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평가/제시문 견지에서 다른 제시문을 비판하라

[한겨레] 우리말 논술

유형별 논술 교과서 / 24. 평가

■ 기출문제 유형 2 - 경기대 2008학년도 예시 [난이도 수준-고2~고3]

제시문 (가)의 시각에 입각하여 제시문 (나), (다), (라)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시오. (900자±50자)

(가) (전략) 우리나라에도 몇몇 도입종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예전엔 참개구리가 울던 연못에 요즘은 미국에서 건너온 황소개구리가 들어앉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삼키고 있다.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심지어는 우리 토종 개구리들을 먹고 살던 뱀까지 잡아먹는다. 토종 물고기들 역시 미국에서 들여온 블루길한테 물길을 빼앗기고 있다. 이들이 어떻게 자기 나라보다 남의 나라에서 더 잘 살게 된 것일까?

도입종들이 모두 잘 적응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절대다수는 낯선 땅에 발도 제대로 붙여 보지 못하고 사라진다. 정말 아주 가끔, 남의 땅에서 들풀에 붙은 불길처럼 무섭게 번져 나가는 것들이 있어 우리의 주목을 받을 뿐이다. 그렇게 남의 땅에서 의외의 성공을 거두는 종들은 대개 그 땅의 특정 서식지에 마땅히 버티고 있어야 할 종들이 쇠약해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것들이다. 토종이 제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는 곳에 쉽사리 뿌리내릴 수 있는 외래종은 거의 없다.

- 고등학교 <국어(상)>

(나) 변변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역을 통해 국제 분업의 이득을 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중략) 산업 혁명 이후 세계 경제의 눈부신 발전은 철저하게 분업의 이익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중략) 선진국 자신들의 환경과 노동 기준의 하락이 각국으로 확산되어 범세계적인 삶의 질을 파괴하고, 하향 평준화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선진국 NGO들의 억지 논리이다. (중략)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품의 질과 가격이 다양해지고 저렴해지는 혜택을 입는다. (중략) 기업 및 금융 분야의 구조 조정을 가속화해서 효율적인 금융 시스템과 기업 체질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 우리 모두의 의식과 관행을 국제 규범에 맞추어 나가야 하며, 경제 각 주체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제고해 각 분야에서 창의성 있는 고부가가치 상품이 탄생해야 한다. - 고등학교 <경제>

(다) 1970년대 오일 쇼크와 같은 위기의 시기에 항상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비관론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어느 나라나 1985년까지 증가했고 그후 세계화의 영향이 나타남(그리고 세계의 유가가 급락함)에 따라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였다. 주요국 중 하나의 예외는 공산주의로부터 시장자본주의로의 전환이 다른 체제전환국에 비해 지연된 러시아의 서글픈 사례이다. 더욱이 신(新)맬서스주의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이 1985년 이후 상승하는 상황에서조차 전세계의 인구증가세는 계속 둔화되었다. (중략) 성공적인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공통적인 요인은 각국의 대외무역의 비중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1971년부터 2000년까지 IMF는 세계의 국내총생산이 연평균 3.6% 이상 증가한 한편, 세계무역은 연평균 5.7% 증가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맬서스가 살았던 시대에 상상했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인 60억 명에 근접했다는 점까지를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실로 전례 없이 높은 비율이다. - <간결한 세계경제사>

(라) 지방자치단체들이 해외도시와 자매결연을 맺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세계화 추진 방침에 따라 1994년부터 해외도시와의 자매결연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민선 자치 시대에 들어서는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대구광역시가 ‘밀라노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것은 자치단체의 해외 교류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직물을 생산하면서 대구는 섬유도시로서 명성을 누렸으나, 제1·2차 석유 파동과 인건비 상승, 업계의 구조 개선 노력 부족 등으로 1980년대부터 대구의 섬유 산업은 긴 침체에 빠졌다. 그 후 대구는 1999년에 섬유산업을 다시 일으켜 ‘아시아의 밀라노’로 우뚝 서기를 꿈꾸며 세계 최고의 패션 도시인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자매결연을 맺고, ‘밀라노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밀라노 시와의 협력과 교류를 통하여 활발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고등학교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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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결 전략

