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분수대] 메세나 mecenat

설경. 2007. 9. 20. 00:50

[중앙일보 홍승일]  ‘말 탄 카우보이’ 담배 광고로 익숙한 필립모리스가 메세나의 모범사례로 ‘현대 무용의 은인’이란 칭송을 듣기까지 무려 수십 년을 인고해야 했다. 필립모리스와 밀러맥주의 지주회사인 미국 알트리아 그룹은 술·담배 회사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덜어 보려고 1950년대 들어 문화예술계 구애에 나섰지만 왕따 신세였다.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장사하는 기업의 돈은 받을 수 없다’고 공연단체들이 집단 보이콧한 것이다. 1958년 미 켄터키주의 아트 페스티벌 협찬에 성공해 간신히 메세나 기업 명단 귀퉁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간판제품인 말버러 담배 수익금으로 진행하는 행사에서조차 말버러 브랜드를 숨겨야 하는 수모를 상당 기간 겪었다.

 IBM은 28억 달러의 큰 적자를 낸 91년에도 미술관 개·보수 사업을 지속해 1600만 달러 넘게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주 금전 배당을 줄이는 대신 시민에게 문화 배당을 늘리겠다’는 당시 보도자료 문구는 두고두고 입에 올랐다.

 로마시대 문화예술 지원에 열심이던 한 정치가의 이름을 딴 ‘메세나(mecenat)’ 운동. 우리나라에서도 94년 한국메세나협의회 설립 무렵 자선의 단계를 넘어 후원, 나아가 투자와 상생의 경지로 치닫는다. 문화예술계를 도움으로써 포스코는 철의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중화하는 이미지 변신을, 르노삼성자동차는 현지화라는 반대급부를 얻었다. 고 박성용 금호 명예회장은 금호아시아나 그룹 전체를 동원해 ‘한국의 메디치가(家)’를 일구려 했다. ‘국가 간 글로벌 경쟁은 문화 경쟁’(기 소르망) 이라는 지적이 진부할 정도로 품질 소비가 품격 소비로 빠르게 변모하는 시대다.

 『추일서정(秋日抒情)』의 김광균은 일찍이 메세나의 묘미를 터득한 선각자였음에 틀림없다.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시와 경제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다만 휴지와 지폐/종이 두 장만 남을 뿐이다.’(『생각의 사이』)

 다만 ‘권력형 메세나’ 냄새가 물씬 나는 작금의 사태를 보면 ‘시와 경제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품행이 관건이다. 신정아씨 사건 이후 기업 메세나 창구가 바싹 얼어붙었다고 한다. ‘한국의 브로드웨이’라는 서울 동숭동 대학로의 100여 극장 가운데 90% 이상은 300석 미만의 구멍가게 수준이다. 기업 메세나가 스캔들로 멈칫거리기엔 갈 길이 바쁘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 ▶홍승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ex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