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15일 이사회에서 사퇴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한다. 이 회장은 2003년 회장직에 올랐고 2007년 연임해 내년 2월까지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두고 있다.
이 회장의 조기 사퇴와 관련해 포스코에서는 "새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고 조직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민들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포스코는 외국인 지분이 43%에 이르는 민간기업이다. 정부는 단 한 주(株)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민간기업의 대표가 물러나는 것이 왜 정부 부담을 덜고 조직을 안정시키는 일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세계적 경기침체로 포스코가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다. 작년 12월과 올 1월 사상 처음으로 생산물량을 줄였고 1월엔 적자가 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서 포스코 주주들이 경영 책임을 물어 이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면 그건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포스코 주주들로부터는 아직까지 이 회장의 경영 책임을 묻는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포스코의 경영이 나빠지기 훨씬 전부터 시중에선 이 회장의 거취와 관련한 소문이 무성했다. 새 정부가 공기업 CEO 물갈이를 추진하면서 포스코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이 회장 사퇴가 그 소문을 뒷받침해준 셈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포스코를 가리켜 흔히 '민영화된 공기업'이라고 한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민영화된 기업은 더 이상 공기업일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포스코를 공기업으로 간주하고 있고, 그래서 회장 인사를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번만이 아니라 역대 정부가 다 그랬다. 김영삼 정부 때는 황경로·정명식 회장이 물러나고 김만제 회장이, 김대중 정부 때는 김만제 회장이 물러나고 유상부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는 유상부 회장이 물러나고 이구택 회장이 취임했다. 임기를 남겨놓고 물러난 회장들은 모두 자진 사퇴한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정부 지분이 남아 있어 주주로서 경영책임을 묻는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부터는 그것도 아니다. 더욱이 이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도 하는 일은 과거 정부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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