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과학과 논술]소리 없는 쓰나미, 식량위기

설경. 2008. 6. 26. 12:36
10억 명의 굶주림,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지난 5월 20일 미국 뉴욕 맨하탄 유엔본부에서는 '글로벌 식량위기 대책 긴급회의'가 있었고, 6월 3일부터 5일까지는 로마에서 '유엔 식량안보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렇게 잇단 유엔 회의는 식량 문제가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약 10억 명이 기아 상태에 있으며, 37개국이 식량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각각 75%와 130% 인상된 쌀과 밀 가격 때문에 올해에도 추가로 1억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식량 수입국으로 국내 곡물 자급률은 25.3%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선진국'도 식량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에서는 곡창지대인 중서부를 강타한 홍수로 아이오와 주 곡물재배의 20%에 가까운 손실이 발생했다. 쌀값의 상승을 막기 위해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소비자 1명이 사는 쌀의 양을 제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식량 문제의 가장 주된 이유는 '인구증가'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약 61억 명에 달하는데 2001년 유엔 인구국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93억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인구가 10억 명이 된 것은 1810년경이고, 인간이 지구에 탄생한 때가 5만 년 전이었으니 10억 명의 인구가 되기까지 대략 5만년이 걸린 셈이다. 그런데 10억 명의 인구가 추가로 증가되기까지는 약 115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10억이 증가해 인구수가 30억이 되기까지는 3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시 10억이 증가하는 데는 21년이 걸렸고, 다시 10년 뒤에는 10억이 증가해 1997년 지구의 인구수는 50억에 도달했다. 불과 4년 뒤인 2000년에는 인구수가 60억을 돌파했다.

이렇게 인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농업 과학의 발달 때문이다. 19세기 유럽 국가들은 도시 인구가 증가하자 보다 좋은 '비료'를 사용해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칠레와 페루 연안의 섬들에서 생산되는 구아노(guano: 건조한 해안지방에서 바다새의 똥이 응고, 퇴적된 것)라는 질 좋은 비료를 수입한 덕분에 곡식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다. 그 덕에 1890년대에는 1800년 초에 비해 인구가 두 배로 증가했다. 그 후 몇 십 년이 지나면서 구아노가 고갈되자 과학자들은 화학비료를 개발했다. 1909년 두 명의 독일 과학자 프릿츠 하버(1918년 노벨 화학상 수상)와 칼 보슈(1931년 노벨 화학상 수상)는 공기 중의 질소와 화석원료에 들어있는 수소로부터 암모니아를 합성해 암모니아 비료를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매년 1억 5000t 분량의 암모니아 비료가 생산되고 있다. 세계 제 1차 대전 이후에는 기계화된 농기구가 보급되면서 인력을 줄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가축 사료를 생산하던 농지를 인간이 먹을 곡물을 생산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인 1959년에는 스위스 화학자 뮐러가 최초의 화학 살충제이자 제초제인 DDT(Di chloro-Diphenyl-Trichloroethane)를 개발했다. 당시 '신비의 농약'으로 불린 DDT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곡물 생산량이 3배로 증가되는 '녹색혁명'이 50년 동안 지속됐다.

그런데 현재의 식량 문제는 과학적 방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식량계획(WFP) 조센 시런 사무총장은 현재 식량위기의 원인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기상이변에 따른 곡창지대의 피해다. 세계 최대 곡창지대인 호주는 6년 동안의 가뭄으로 농작물 수확이 50% 감소했으며, 삼모작이 가능했던 동남아시아도 쓰나미 피해로 대부분의 논들이 침수됐다.

둘째, 인도, 중국 등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호황에 따른 소비 증가이다. 식량 문제는 인구수도 중요하지만 1인당 소비하는 곡물의 양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한 예로 미국인 1인당 연간 평균 곡물소비량은 900㎏으로(유제품과 육류,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소비된 가축 사료 포함), 이는 개발도상국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중국도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지난 20년 간 돼지고기 소비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돼지고기 1㎏을 생산하는 데는 곡물 9㎏이 필요하다.

셋째는 바이오 연료 개발이다. 바이오 연료란, 바이오매스(biomass, 생물연료)를 재료로 해서 얻는 에너지를 말하며 주로 메탄발효나 알코올발효 등의 방법이 있다. 현재 브라질은 사탕수수를, 미국은 옥수수를 이용한 바이오 연료를 사용 중이다. 바이오 연료는 환경친화적인 대체에너지지만, 그 이면에는 식량문제를 악화시킨다는 단점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전체 옥수수의 3분의 1을 바이오매스로 소비하고 있는데, 이는 옥수수 값과 대다수의 생필품 가격이 인상되는 현상을 야기했다.

이렇게 현재의 식량 문제는 과학이 해결할 문제라기보다는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관돼 있다. 그 방향성을 찾기 위해 우리는 글로벌 식량위기대책 긴급회의에서 스르잔 케림 유엔총회 의장이 한 기조연설을 되짚어봐야 한다.

"식량위기는 '소리 없는 쓰나미'다.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곡물가격의 폭등은 부유한 나라의 소비자들에게는 식료품비 추가부담을 의미하지만, 10억 명에 이르는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나정민 서울시립대 강사 '과학교과서 속에 숨어 있는 논술'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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