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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기관 자료 의존…“외부지원 필요” 지적도
2008년 새입시제도가 시행되면서 교사들의 진학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각 대학의 전형유형과 전형방법이 모두 달라 일일이 입시요강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시 2학기 모집을 실시하는 전국 4년제 대학만 185개, 학생들의 진학 지도를 위해 검토해야 하는 20~30쪽의 입시요강이 185권에 이른다는 말이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제공되는 입시기관의 자료에 기댈 수밖에 없다. 입시기관의 자료는 대개 상위권 위주로 제작되기 때문에 교사들은 중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상담에 어려움을 겪는다. 일부 상위권을 뺀 대개의 학생들이 교사가 아닌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개별적으로 입시 정보를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함께하는 교육>이 네이버 ‘수만휘’ 카페 회원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90%에 달하는 학생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입시 관련 정보를 얻고 있다. 담임교사로부터 도움을 받는다고 응답한 학생은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자신의 성적을 ‘상위권’이라고 대답한 학생들은 99%가 담임교사로부터 정보를 얻고 있다고 한 반면, ‘중위권’ 또는 ‘하위권’이라고 대답한 학생 중에서는 5%만이 담임교사를 통해 진학 정보를 접한다고 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정아무개 교사는 “교사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상위권 대학에 집중돼 있는데다 입시제도가 새로 바뀌면서 중하위권 대학들을 지망하는 학생들의 진학지도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원래 진학지도가 아이들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해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학생들과 틈틈이 대화하고 상담해야 하는데 늘 잡무에 시달리는 교사들로서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다. 특히 중하위권 학생들은 고만고만한 대학들 중에 자신에게 맞는 대학을 ‘선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진학 지도에 상당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국 4년제 대학만 199개, 전문대학은 2006년 현재 152개다. 교사들이 학생 개개인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위해 수집해야 할 정보가 막대하다. 교사나 학생의 손이 닿지 않는 대학의 정보가 더 많다. 알려진 대학과 학과에만 지원자가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입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전담할 외부 지원 기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3일 부산교육청이 문을 연 ‘대학진학지원센터(http://jinhak.pen.go.kr)’는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학을 담당하는 일선 교사들의 요구를 시교육청이 적극 수렴해 교사들의 진학 지도를 지원하는 외부 단체가 꾸려졌기 때문이다. 센터는 부산 지역 진학 지도 담당 교사들의 정보 공유를 위한 구심점 구실을 하는 동시에 지역 수험생에게 필요한 ‘맞춤형’ 정보를 생산해 공급한다. 센터에 소속돼 입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부산 국제고 권혁재 교사는 “현재의 입시제도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해서 교사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개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며 “교사들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진학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네트워크’가 구축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센터 건립에 참여했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은 2005년부터 ‘대학진학지도지원단’이라는 현직 교사들의 모임을 꾸려 진학담당 교사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활동 교사들은 서울 진학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직무연수 등에 참여해 일선 교사들과 진학지도의 노하우를 공유한다. 출범 때부터 지원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외고 강병재 교사는 “현직에 계신 분들 중에는 진학 지도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의 노력을 교육청이 구심점이 돼 서로 좋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 교사나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역시 지원단 교사로 일하고 있는 혜성여고 조복희 교사는 “정보 하나를 내가 갖고 있으면 하나지만 여러 사람과 나누면 20개, 40개도 금세 만들 수 있다”며 “교사들은 내 제자, 우리 학교 학생만을 위한 진학 지도 말고 모든 학생들을 위한 진학 지도를 위해서라도 정보를 공유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대학입시전략실’ 운영하는 인천 광성고
전교생에 맞춤전략 “우리학교처럼 해보세요”
인천 광성고는 지난 수시 1학기 모집에서 충남 청운대에 7명의 합격자를 냈다. 다른 학교의 지원자들이 모두 낙방한 것과는 뚜렷이 비교되는 결과다. 이 학교 대입전략팀장 및 진학부장 송선용 교사는 “청운대의 전형은 내신 두 과목을 반영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었다”며 “두 과목을 반영했을 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학생들 위주로 진학 지도를 한 것이 소득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도 전형요소와 방법에 대한 꼼꼼한 분석이 뒷받침 돼야함을 보여준 것이다.
각 대학의 전형방법이 모두 다른 새 입시제도에서는 학생의 ‘평균 성적’이 중요치 않다. 한두 과목만 잘해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입시전략이 필요한 것은 상위권이나 중하위권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을 분석해 강점과 약점을 찾고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한 ‘전략’을 세워 주는 교사는 극히 드물다.
