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뉴스

[나의 대학 합격기]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합격한 권순모

설경. 2008. 4. 24. 13:21
"많은 문제 풀기보다 개념정리가 우선"

올해 포스텍 신소재공학과에 입학한 권순모(19)군은 경북 예천의 대창고교를 졸업했다. 산과 들로 둘러싸인 농촌학교에서 꿈을 키우며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학교수업과 선배에게 물려받은 참고서로 공부하고, 인터넷 강의로 보충한 것 외에 다른 공부도구는 없었다. 군(郡)에서 주최한 과학경시 대회에 나가 두 번 상을 탔지만 '날고 긴다'는 수재들이 모이는 전국 경시대회엔 나간 일도 없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도회지 학교로 떠날 때도 그는 고향에서 책을 들었다.

■부모님의 가르침


권군은 예천 풍양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전교 49명 중에서 4등을 했다. 예천보다 규모가 큰 상주나 점촌의 고교로 '유학'갈 생각이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그의 형은 상주고에 진학한 상태였고 동생도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여서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아버지의 경제 부담이 걱정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대창고 교사들이 권군의 집을 찾아와 3년 전액 장학금을 제시, 그냥 고향에 눌러 앉게 됐다.

그는 "줄곧 1등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 부모님이 '여자애가 공부해서 뭐하느냐'며 강제로 두꺼비집을 내릴 정도로 시골은 공부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제 부모님은 달랐다"고 했다. 책을 사서 읽게 하고 수학 한 문제라도 더 풀게 채근했다고 한다. 권군은 "부모님이 어린 시절 사주신 책들 중에 유독 수학과 과학에 관련된 책이 많아 관심이 이공계 쪽으로 향했다"며 "과학자의 꿈도 책을 보며 키웠다"고 회고했다.

■공부 이야기


언어영역은 고2 때까지 "점수가 너무 잘 나와" 순탄했지만 고3 갑자기 내리막을 탔다. "고3 첫 모의고사부터 참담했다"며 "비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었기에 문제푸는 감이 떨어졌고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언어영역 슬럼프는 7월까지 이어졌다. 아무리 문제풀이를 해도 성적은 제자리였다. 그러나 "그해 여름 인터넷 강의를 통해 취약했던 기본 개념을 꼼꼼히 다지면서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리영역은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점수대는 80점 초반에서 90점 초반 사이를 오갔지만 왠지 불안한 느낌을 지을 수 없었다. "기본 개념이 취약해서인지 어떤 응용문제가 나올지 너무 불안했다"는 것이다. 불안 돌파구는 개념 위주의 학습이었다. 기본 정의와 개념을 확실히 알고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개념을 응용한 평가원모의고사나 수능기출 문제도 많이 풀었다. "직관적 사고와 개념 다지기를 거듭하면서 점수가 90점대로 안정권에 들어 너무 기뻤다"고 했다.

과학탐구 영역 역시 문제집과 참고서 위주로 공부했더니 점수가 들쭉날쭉했다. 역시 해답은 개념 공부였다. "인터넷 강의로 개념을 다시 잡았더니 바로 안정권에 들더라"는 것이다.

권군은 "언어와 수리, 과학탐구 영역 등 거의 전 영역에서 문제풀이를 하다가 개념을 익혀 점수를 비약적으로 올렸다"며 "요즘 들어 기본개념을 적용시켜 응용하는 유형의 문제가 수능에서 많이 출제된다"고 귀띔했다.

■꿈을 위한 항해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마다 낙담하며 슬럼프를 경험했다고 한다. "공부를 적게 한 것도, 게을렀던 것도 아닌데 점수가 제자리일 때 힘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고3 초반에는 점수가 급락했다. 어려운 고비마다 부모와 마을교회의 박형섭 목사, 박춘욱 담임선생님의 격려가 힘이 됐다고 한다. "고비를 겪을 때마다 뛰어넘는 과정의 결과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더욱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 노력이 나중에 한꺼번에 포스텍 합격으로 나타났다"고 활짝 웃었다. 고3시절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오후 6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잠깐 잠을 잔 뒤 새벽 4시까지 공부하는 강행군을 계속 했다. 부족한 잠은 틈틈이 학교에서 잤다. 고3 여름방학 때는 '정말 공부가 하고 싶어' 고시원에 들어갔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 세끼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18시간 공부에 집중했다고 한다.

권군은 "힘들었지만 힘들다고 느낄 여유가 없었고 시골학생의 꿈인 포스텍에 입학하는 꿈을 꾸면서 버틸 수 있었다"며 "제 미래의 인생계획을 이루기 위해 포스텍은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었고 잠시라도 쉬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태완 맛있는공부 기자 kimchi@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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