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논술]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성수기 극장가에 개봉하는 영화들 중 많은 수가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김아중이 주연을 맡아 만만치 않은 흥행성적을 거뒀던 '미녀는 괴로워'가 그러했고, 지난주에 개봉한 블록버스터 '원티드'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상황이나 이야기 전개를 두고 "만화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만화적 설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요즘 들어 부쩍 많은 영화들이 만화를 소재로 삼는 것일까?
영화 '원티드'는 미국의 만화,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마블 코믹스'는 빛과 어둠의 대조가 뚜렷한, 강렬한 그림체의 만화들이다. 내용도 형식과 유사하다. 마블 코믹스는 선과 악의 뚜렷한 대립 속에서 악을 처단해가는 남성 캐릭터를 주로 그려낸다. 몇 해 전 개봉해 강한 남성상을 각인시켰던 '300'이나 '씬 씨티'도 모두 마블 코믹스 원작이다. '판타스틱4'나 '엑스맨'처럼 초월적 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들도 많다.
대강의 상황에서 눈치 챌 수 있다시피,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는 단순한 주제와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들이 모두 격한 감정이나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고 이야기는 대부분 그들이 승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환상이나 공상을 극대화한다. 영화가 사람이 연기해 실제처럼 보여야 하는 사실성의 매체인데 비해 만화는 사실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화적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선 이런 경우를 지칭할 때가 많다. 비현실적이거나 공상적이라는 의미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영화의 원작이 주로 소설이었던 데 비해 점점 만화 원작 영화가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블록버스터, 그러니까 대규모의 제작비가 동원되는 대형 영화들의 수적 성장과 관련이 깊다.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로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조스'가 손꼽힌다. '조스'는 미국 내 최초로 여러 개 극장에서 동시 상영됐으며 엄청난 관객을 끌어 모았다. 이러한 현상들은 그 이후 미국 상업영화의 관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매년 여름과 겨울, 성수기로 일컬어지는 시기에는 전국의 몇 백 개 영화관에서 동시 상영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된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작품을 보는 개인의 사적인 기억이나 취향보다는 보편화된 오락을 추구한다. 영화는 시각예술이기에 보편화된 오락성은 주로 시각적 효과에서 발견된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소개할 때 차량 추격씬이나 새로운 액션 장면이 주된 요소가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소설이나 희곡이 인간의 삶에 대해 복잡하고 섬세한 감식안을 필요로 하는 데 비해 만화는 극적 상황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각적 효과라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필요와 상상력이라는 만화적 특성이 현재의 작품들을 양산해 낸 것이다. 최근에 개봉하고 있는 만화 원작 블록버스터들은 이를 증명하듯이 점점 더 자극적인 소재와 새로운 특수 효과에 치우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이야기의 인과관계, 즉 개연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식객'이나 '타짜'와 같은 우리나라 만화 원작 영화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주로 한국에서 영화화되는 만화 원작들은 독특한 소재를 전문가적 시각으로 파헤치는 경우가 많다. '식객'은 요리의 세계를 '타짜'는 도박의 세계를 깊숙이 파고들어 일반인이 모르는 세계를 구체화하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채워줬다.
한국의 만화 원작 영화들 역시도 뚜렷한 선악의 대립 위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대부분 이러한 영화들은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보여주지만 결론적으로는 사필귀정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만화 원작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윤리적 갈등을 주지 않는다. 옳은 일을 했으나 배신 당할 수밖에 없고 착하게 살았지만 보상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선호한다. 강렬한 캐릭터와 단순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만화가 영화의 원작으로 자주 수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만화에는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삶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힘이 있다. 사회가 복잡다기해 질수록 만화 원작 영화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더 생각해볼 거리
① 소설이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만화 원작 영화를 비교해보자.
② 미국 대중 영화는 끊임없이 만화 원작을 찾고 있다. 만화의 어떤 점이 재미있는지 말해보자.
③ 만화를 흔히 공상적이라고 한다. 어떤 점에서 그럴지 생각해보자.
[강유정 영화평론가·문학박사 ]
성수기 극장가에 개봉하는 영화들 중 많은 수가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김아중이 주연을 맡아 만만치 않은 흥행성적을 거뒀던 '미녀는 괴로워'가 그러했고, 지난주에 개봉한 블록버스터 '원티드'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상황이나 이야기 전개를 두고 "만화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만화적 설정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요즘 들어 부쩍 많은 영화들이 만화를 소재로 삼는 것일까?
대강의 상황에서 눈치 챌 수 있다시피,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는 단순한 주제와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들이 모두 격한 감정이나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고 이야기는 대부분 그들이 승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환상이나 공상을 극대화한다. 영화가 사람이 연기해 실제처럼 보여야 하는 사실성의 매체인데 비해 만화는 사실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화적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선 이런 경우를 지칭할 때가 많다. 비현실적이거나 공상적이라는 의미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영화의 원작이 주로 소설이었던 데 비해 점점 만화 원작 영화가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블록버스터, 그러니까 대규모의 제작비가 동원되는 대형 영화들의 수적 성장과 관련이 깊다.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로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조스'가 손꼽힌다. '조스'는 미국 내 최초로 여러 개 극장에서 동시 상영됐으며 엄청난 관객을 끌어 모았다. 이러한 현상들은 그 이후 미국 상업영화의 관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매년 여름과 겨울, 성수기로 일컬어지는 시기에는 전국의 몇 백 개 영화관에서 동시 상영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된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작품을 보는 개인의 사적인 기억이나 취향보다는 보편화된 오락을 추구한다. 영화는 시각예술이기에 보편화된 오락성은 주로 시각적 효과에서 발견된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소개할 때 차량 추격씬이나 새로운 액션 장면이 주된 요소가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소설이나 희곡이 인간의 삶에 대해 복잡하고 섬세한 감식안을 필요로 하는 데 비해 만화는 극적 상황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각적 효과라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필요와 상상력이라는 만화적 특성이 현재의 작품들을 양산해 낸 것이다. 최근에 개봉하고 있는 만화 원작 블록버스터들은 이를 증명하듯이 점점 더 자극적인 소재와 새로운 특수 효과에 치우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이야기의 인과관계, 즉 개연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식객'이나 '타짜'와 같은 우리나라 만화 원작 영화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주로 한국에서 영화화되는 만화 원작들은 독특한 소재를 전문가적 시각으로 파헤치는 경우가 많다. '식객'은 요리의 세계를 '타짜'는 도박의 세계를 깊숙이 파고들어 일반인이 모르는 세계를 구체화하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채워줬다.
한국의 만화 원작 영화들 역시도 뚜렷한 선악의 대립 위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대부분 이러한 영화들은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보여주지만 결론적으로는 사필귀정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만화 원작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윤리적 갈등을 주지 않는다. 옳은 일을 했으나 배신 당할 수밖에 없고 착하게 살았지만 보상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선호한다. 강렬한 캐릭터와 단순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만화가 영화의 원작으로 자주 수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만화에는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삶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힘이 있다. 사회가 복잡다기해 질수록 만화 원작 영화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더 생각해볼 거리
① 소설이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만화 원작 영화를 비교해보자.
② 미국 대중 영화는 끊임없이 만화 원작을 찾고 있다. 만화의 어떤 점이 재미있는지 말해보자.
③ 만화를 흔히 공상적이라고 한다. 어떤 점에서 그럴지 생각해보자.
[강유정 영화평론가·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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