고 싶은 과목으로 변한다. 과학적 진실에 입각한 논리적 사고능력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최병준 기자 blog.

이성지 미래영재학원 원장 "의문 갖는 자세가 학습 첫 걸음"

‘음악’이라 하면 사람의 감성에 호소하는, 과학과 전혀 무관한 예술 분야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미래영재학원 이성지 원장은 “음악이야말로 과학적 논리에 기초한 예술”이라고 말한다.

“이상적인 화음이라 일컬어지는 한 옥타브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1:2의 진동수가 필요해요. 완전5도를 내기 위해선 2:3의 진동수가, 완전4도를 내기 위해선 3:4의 진동수가 맞춰져야 제대로 된 화음이 나올 수 있죠. 화성법의 필수요소인 진동수의 이상적 비율이야말로 과학적 논리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예술 영역에까지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삭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원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음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과학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영역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 흥미와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는 것이, 이 원장의 과학학습에 대한 지론이다.

암기과목이란 편견이 흥미 반감

과학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세분화되기 전인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과학을 어려운 과목으로 인식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고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과학 성적에 편차가 생기고 학습의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과학은 이공계열 학문이니 당연히 남학생들이 잘 할 수밖에 없다’, ‘과학은 암기과목인데 암기한 내용이 문제에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등 과학에 대한 편견들이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이 원장은 과학이 어려운 과목으로 인식되는 가장 큰 이유를 ‘논리적 사고의 부재’에서 찾았다.

“우리나라 초등과학은 단순현상만을 보고 그저 ‘신기하네’, ‘재미있네’ 정도에서 그치고 맙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그 원인을 밝혀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죠.” 논리적으로 원인을 밝혀냈다면, 이를 응용해 다른 식으로 조건을 바꿔 응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라고 이 원장은 말한다.

“토론, 실험 없이 답을 바로 말해주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해야 하는데 바로 답을 말해주니 학생들이 겉으론 다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거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미리 답을 알고 상황을 보니 학생들의 즉각적인 피드백은 비교적 쉽게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더 복잡해지고 심층적인 사고를 요하는 문제 앞에선 답을 얘기해줘도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다. 원리에 입각한 실험을 통해 알아낸 게 아니기에 유기적 관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지 않는 과학 공부는 학습에 흥미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평균을 깎아먹는 문제영역으로 전락할 뿐이라고 이 원장은 잘라 말한다.

공식 외우기보다 적용이 중요

“과학은 암기과목이냐”는 질문에 그는 “배경지식이 많아야 하는 과목이지만 단순 암기과목은 절대 아니다”라고 답했다. 주기율표를 달달 외워 머릿속에 저장해두면 좋겠지만 못 외운다고 해서 화학을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리 또한 공식을 외운 것만으로는 문제풀이에 응용할 수 없다. 이 공식이 어떻게 나왔는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이 문제에 왜 이 공식을 적용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는, 상당히 논리적인 과목이기 때문이다.

특히 생물과 지구과학을 암기과목이라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 원장은 “생물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라고 말한다.

“생물올림피아드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는 아이들은 이미 수학올림피아드에서 두각을 나타낸 아이들입니다. 중등부 올림피아드의 경우 객관식으로 시험을 치르는데 생물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수준을 감안했을 때 그리 심화·선행이 요구되는 문제가 출제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금상은 100명 이상, 동상은 500명 이상을 주니 상을 받았다 해도 크게 자랑할 만한 일은 못되지요. 문제는 중등부 때 금상을 받았어도 고등부 올림피아드에선 동상조차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단기간의 암기만으로도 실적을 낼 수 있었던 중등부 올림피아드에 비해 고등부 올림피아드는 암기 위주로 학습한 학생들은 접근할 수도 없는 난이도 높은 문제들이 대거 출제되기 때문이죠.”