중하위권 학생들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광성고가 갖춰 놓은 대학 진학 지원 시스템은 남다르다. 2005년부터 학교가 운영하는 ‘대학입시전략실’이 핵심이다. ‘진학 도서관’의 개념으로 설치된 이 곳에는 각 대학에 대한 정보가 집적돼 있다. 대학별 부스가 마련돼 입시요강이나 그 대학과 관련한 모든 정보가 한 데 모여 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 가공하는 일은 대학입시전략실 교사들의 몫이다. 학생들은 틈 날 때마다 들락거며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다. 상주하는 교사가 있어 언제든 상담을 요청할 수도 있다.
대학정보 모은 ‘진학도서관’
전담교사가 정보 분석·가공
3년 성적 DB관리 1:1 상담
또한 광성고는 모든 재학생의 3년 성적을 따로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리한다. 재직 중인 교사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에 학생들의 성적을 일일이 입력해 성적 추이를 확인한다. 경쟁력 있는 과목을 찾아내는 것도 쉽다. 최근 소수의 과목만을 지정해 반영하는 대학의 전형에 ‘맞춤형 전략’을 세울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대학 진학은 고교 3년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교육활동이라는 광성고의 교육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논술과 구술면접 등 까다로운 대학별고사를 치러야 하는 학생들을 위한 3년 계획의 독서지도 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 각 대학이 선정한 어려운 책이 아닌, 학생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얇고 쉬운’ 책을 고른다. 국어부터 미술, 기술가정까지 과목별로 추천 도서가 선정되고 독서 활동이 수행평가로 채점된다. 중간 기말고사에도 추천 도서와 관련된 문제를 출제하는 등 독서 활동을 효과적으로 교과과정에 포함시켰다.
학교의 체계적인 진학 지원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수혜자가 김요한(18)군이다. 학생회장인 김 군은 건국대 리더십 전형에 응시했다. 내신 성적이 안 좋았던 터라 자기소개서와 논술 대비에 특히 신경을 썼다. 자기소개서는 대학입시전략실 교사와 의논해 작성하고 교사의 도움으로 수차례 수정을 거쳤다. 논술 대비는 학교에서 방학 때 열었던 특별 보 수업이 큰 도움이 됐다. “우리 학교 애들은 인터넷 사이트 많이 안 봐요. 학교에 오면 자료도 많고 선생님하고 상담하면 문제가 해결되니까요.” 바쁜 친구들을 대신해 입시전략실에서 이런저런 입시 정보를 찾고 있던 김 군의 말이다.
송 교사는 “옛 시가지에 위치해 가장 적은 학생이 배정되고 교육 여건도 좋지 않다”며 “그럴수록 학교가 학생들의 대학 진학에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고 판단해 대학입시전략실을 운영하게 됐다”고 했다. 학생들은 교사의 도움으로 충분히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 학교에서 3년 이후를 내다 보는 세심한 진학 지도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취재사족
‘간판’에 대한 집착이 먼저 사라져야
중하위권 학생들의 진학지도와 관련한 기획기사를 취재하면서 두 달여 전 찾았던 분당 이우고가 생각났다. 이우고는 최근 졸업생이 일부 명문대에 진학한 것이 알려져 유명세를 탄 바 있는 도시형 대안학교다. 당시 이우고 이수광 교감은 “대안학교에서 명문대에 간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학생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배움을 찾는 데 성공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했었다. 이우고에서 진학은 철저하게 학생의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에 위치한다. 그리고 교사는 심판자가 아닌 파트너로서의 구실을 한다.
유명한 입시 전문가들이 내놓은 입시 분석 자료들을 교사는 생산할 수 없다. 입시를 업으로 하는 이와 교육을 업으로 하는 이가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교사들이 진학 지도를 ‘교육활동’의 차원에서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생들의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대학을 뽑아주고 합격 가능 여부를 예측하는 일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료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고교 전과정에 걸쳐 학생의 목표를 함께 고민하고 목표에 맞는 성적 관리를 도와 주는 ‘예비적’ 성격의 진학 지도가 교사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그 과정에서 지역에 숨어 있는 알짜 대학에 대한 정보와 전망 있는 전문대학에 대한 소개가 이뤄진다면 ‘간판’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집착도 조금 수그러들지 않을까.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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