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명화로 보는 논술] 니콜라 푸생 '시인의 영감'

설경. 2008. 7. 4. 18:58
플라톤, 예술가를 눈엣가시로 생각한 이유는?

끝없이 계속되는 아름다움의 추구

↑ 〈도판〉니콜라 푸생, ?시인의 영감3, 캔버 스에 유채, 182.5× 213㎝, 1630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 BC 428/427~BC 348/347)은 미(美)의 문제를 철학의 하나로 취급한 최초의 사람이다. 플라톤의 아름다움은 '완전성과 우주의 조화, 그리고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플라톤의 '향연(Symposion)'을 보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 제자가 어느 미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플라톤은 "석양이나 찬란한 황금도 아름답지만, 그러한 물질들보다 '아름다움' 그 자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어서 "'미(美)를 사랑하는 것'이 이상 세계의 최고의 진리인 '이데아(Idea)'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17세기 프랑스 근대회화의 시조인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은 "미술의 목표는 향유"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훌륭한 예술가는 몸뿐 아니라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BC 399)의 말과 "예술이란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의 말처럼 근대로 오면서 예술가들은 자신을 주제로 삼아 자기 내부에서 느끼는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모방하던 것에서 벗어나 '감정의 표현'이라는 새로운 예술 세계를 열게 된 것이다.

플라톤이 예술가를 이상국가에서 추방한 까닭은?
플라톤이 그의 완전한 이상 국가인 '공화국'에서 시인을 추방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의 공화국은 완전한 인간인 '철인'이 지배했으며 예술가는 거처를 찾지 못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플라톤은 예술을 경시한 것 같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의 힘이 막강하고 위대한 것을 알았기에 공화국에서 예술가를 추방하고자 한 것이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Politeia)'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일 그런 사람(시인)이 우리 마을에 와서 그 예술을 사람들에게 보이려 한다면, 우리는 마치 세상에 없는 유쾌하고 신성한 것을 대하듯이 그에게 깊은 경의를 표할 것이다. (중략) 우리는 그의 얼굴에 향유를 뿌리고 털과 관으로 장식한 뒤, 그를 다른 마을로 쫓아낼 것이다."

여기에서 보면 플라톤은 예술가를 존경할 줄 알았다. 하지만 공화국을 설립함에 있어서는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예술가를 추방하는 이유를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플라톤이 중요하게 생각한 '이데아(Idea)', 즉 진리는 사물 속에 내재하는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것으로 순수한 이성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하지만 예술가는 경험적 현실의 세계나 현상계의 감각적인 인상과 부분적인 진리에 집착하며 모든 것을 가시적인 표현수단으로만 설명하려 한다고 했다. 결국 순수 이데아를 저속하게 만들고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예술은 이상 국가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침대'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침대는 신이 만들어 낸 것으로 침대의 절대 관념으로서 오직 하나만 완전한 것으로 존재한다. 두 번째 침대는 이 관념을 모방해 목수가 만든 침대이고, 세 번째 침대는 목수가 만든 침대를 보고 화가가 그린 침대이다. 마지막 예술 작품 속 침대는 목수가 만든 침대를 보고 그렸기에 침대의 본질인 절대 관념으로부터 세 단계나 멀어진 것이다. 플라톤은 화가나 시인을 마치 사물을 단순하게만 비치는 거울과 같은 존재로 진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인간의 감정, 정서에 호소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다"고 말했다.

[최혜원 블루로터스 아트디렉터·'미술쟁점-그림으로 비춰보는 우리 시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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