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와 국세청의 1급 간부들에 이어 농림수산식품부 1급 간부들도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이런 흐름은 다른 부처로 확대될 조짐이다. 겉으로는 해당기관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의 실세들의 언행에 비추어 볼 때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여당 간부들은 전임 정권에서 고위직에 오른 공무원들이 이명박 정부의 개혁 노선에 사보타주를 놓는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으며, 대통령 자신도 그런 맥락의 언급을 수시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력 특히 대통령의 권력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힘을 발휘하는 우리 현실에서 인적쇄신을 위한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일괄 사표라는 것은 허울에 불과할 뿐 최고 권력의 직·간접적인 간섭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헌법적 가치인 것이다. 그것은 의무이면서 또한 권리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해석된다. 권리라는 면에서 보면 공무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 때문에 그 지위가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무 면에서 본다면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공무에 임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이 공무원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으로는 용인하기 힘들면 퇴진하면 될 것이고, 정책 수행에 있어서 능력이 부족하거나 쓸모가 없다면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해당 공무원을 퇴진시키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상도의’를 운운하거나 이념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또는 전임 정권에서 고위직에 올랐다거나 전임 정권의 핵심 정책을 입안·수립·추진했다는 이유로, 일괄 사표를 받아 임의로 선별 수리하려는 행태는 명백히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위 공무원들은 현 정권의 인수위 시절 이미 ‘영혼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신념이나 가치관에 있어서 줏대가 없다는 혹평을 받은 바 있다. 직업 공무원제도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비추어보면 이런 혹평이 온당하다고만 할 수 없다.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은 정무직 공무원인 장관이나 차관이다. 장·차관은 그들의 지시와 통제를 받으면서 실질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지위에 있는 고위 공무원들을 설득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 없이 혹은 이런 노력을 비효율이라 생각해 자의적 기준에 따라 인사권을 행사한다면 공무원 사회의 자율성은 크게 위축될 것이고, 관료주의적 병폐는 쌓여만 갈 것이다. 자신의 지휘 감독 아래에 있는 공무원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장관이나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리란 기대는 무망한 것이다. 공무원이 인사권에 휘둘리는 ‘자동인간(automaton)’으로 전락할 때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장관이나 정권에 봉사하는 반쪽짜리 공복이 되고 말 것이다.
어느 사회나 법률과 제도가 마련돼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이 표방하는 가치가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법률과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는 문화가 우선 바로서지 않으면 안 된다. 고위직 공무원이 자발적으로 낸 사표가 무엇이 문제냐고 따진다면 그것은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강력한 칼자루를 쥔 권력이 음양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분위기 속에서 현실적으로 이를 거역할 공무원이 얼마나 되겠는가. 형식 논리적 해석에 따라 민주주의를 이해할 때 민주주의의 실질적 가치는 위험에 처하기 쉽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이라는 당시로서는 가장 진보적이라는 헌법을 가졌던 독일이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매몰되었던 것도, 그에 못지않은 헌법을 가졌던 우리나라 제1, 3공화국이 독재정치에 이르게 된 것도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의 부족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에는 형식논리가 넘쳐나고 있다.
1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 가치를 논의해보라.
2 ‘상도의(商道義)’가 정치적 덕목이 될 수 있는가.
3 형식논리와 민주주의의 위기의 관계를 논의해보라.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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