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마련한 신문법·방송법 등 언론관련법 개정안을 둘러싼 소란이 유난스럽다. 쟁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신문과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의 20%, 종합편성·보도 채널의 49%까지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다른 쟁점들은 설령 원안대로 확정된다 하더라도 큰 무리 없이 되돌릴 가능성이 있으나, 거대 신문과 대기업의 사실상 방송 소유가 현실화될 경우 이를 되돌리는 것은 혁명이나 쿠데타와 같은 비상적 방법이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60% 이상이 반대하고 야당과 언론 종사자들이 극단적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반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공동선과 사적인 선(善)의 조화 속에서 유지되는 체제다. 개인들이 각자의 선(사익)을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공동선이 달성되고 극대화된다는 신화는 깨진 지 이미 오래다(시장의 실패). 자유주의의 실패다. 공동선은 경제논리로만 해결되고 달성될 수 없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주의는 경제적 평등주의 혹은 경제적 민주주의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그 산물이 자유민주주의였다. 이런 체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장기 호황을 누리는 동안 큰 문제 없이 유지되었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갈등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원래의 자유주의로 복귀하자는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냉전시대의 상대방인 사회주의권이 붕괴함으로써 그 실용성이 입증되는가 싶었지만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첨단이었던 미국의 현실이 여실하게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제2의 시장 실패).
단순화시켜 보면 상황이 이렇다는 것이다. 세계적 상황이 말이다. 공동선보다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선의 추구가 결국 공동체를 만사형통시킨다는 자유주의적 시장주의의 믿음이 전 세계적으로 파국을 맞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사적 이득 추구를 강조하고 이를 체제적 차원에서 보장해주어야만 우리 경제가, 우리 공동체가 번영할 것이라는 신조는 과연 시대적 흐름에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재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는 매우 젊은 나라이고, 따라서 역동적이고 과감한 실험을 할 수 있는 나라다. 그럼에도 남의 나라가 불필요하게 겪은 과정을 되풀이할 필요가 있을까.
실험을 해볼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교육과정과 정책을 이렇게 저렇게 실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 시스템을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그런 다음에 가장 좋은 시스템을 선택하자고 할 수 없다. 인간사 시간의 흐름은 재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 속에서 한 세상, 저런 체제 속에서 한 세상을 살아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인생 아닌가. 이런 점에 주목한다면 돌이킬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간의 구별을 명확히 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인 인간의 자세일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대재벌이든 거대 족벌 신문사든 그들이 방송과 그 외의 영역에 진출하는 것 그 자체를 반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진출한 영역에서 벌이는 행태가 공동선을 해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점이 자유주의 체제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순간 그들이 사유재산의 절대성, 천부인권성을 주장할 때 우리는 어느 정도 견제를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논쟁할 때 중요한 것은 거대신문과 재벌의 방송 진출이 경제적 성과를 어느 정도 내느냐가 아니라, 과연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정신의 실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느냐에 있는 것이다. 실용성(?)이 당위를 능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우리 사회는 지금 시험받고 있다.
1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을 둘러싸고 논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까닭을 논의해보라.
2 일단 사유화되면 돌이키기 힘든 까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이념에 비추어 논의해보라.
3 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논의해보라.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klogi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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