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23. 단계별 전개/제시문장들의 논리적 연관성 살펴라

설경. 2008. 12. 8. 15:06


[한겨레] 우리말 논술

유형별 논술 교과서 / 23. 단계별 전개

■ 기출문제 유형 2 - 한양대 2008 수시2 [난이도 수준-중2~고1]


다음의 두 조건을 충족시켜 지문의 문맥에 맞게 이어지도록 두 단락의 글을 작성하시오.(400~500자)

1. 이어지는 첫 단락은 “또 한편 아슬아슬한 질주와 추월의 추격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는 관객의 감수성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라는 주제문으로 시작하여 구체적으로 쓸 것.

2. 마지막 단락은 “속도는 사람들의 정서적 불균형을 일으키고 배타적인 사회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라는 주제문으로 시작하여 쓰되, 전체 글의 주장을 요약하고 강조하는 결론으로 완성할 것.

속도는 매혹적이면서도 기만적이며, 기분을 고양시키는 아드레날린을 샘솟게 하면서도 잔인하며, 환상적이면서도 파괴적이다. 이와 같은 양면성을 극단적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가속도는 매혹적이어서 그 환상에 사람들이 도취되면 결국 다른 사람들을 잔인하게 파괴할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파괴된다는 것을 기만하려 든다. 떨어지는 물체의 가속도는 또 다른 속도를 인정할 수 없다. 양단의 면도날 같은 속도에 빠져든 사람은 자신의 기분만을 위해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감정을 순식간에 분출시키고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친밀한 인간관계에서부터 공적인 관계에 이르기까지 기계적인 가속도가 붙을수록, 우리는 수단과 목적 및 과정과 결과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린다. 오토바이 위에 바싹 엎드려 있는 사람은 오직 달리고 있는 순간에 매달려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환각의 상태에 빠진다.

우리의 일상은 시계들의 맹공격에 포위되어 있다. 사람들은 알람소리에 허겁지겁 잠에서 깨어나 ‘지금 늦지 않았나’ 하며 다급하게 하루를 서두른다. 갈수록 더 쪼개진 스케줄은 사람들을 과거와 미래로부터 단절된 시간의 조각에 매달리게 한다. 디지털 초를 계속 깜박거리는 시계는 채찍질 같은 마감시간으로 사람들을 지치게 하여 그들의 자유와 자율성을 박탈한다. 고속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은 스스로는 전혀 움직일 필요가 없다. 기계적 수단에 따라서 시간을 단축하면 할수록, 주체는 수동적이 되고, 일종의 감각적인 시차를 극복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주위가 빨리 돌아가는 상황이 가속도를 더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패스트푸드는 비만한 육체를 병들게 하고, 수박 겉핥기식 속성 지식요약은 지성을 말라비틀어지게 한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람들의 도덕적 의식은 멈추게 된다. 사람들은 움직이는 기계의 속도보다 빠르게 공격성을 폭발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스피드광이 도로에서 분노를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사례가 유럽에서 일어났다. 카레이서였던 존 훔블은 그의 말에 따르면 차를 몰다가 앞차가 너무나 천천히 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브레이크 페달 대신에 가속기를 밟아 그 차와 충돌했다. ‘속도를 줄이시오’라는 표지판 아래에서 일어난 이 사고로 존 훔블은 불구가 되었고, 충돌한 차에 탔던 사람들은 죽었다. 속도에 도취되어 아슬아슬하게 고조된 정신적, 육체적 긴장은 사람들의 감각을 극도로 방어적이게 할뿐만 아니라 동시에 공격성을 누적시키는 것이다. 속도의 논리는 결국 경주와 투기의 논리이고 경쟁 혹은 전쟁의 배타적인 극단의 방어기제와 폭력적인 파국의 공격성을 낳는다.


■ 해결 전략

논제는 제시된 주제문으로 시작하는 두 개의 단락을 구성하라는 단계별 조건 제시 유형이다. 특히, 주제문은 단락에서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으므로 이어지는 뒷받침 문장과의 적절한 연계가 중요하다. 따라서 주제문장+뒷받침 문장(부연, 이유, 사례 등) 간의 논리적 관계와 논거의 적절성 등을 중요한 평가 대상으로 삼겠다는 출제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첫 단락은 “또 한편 아슬아슬한 질주와 추월의 추격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는 관객의 감수성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주제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뒷받침 문장의 내용은 관객이 자동차 추격 장면이라는 액션에 몰입하게 되면서 영화 줄거리에 대한 이성적 판단보다 감성적인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유나 예시, 부연을 서술한다. 마지막 단락은 “속도는 사람들의 정서적 불균형을 일으키고 배타적인 사회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는 주제문으로 시작하되 전체 글의 주장을 요약하고 강조하며 마무리하라는 요구이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정서적 불균형, 배타적 사회문화 등에 관한 이유나 사례를 제시해야 한다. 요약하고 강조하라는 조건은 마지막 문장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마지막 문장에는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속도는 인간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내용으로 마무리하면 된다.


