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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물구나무 서도 세상은 바로 보자

설경. 2008. 12. 25. 19:04

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요즘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얼핏 든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일류 선진국들이 경제이론을 물구나무 세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구나무 서기가 오래 버티기 힘든 자세임을 깨닫게 될 날이 조만간 온다. 세상만사의 인과관계를 잇는 연결고리는 길다. 어디서 절단하느냐에 따라 다른 견해가 성립한다. 금번 위기는 좋은 취지의 정책이 나쁜 결과를 낳은 전형적 사례다.

저소득 계층에게 '내집' 갖기 꿈을 실현시킨다는 정책구조 때문에 부풀려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품이 터지자 집 잃고 알거지 만드는 불행이 왔다. 수년 전 소외계층에게 금융혜택을 준 데다 수백만명이 신용불량자로 몰려 '잠수타고' 살게 만든 한국 좌파정권 정책과 닮았다. 결과가 좋아야 좋은 정책이고 보면,일자리 마련과 물가안정 이상의 서민대책은 없다.

금번 뉴욕발 금융위기는 돈이 과도하게 풀린 게 원인이다. 그런데 그 처방은 돈을 더 많이 풀기,유식하게 '양적 완화'란다.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금리를 역사상 처음 제로수준에 근접시키고,유동성을 대량공급하기로 했다. 부시정부의 7500억달러 TARP(부실자산 구제계획)를 능가하는 1조2200억달러 계획을 오바마팀이 손질하며 대기 중이다. 금융부문을 넘어 자동차 빅3까지 돈 물꼬를 튼다. 유럽,영국,일본도 뒤질세라 금융완화와 재정지출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부처 간 불협화음과 국회 난장판을 겪으며 절뚝 걸음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외국의 은행들처럼 국내 은행들도 당장 돈 풀기를 꺼리고 있지만 자기자본비율 맞추기 등 여건이 호전되면 돈이 돌기는 돌 것이다. 그때는 새로운 문제가 표출될 것이다. 현재는 원유 등 원자재 값이 떨어지고 돈이 돌지 않아 디플레이션이 당면과제지만 억수로 풀린 돈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인플레이션이 촉발되게 마련이다. 당장 발등의 불은 불황이지만 두루마기 끝자락에서 타들어오는 불은 물가고다.

예전에는 백만장자면 드문 갑부였다. 오늘날에는 매달 백만금 받지 않은 월급쟁이가 드물다. 억 단위 금액에 화들짝 '억'하고 놀랐던 한때가 있었지만 현재는 정부예산 조단위 숫자놀음이 익숙하게 들린다. 머지않아 경칠 날이 올 모양이다. 경(京)이란 조의 만곱절(10의 16승)이다.

코앞의 불길 잡기에 힘겨운 소방수들은 어느 나라에서도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현재 헬리콥터로 풀리는 돈을 다음에 쓸어모을 슈퍼 배큐엄 클리너를 미리 챙기는 나라는 없다. 위기극복의 정답은 돈이 아니라 구조조정이다. 낡고 병든 비효율 부분을 도려내지 않고서는 건강한 새 살이 생겨날 수 없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는 명언의 키워드는 변화와 개혁이다.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

미국의 자동차 빅3 구제안은 구조조정을 수반하지 않는 한 헛돈질에 그친다. 우리가 따라 배우지 말아야 한다. 일본 도요타도 서두르는 구조조정이 어디 남의 일인가? 고강도 구조조정만이 기업효율성을 제고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킨다. 노조,업계 등 이익집단의 이기심을 넘고 정치계의 인기영합주의를 헤치고 건너야 경쟁력 있는 국민경제의 문이 열린다.

호황과 불황을 수반하는 경기변동은 되풀이돼 왔다. 그러나 금번 위기 후 회복기는 과거와 사뭇 다른 새로운 성장동력산업 중심으로 전개될 듯하다. 이참에 세계의 정치경제 질서,특히 금융질서(규제,시장관행)도 크게 변모할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을 것은 원자재 확보,신상품 개발,시장확대를 위한 국제 각축전이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비효율의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 눈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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