결국은 생물이든 화학이든 과학을 공부함에 있어 각 단원의 내용들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넘어 간다면 절대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수능 점수를 올리려 한다면, 그 동안 출제됐던 유형만 집중적으로 파고들어도 웬만한 성적은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수능이라는 특정 시험에서 점수를 내기 위한 일종의 학습요령일 뿐 일반적인 과학 공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이 원장은 단언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과학올림피아드와 영재교육원 준비,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 입시,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의 과학논술을 대비하기 위해선 암기만으론 절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의문 갖는 자세가 학습 첫 걸음

이 원장은 과학을 잘하기 위해선 우선 본인 스스로가 과학에 흥미를 느껴야 하고, ‘왜 그럴까’라는 의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학습법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상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해주려고 애쓰기보단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토론과 실험을 통해 스스로 알아가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과학교재에 나오는 <용수철 늘리기>를 예로 들었다.

-용수철에 물체를 달면 길이가 늘어난다. 더 무거운 물체를 달면 용수철 길이는 배로 늘어난다. 여기서 선생님은 “왜 용수철은 무게에 따라 늘어나는 길이가 다를까”, “왜 용수철은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드는 걸까”라는 의문점을 학생들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단원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분자 사이의 결합력에 관한 읽을거리를 준 후 아이들끼리 토론하는 장을 만들어주는 게 선생님의 역할이다.

토론과 실험의 장을 마련해주면 아이들은 4단계의 과정을 거쳐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무게가 왜 늘어났다가 줄어들었을까(의문 갖기)-고체는 분자 사이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었지(기존 지식 활용하기)-다시 한 번 용수철에 물체를 달아볼까(직접 실험해보기)-분자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려는 고체의 성질이 탄성력으로 발현된 거구나(원인 규명)라는 4단계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초등학교 때 제대로 된 과학을 시키려면 실험 학습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얘기해줘서 기억하는 원리와 아이들끼리 토론하고 연구하면서 도달한 원리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를 통해 습득한 원리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잘 잊혀지지 않지요.”

그런 의미에서 영재교육원의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창의적 사고능력을 배양시키는 수업 방식이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영재교육원 시험을 치르기 위해선 그야말로 선행학습이 필수였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 답이 없는 문제들이 많이 출제되고 있습니다. 백과사전에서 바로 암기해온 답이 아닌 창의적인 사고에서 도출해낸 답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죠.”

‘냉장고에 코끼리를 집어넣는 방법은?’, ‘어느 지역은 비가 내리는데 어느 지역은 날씨가 화창하다. 그 이유는’ 등의 다소 당황스런 문제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되고 있다. 하지만 답이 없는 문제일지라도 과학적 진실에 입각해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백과사전을 달달 외워 답한 답만도 못하는 게 이 원장의 조언이다.

이해 못한 채 반복하는 학습은 무익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이해가 안 되는 난이도 높은 참고서일지라도 여러 번 정독하면 결국은 100%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할 말이 많다고 했다. “난이도가 높은 참고서의 처음 이해도가 50%였으니 두 번째 읽었을 때는 60%, 세 번째 읽었을 때는 80%, 네 번째 읽었을 때는 100%의 이해를 할 수 있을 거라 많이들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 50%의 이해를 했다면 다음에 읽었을 땐 55%, 57%의 이해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자신이 읽었을 때 이해한 부분만 다시 집중적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그 외의 내용들은 허술하게 눈으로 한 번 훑어보고 지나가기 때문이죠.”

이 원장은 처음 시작부터 난이도가 높은 교재를 선택하기 보단 70% 이상의 이해가 가능한 교재를 선택하라고 권한다. 이 교재를 완벽하게 마스터한 후에 좀 더 어려운 교재로 바꿔가는 게 아이의 과학적 호기심과 성취욕을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이 원장은 학교에서건 학원에서건 과학시간에는 실험을 통해 원리를 깨닫게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창의적·논리적 사고는 이론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과학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과학 서적과 과학 잡지, 체험 학습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초등학교 4~5학년만 되면 특목고와 올림피아드 준비로 아이들이 어른 못지않게 바쁘지요. 하지만 너무 일찍부터 이론 위주의 과학학습을 시킨다면 오래 못 가 아이가 과학이란 과목에 지레 겁을 먹게 됩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학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요. 무조건적인 선행학습은 오리려 아이에게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되도록 과학적 환경에 많이 노출시키는 것이 좋고, 선행학습은 과학이란 과목에 흥미와 자신감을 느낀 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

베리타스 알파=장은희 기자 www.verita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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