■ 자료 검색

삶의 여유…‘경제속도’가 주는 지혜


속도의 미학 속도와 관련되어 우리는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빠른 것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며, 빠르게 변하는 정보·문화의 발전 방향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우리 국민들 속에 내재된 ‘빨리 빨리’라는 조급함은 ‘대충 철저히’, ‘아무렇게나 멋지게’라는 행동을 유발하고, 이것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사고로 이어지는 총체적인 부실의 원인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느림>이라는 작품을 쓴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는 현대 문명을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집단 히스테리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현대 문명을 무한 질주하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올라탄 사람에 비유하며,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공간을 해체시키고 오로지 눈앞의 한 점만을 목표물로 보도록 만든다고 하였다. 최근에는 일상생활에 지친 많은 현대인들이 이러한 주장에 동조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느림의 미학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전원 생활, 무소유(공동소유), 시간과의 단절, 템플스테이 등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것이 그리 부정적인 일만은 아닌 듯싶다. 우리 인체는 외부의 자극을 초당 120m(시속 432㎞)의 속도로 두뇌에 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두뇌에 전달하지 않고 척수에서 무조건반사를 명령한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의 인체도 더욱 빠른 정보전달체계로 진화해왔으며, 이것이 수천 년간 인류를 생존시킨 기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토끼와 거북이’는 어렸을 적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우화이다. 비록 속도는 느리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교훈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이 우화를 뒤집어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만일 토끼가 자만에 빠지지 않았다면 거북이가 아무리 성실히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토끼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이 우화의 밑바탕에는 속도와 관련하여 토끼와 거북이에게는 숙명론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가끔은 갓길로 빠져나와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성찰하는 느림의 시간을 가질 필요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는 속도를 통해 공간의 물리적·논리적 제약이 극복되면 스스로 달성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도 미국에서 작성하고 있는데, 이메일이라는 빠른 전송수단이 없다면 아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전남대 신문방송사, 2008년 9월02일

<여유-삶의 속도를 늦추는 느림의 미학>

여유를 누리는 사람은 일이 남에 비해 적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별 볼일이 없으면서도 늘 분주하고 바쁜 것 같지만 실상 얻어지는 결과는 신통치 않다. 반면에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충분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여유 있게 마음을 갖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의 일이 많고 적음에 별 관계가 없다. 일에 대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쉽게 말하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에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유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일에 실수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반면 여유 없이 일하는 사람은 분주하기만 하고 실수가 많아서 오히려 일이 더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무슨 일을 대하든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한다. 생각 없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일을 생산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

현대사회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가진 것을 얼마나 유용하게 쓰느냐가 능력의 척도이다. 누가 얼마나 멀리 이동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적절한 거리를 이동했느냐가 중요하다. 초고속의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 속도가 중요한 것이다. 빨리 움직이려는 마음, 많이 이동하려는 마음, 많이 가지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삶에서 여유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진정 여유를 찾으려면 초고속으로 레일 위를 질주하고 있는 일상이라는 열차에서 뛰어내려야만 한다. 시간은 절약하여 어디에 비축해둘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현대인들은 시간을 절약하려 무진 애를 쓴다. 시간은 흘러가면 그뿐이다. 시간은 절약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껏 인생이라는 길 위를 달려오며 과속을 하고 있다. 과속의 원인은 남보다 더 높이 오르려는 욕망, 더 빨리 앞서가려는 욕망,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바삐 움직인 사람들이 과연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더 앞서 나아갔고, 더 높이 올라갔을까. 지금의 나는, 이토록 바쁘게 살아온 나는 남보다 더 많이 가졌고, 남보다 많이 앞섰고, 남보다 높이 올라갔을까. 조금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여유 있게 살면서도 나보다 더 많은 부를 가졌으며, 더 빨리 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과속만 배웠지 경제속도가 주는 지혜를 잊고 살아온 셈이다. -‘휴먼드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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