각 제시문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세계화’이다. 현재 세계화는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사회적·문화적인 면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세계적인 자본·상품·노동·정보의 자유로운 이동과 시장논리의 확대가 경제적 복지수준을 높이고 제도를 수렴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국가 간, 계층 간 빈부 격차를 늘리고 기존 국가의 경제 관리를 불가능하게 해 일반 민중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가)의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가)는 세계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럽산 찌르레기와 황소개구리의 일화를 통해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나), (다), (라)는 세계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나)는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국제 분업의 이득’, ‘시장 개방의 확대’, ‘효율적인 금융 시스템’, ‘국제 규범’, ‘고부가가치 상품’ 등을 지향해야 한다는 논리로 세계화를 정당화하고 있다. (다)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각국의 국민 소득이 빠르게 증가했다는 점을 근거로 세계화를 찬성하는 글이다. (라)는 정부의 세계화 추진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서 대구광역시의 ‘밀라노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이 논제에서는 제시문 (가)의 ‘반세계화적인’ 입장에 서서 제시문 (나), (다), (라)의 시각·논리·주장 등이 지니고 있을 수 있는 문제점을 얼마나 창의적이고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가를 측정하려 한다. 그러나 (가)의 관점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세계화를 찬성하는 견해를 지니고 있을지라도 제시문 (가)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따라서 (가)의 시각에서 각 제시문을 이론이나 사례를 들어가며 평가해야 한다.

비판적 평가에서 논거로 제시할 만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우선 (나)에서 빈부 격차의 확대, 후진국 경제의 선진국 종속, 투기자본에 의한 금융위기, 분업에 따른 인간소외, 문화 다양성의 상실, 환경파괴 등 일반적인 세계화 반대론의 근거 등을 제시하면서 논리를 펼치면 될 것이다. (다)의 경우, 무역 확대에 따른 경쟁 격화, 다국적 기업의 지배와 국내 기업의 종속화 등의 측면을 부각하면 좋을 듯하다. (라)의 경우에는 국내 다른 도시와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배제한 채 외국 도시와의 연계만으로는 섬유산업의 장기 불황을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나,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구상했음에도 대구의 섬유산업이 아직도 불황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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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검색

세계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 나의 문제

어떤 외부 공격도 없는 가운데 시장경제·자본주의·세계화의 ‘중심 중의 중심’ 월가 스스로 내파한 굉음이 전세계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유일 세계제국 미국이 아니던가? 가장 놀라운 것은 미국의 위기가 곧 (세계와) 한국의 위기가 되고, 또 내 일터의 명운과 내 경제 수준과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급속한 세계화로 세계 문제, 우리 문제(국가 문제), 나의 문제(개인 문제)는 이제 분리 불가능해진 것이다. 우리네 개별 삶의 세계성·국제성이다.

이번 위기에 대해 경제적·금융기법적·재정적 해법들이 난무하나 그것들은 문제의 본질도 바른 접근도 아니다. 최고의 경영·금융기법을 창조한 그들이 아닌가? 사회주의 붕괴로 견제세력이 소멸된 이후 난무한 ‘승리주의’와 ‘역사종언론’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닌 문제의 치유를 차단한 주범이었다. 시장만세·시장만능 담론이 시장경제 위기를 초래한 근본 요인인 것이다. 위기 때 시장이 국가에 의존하지 않은 적이 있는가?

둘째,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다. 첫째로 미국 정치이념의 폭과 정당 질서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반영·해소하기에는 지나치게 협애하다. 둘째로 정치 주기와 기업 주기, 선거 주기와 시장 주기의 관계로서 현재의 미국 헌정제도에서는 정치의 적절한 기능을 통해 시장을 교정하기가 어렵다.

셋째, 시장의 실패를 넘어 국가와 사회의 실패라는 점이다. 근대세계가 보여주듯 국가·시장·사회의 균형이 파괴될 때, 특히 국가나 시장이 독주할 때 그 귀결은 가공하였다. 바람직한 인간공동체를 향한 큰 지혜들이 사회의 역할을 강조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과도한 사익추구에 대한 공공 가치를 통한 적절한 통제가 불가능할 때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신자유주의가 파괴한 국가·사회·시장의 균형 회복이야말로 문제해결의 요체인 것이다.

미국은 지금 ‘자본주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주의 붕괴 20년도 못 되어 ‘시장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의존 및 중국의 영향력 증대라는 고통과 수모를 목도하고 있다. 사회주의 해체와 신자유주의의 위기, 즉 계획 만능과 시장 만능 두 극단주의의 종언으로 향후 이념과 체제의 글로벌 수렴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변화의 충격은 늘 밖에서 온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의 궁극적 귀결은 언제나 변화에 대처하는 내부의 대응에 달려 있다. 우리는, 나는 이 세계적 세기적 격변의 중심에 서서 어떤 대응을 준비할 것인가?

-박명림 연세대 교수, <한겨레> 2008년 10월14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