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대입논술 가이드]범죄자의 인권은 무시해도 되나

설경. 2007. 9. 19. 00:21
어느 사회나 비도덕적인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학력위조 또는 사기가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학력사기가 한 번 터지자 마치 도미노처럼 학력관련 위조논란이 연달아 번지는 현상은 예사롭지가 않다. 우리 사회에 유달리 비도덕적인 사람이 많기 때문일까. 이에 대해선 심층적인 사회학적 연구와 분석이 있어야 답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거나 학력이라는 벽이 엄연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빚어진 것은 사실이다.

사회의 어떤 지위나 직업은 학력에 의존되어 있고, 그 대부분은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학력이라는 벽이 합리성의 범위를 넘어서 마치 신분을 결정짓는 잣대처럼 작용해왔다는 점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 벽이 의사나 판·검사처럼 외부의 법이나 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부에 의해서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데 있다. 외눈박이 사회에서는 두눈박이가 정상일 수 없듯이 모두가 학력의 벽을 마음속에 담고 있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학력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지 않을 수 없고, 그 벽의 안쪽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학력의 벽을 ‘공식적으로는’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다고 비난하지만, 실질적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사회, 그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그 벽의 안쪽에 ‘비정상적으로’ 넘어 들어갔을 때, 이 사람을 어찌할 것인가. 학력의 ‘위조’와 ‘사기’를 접하면서 비난과 함께 자기반성이 동시에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비합리적이고 자의적인 벽이 어디 ‘학력의 벽’뿐일까. 얼마 전 ‘학력사기’를 촉발시킨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알몸 사진이 문화일보에 실렸다. 신씨의 사건이 정부 고위층과 연루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복잡해지고 있지만,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신씨의 알몸 사진이 일간지에 실린 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또 다른 벽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자신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교묘하게 섞어서 결국에는 자신의 불법적·비도덕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벽’이 그 하나다. 문화일보 편집국장은 알몸 사진 게재에 대해서 “신씨가 본인의 사회적 진출이나 성장을 위해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접근, 몸까지 동원해서 그 사람들을 이용한 것이 신씨 사건의 본질”이라며, 이 본질을 알리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에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벽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정론(正論)을 표방해온 신문이 자신이 추구하는 이익을 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용납하는 행태가 단순히 앞의 신문에만 해당할까. 정파적 혹은 집단적 이익을 위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정당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인 벽이 무엇을 보여주는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이번 알몸 사진의 게재라고 판단된다. 거기에는 보편적 가치가 자리 잡을 여지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뿐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벽이라는 것은 결국 가치관과 관련한다. 최근에 벌어진 일들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할 것인지를 요구하고 있다. 앞에서 든 벽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벽이었다. 학력의 벽, 이익추구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벽, 인권에 대한 편견의 벽 등이 그것이다. 이런 벽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한민국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 벽이 없을 수가 없다. 다만 그 벽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때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런 정당화 조건에 맞는 가치관이 지배적이 될 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벽이 마련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벽을 ‘비정상적으로’ 넘는 사람에 대해서 정당하고 단호하게 비난하고 단죄할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 사회의 학력의 벽이 문제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2.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알몸 사진 게재가 부당한 까닭을 논의하라.

3.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부당한 벽 하나를 들어 논의해보라.

〈최윤재/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