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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대문호'라는 극찬을 듣는 셰익스피어(1564~1616).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그 역시 여느 예술가와 다름없이 생활고에 시달렸고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으며 사랑의 아픔을 겪었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졌다.
1593년, 29세 되던 해 셰익스피어(조셉 파인즈 분)는 처자를 남겨둔 채 런던으로 상경한다. 하지만 동갑내기 극작가인 크리스토퍼 말로(1564~1593)에 밀려 제작자에게 늘 뒷전이고, 창작 아이디어도 부진한 상태다. 그러던 중 연극 오디션 심사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미소년, 토마스 켄트를 발견한다. 얼마 후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무도회에서 만나 첫 눈에 반했던 아가씨 비올라(기네스 팰트로 분)가 바로 토마스 켄트임을 알게 된다.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는 비올라로부터 영감을 얻어 각본을 쓰기 시작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영화 속 셰익스피어와 비올라가 나누는 대화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읊는 연극 대사가 된다. 연극 같은 사랑을 하고, 사랑의 감정대로 각본을 써 내려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로미오 역을 맡았던 켄트가 여자임이 발각돼 쫓겨나고 극장까지 폐쇄 당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올라는 부모님으로부터 백작과의 결혼을 강요 받고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재산은 축적했으나 가문의 이름이 필요한 아버지는 백작에게 딸을 소개하며 '루비 자루 달린 노새(지참금 많고 순종적인 여자라는 뜻)'라는 노골적인 표현을 쓰고, 엄마 역시 '매매(賣買·bargaining)'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입에 담는다. 비올라도 결혼을 '사업(business)'이라 꼬집는다. 이것은 신흥 부르주아로 떠오른 돈 많은 상인이 혼인을 통해 귀족 지위를 얻는 세태를 풍자해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혼식을 올린 후 비올라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극장으로 달려간다. 토마스 켄트의 빈자리는 셰익스피어가 맡아 연기하고 있었다. 때마침 줄리엣 역을 맡은 소년에게 변성기가 찾아와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자 관람석에 앉아 있던 비올라가 극적으로 그 역을 대신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와 비올라의 실감나는 연기는 관객들의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며 성황리에 막을 내린다.
연극이 끝나고, 비올라는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도움으로 셰익스피어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남편을 따라 신대륙 버지니아로 떠난다. 이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십이야'라는 작품 구상으로 승화되고 마지막 장면에 형상화 돼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배경은 16세기 후반 영국으로, 14세기 이탈리아 미술 운동에서 시작된 르네상스가 북유럽에서는 문학으로 꽃을 피우던 시대이다. 영국의 르네상스는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해상 활동과 경제적 번영 등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기(1558~1603년)가 정점이었다.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는 엘리자베스 통치 말년으로, 런던의 인구는 헨리 8세 때만 해도 3만 명에 불과하던 것이 엘리자베스 때엔 2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도시의 인구 증가와 정치·경제적 안정은 문화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됐다. 민중들도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었고, 극의 내용은 중세 종교극에서 탈피해 고전극을 완성해갔으며 주로 개가 등장하는 희극이 큰 인기를 끌었다. 르네상스 시기 영국에서는 도시에 극장이 10여 개나 될 정도로 세속 연극 사업이 번창했다. 영화 속에서도 재현되듯 귀족과 거지, 귀부인과 창녀, 장인과 도제, 궁정인과 상인, 소매치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연극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여성이 무대에 선다는 것은 관습적으로 불가능했다. 여왕이 45년간 통치하고 르네상스가 만개한 영국에서조차 연극에서 여성 역은 늘 어린 소년이 맡았다. 이렇듯 여성을 무대에, 앞에 나서지 못하게 했던 관행은 '모나리자' '암굴의 성모' 같은 그림 속 모델의 미소처럼 침묵하고 순종하거나 혹은 모성적인 모습으로만 여성을 가두고 대상화하려는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것 아닐까? '활달한 영국(Merry England)'이라 불리던 엘리자베스 통치기에 벌어진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생각해볼 거리
① 중세 암흑기를 지나 르네상스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영국에서 여성은 무대에 설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은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음악 영화 '파리넬리'에서도 재현된다. 여성은 왜 무대 혹은 성가대에 설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② 기인기화(其人其畵), 자전적 작품(自傳的 作品)이라는 말은 모두 작가의 인생 혹은 품성, 성향 등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다는 뜻이다. 예술 작품은 작가의 삶, 가치관 외에도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이처럼 작가의 인생이 입체적으로 작품에 반영되는 예를 소설, 연극, 영화 속에서 찾아보자.
[윤희윤 성공회대 강사·'이 영화 함께 볼래'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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