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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독서까지 대입의 희생양되나

설경. 2007. 9. 20. 00:07

마음의 양식인 ‘독서’가 대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 할 위기에 처했다. 교육부가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성적에 반영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

교육인적자원부가 올해 7월 발표한 교육부훈령 719호 제 15조 3(독서활동상황)을 보면 독서활동에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는 고교생’을 교과지도 교사나 담임교사가 선정해 학생 생활부 중 ‘독서활동 상황’란에 종합서술형으로 기재하도록 돼 있다. 독서활동 내역은 성적에 반영할 수 있으며 독서기록장, 독서 포트폴리오 등의 증빙자료는 학생 개인이 보관하되, 대학에서 요구 시 제출해야 한다. 

‘독서활동 상황부’ 어떻게 도입됐나
 
교육부는 지난 2004년 10월 교육혁신위원회의 제안을 받아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공표했다. 이 개선안에는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기록하는 ‘독서활동 상황부’를 작성하여,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교육혁신위원회는 지난 2005년 8월 7일 독서생활기록부 도입과 관련한 최종보고서를 심의·의결했다.

이에 교육부는 '고등학교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이란 이름아래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을 마련하고, 지난해 시범운영을 거친 뒤 올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부터 독서생활기록부를 도입했다. 2007학년도에는 초등 1·2학년, 중학 1학년, 고교 1학년을 2008학년도에는 초등 3·4학년, 중학 2학년, 고교 2학년까지 각각 적용하고 2009학년도부터는 모든 학년에 적용하도록 했다.

한마디로 ‘독서활동 상황부’, 일명 '독서이력철'불리는 이 제도는 독서와 학교 성적을 직접적으로 연계해 학생의 독서 이력을 누적적으로 기록하고, 이 기록을 대학 진학에 필요한 내신 성적의 한 부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독서이력철’이라는 용어는 사서교사들 사이에서는 쉽게 통용되는 말로, 학생들의 독서성향, 상담내용을 등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던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현재 교육부가 주장하는 독서활동 상황부는 입시반영자료로 활용된다는 것과 강제성을 띈다는 점에서 이와 다르다.

이 제도를 접한 현장의 교사와 학생들은 대부분 학습 부담과 경쟁이 심화되고, 독서교육까지 사교육에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훈령에서 제시한 ‘특기할만한 사항이 있는 학생’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결국 소수학생들만 혜택을 얻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2006년 시범학교에서 실시한 보고서를 보면 학부모 중 80%가 대입전형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독서활동을 기록해 달라“고 요구했고, 교사들은 서술형평가 등을 통해 선정한 10-15%의 학생만 기록하려고 했다.

강제적 책읽기, 학습 부담만 가중 할 뿐

지난해 시범학교로 선정돼 독서기록장 쓰기를 했던 무학여고 김형경(고2)양은 강제적 책읽기는 깊이 있는 독서를 방해하고, 책읽기운동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반대했다.

김 양은 "정책의 목적이 책을 단순히 '많이' 읽게 하는 것이라면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좋은 책을 폭넓게 읽고 이해하고자 한다면 역효과만 발생 할 뿐이다"며 "또 특기한 학생, 즉 상위 10~15%학생들을 선정해 성적을 반영한다면 학생들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부담에 시달리고, 독후감 베끼기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곡여고 1학년 김아름 양도 독서기록장이 또 하나의 학습부담이 될 것 같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직 학교에서 독서기록철을 시행하고 있지 않은데, 도서동아리 활동하면서 알게 됐다. 책읽기 권장에 도움이 될 것 같긴 한데, 취미생활인 독서까지 점수로 반영하는 것은 반대한다. 지금도 내신관리와 수능 대비하느라 시간이 없는데, 책읽기도 성적에 들어가면 부담이 클 것 같다.”

사실상 과목별로 책을 한권씩만 지정해도 학생들에게는 동시에 4-5권이 넘는 양의 교과서가 늘어나고 학습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반면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국민의 한 달 독서량 평균 0.8권 세계 166위(2003년 유엔 조사), 우리나라 지식국력(知識國力) 미국의 5.9%, 일본의 14% (2005년), 우리국민 가구별 한달 책 구입 평균비용 7,631원(2007년 통계청) 등 우리나라의 독서문화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를 보면 교육부의 독서권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고 도서동아리 회원인 윤상웅(고2)군은 “독서항목이 내신점수에 포함되면 학습부담은 커지겠지만, 이밖에 독서습관을 관장하는 방법이 없다. 성적에 들어간다면 좋든 싫든 일단 책을 읽을 것이고, 차츰 독서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지고,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의 독서량이 증가할 것”라고 찬성했다.

줄거리 암기, 실적쌓기식 독서 권장하는 격

하지만 교사, 청소년 지도사 등 전문가들은 독서를 대학입시와 연관시켜 권장하는 것은 독서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근본적으로 헤치고 독서의 단편지식화, 학습부담 가중, 교육불평등, 개인정보침해 등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송곡여고 이덕주 사서교사는 "독서이력철의 도입은 단기적으로 출판시장의 활성화, 독서교육 담당교사나 사서교사들의 위상강화, 학교도서관의 외형적 발전을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 장기적으로 아이들의 책읽기 감상능력을 저해하고 독서교육 파행을 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책 읽는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책을 활용한 도서관을 교실로 삼는 수업이 이뤄져야 하는 등 교수법의 변화가 필요하며, 전문사서교사를 갖춘 학교도서관 설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청소년문화예술센터에서 중·고등학교 도서동아리연합 모임을 담당하는 이소영 간사는 독서이력철쓰기는 결국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위한 인센티브제라고 비판했다.

이 간사는 "책읽기는 순수함을 갖춰야 하는데, 책 한권 당 점수 1점씩으로 점수화해서 평가하는 게 가장 문제다"며 "또 전체학생을 대상으로 시행하면서 대입에서 효력을 보는 건 상위 20%미만이라는 점이 인터넷에서 독후감을 사고, 남의 것을 베끼는 식의 왜곡된 책읽기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독서이력철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한 교사도 독서교육의 왜곡을 경고했다. 그는 "교사들이 의미 있는 독서교육의 방법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시행하면 대량적·형식적 기록을 하는 쪽으로 제도가 변질되고 만다"며 "리는 그 전례를 이름만 남고 내용이 빈 봉사활동기록제도에서 아프게 체험했다"고 말했다. 



/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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