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논술 / 언어(인문계)◆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가)이러한 관용은 우리 사회가 자유와 인간에 대한 존중 위에 설 수 있게 해 준다. 관용은 억압의 반대말이다. 사실 관용은 편협해지기 쉬운 사랑이나 구호에 그치는 자유보다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용은 가장 겸손한 형태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개인이 자신의 한계를 이겨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관용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이기적 욕망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관용은 우리의 선입견을 해방시켜 새로운 인식의 여지를 마련해 주는 진리의 토대이기도 하다. 관용은 갈등들을 적대적 대결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토의를 통해 공평하게 조정할 공간을 열어 놓는다. 이제 우리는 자기의 유일한 존재만 확신하는 '이성적이기만 한 자아(自我)'가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고립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욕망의 포로가 된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이성의 씀씀이가 훨씬 성숙한 책임 있는 이웃으로서 서로를 마주하는 도덕적 연대의 주체여야 하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관용이 역설되고 있는 것이다.
-볼테르, '관용론'
(나)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정의의 핵심 내용은 평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평등한 자유 원칙이 채택되는 것은 한정된 경우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 간에 차이점이 심대하여 아무도 이성에 의해 그들 간에 조정할 방안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원초적 입장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역시 자신들이 만일 어떤 원칙에 합의할 수 있기라도 한다면 이러한 원칙에 합의하게 될 것이다. 역사상 종교적 관용에 있어서 생겨났던 이러한 관념은 다른 사례들에도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원초적 입장에 있는 자들은 무지의 베일이 요구하는 대로 그들 자신이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떤 도덕적 신념을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이 받아들이는 원칙들과 이들 신념들이 상충될 경우에는 그 원칙들이 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상충이 없을 경우에 그들은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필요도 없으며 그러한 원칙들이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해서 그 견해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서 정의의 원칙들은 대립적인 종교들의 요구들을 통제하는 경우와 똑같이 대립하는 도덕 체계 간에 판정을 내릴 수 있다. 정의가 설정하는 체제 내에서 상이한 원칙들을 갖는 도덕관이나 동일한 원칙들을 서로 달리 조정하는 입장들이 사회의 여러 부분에 의해 채택되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상이한 신념을 가진 자들이 정치 원리의 문제로서 기본 구조에 대해서 상충되는 요구를 할 경우 그들은 이러한 요구들을 정의의 원칙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 J 롤스, '정의론'
(다)송시열이 당초 기년복을 주장한 것은 효종의 종통을 부인하여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송시열은 효종이 비록 왕이기는 하지만 가통으로 따지면 장자가 아니라고 지적했을 뿐이다. 물론 왕가에 대한 이런 주장들이 왕조 국가에서 극도로 위험한 이론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영상 정태화가 "체이부정이란 말은 하지도 마시오"라며 손을 내저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정태화의 예상대로 남인들은 이를 이용해 송시열을 역모로 몰아 죽이려고 들었다.
예송 논쟁은 헛된 관념 논쟁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송 논쟁이 깨뜨린 공존의 틀은 조선 사대부 정치의 핵심이었다. 명분이 우선하는 성리학 사회에서 공존의 틀이 깨진다는 것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중략)
예송 사건은 송시열로 하여금 남인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송시열에게 남인은 더 이상 같은 사상을 가진 성리학자가 아니었다. 나아가 같은 성리학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한 유학 정치가는 더욱 아니었다. 농민들을 지배하는 같은 사대부 계급도 아니었다. 송시열에게 남인은 이제 자신이 살기 위해서, 서인이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할 정적이 되었다. 인조반정 후 남인 정승 이원익을 영의정에 추대한 것은 이제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과거지사가 되었다. 예송 논쟁 이후 서인과 남인은 자당의 권력과 상대당의 허점을 이용해 서로를 죽이는 파행적인 길을 걸었다.
- 이덕일,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논제 1>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난 관용과 정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시오.
(300자 이내)
<논제 2> 송시열의 태도를 극복할 방안을 제시문들을 활용하여 논술하시오.
(500자 내외)
■공동 출제 = 대성논술아카데미 / 대성교육출판 과목별 논술 교재 '다수'(多秀)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가)이러한 관용은 우리 사회가 자유와 인간에 대한 존중 위에 설 수 있게 해 준다. 관용은 억압의 반대말이다. 사실 관용은 편협해지기 쉬운 사랑이나 구호에 그치는 자유보다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용은 가장 겸손한 형태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개인이 자신의 한계를 이겨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관용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이기적 욕망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관용은 우리의 선입견을 해방시켜 새로운 인식의 여지를 마련해 주는 진리의 토대이기도 하다. 관용은 갈등들을 적대적 대결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토의를 통해 공평하게 조정할 공간을 열어 놓는다. 이제 우리는 자기의 유일한 존재만 확신하는 '이성적이기만 한 자아(自我)'가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고립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욕망의 포로가 된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이성의 씀씀이가 훨씬 성숙한 책임 있는 이웃으로서 서로를 마주하는 도덕적 연대의 주체여야 하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관용이 역설되고 있는 것이다.
-볼테르, '관용론'
(나)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정의의 핵심 내용은 평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평등한 자유 원칙이 채택되는 것은 한정된 경우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 간에 차이점이 심대하여 아무도 이성에 의해 그들 간에 조정할 방안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원초적 입장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역시 자신들이 만일 어떤 원칙에 합의할 수 있기라도 한다면 이러한 원칙에 합의하게 될 것이다. 역사상 종교적 관용에 있어서 생겨났던 이러한 관념은 다른 사례들에도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원초적 입장에 있는 자들은 무지의 베일이 요구하는 대로 그들 자신이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떤 도덕적 신념을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이 받아들이는 원칙들과 이들 신념들이 상충될 경우에는 그 원칙들이 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상충이 없을 경우에 그들은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필요도 없으며 그러한 원칙들이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해서 그 견해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서 정의의 원칙들은 대립적인 종교들의 요구들을 통제하는 경우와 똑같이 대립하는 도덕 체계 간에 판정을 내릴 수 있다. 정의가 설정하는 체제 내에서 상이한 원칙들을 갖는 도덕관이나 동일한 원칙들을 서로 달리 조정하는 입장들이 사회의 여러 부분에 의해 채택되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상이한 신념을 가진 자들이 정치 원리의 문제로서 기본 구조에 대해서 상충되는 요구를 할 경우 그들은 이러한 요구들을 정의의 원칙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 J 롤스, '정의론'
(다)송시열이 당초 기년복을 주장한 것은 효종의 종통을 부인하여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송시열은 효종이 비록 왕이기는 하지만 가통으로 따지면 장자가 아니라고 지적했을 뿐이다. 물론 왕가에 대한 이런 주장들이 왕조 국가에서 극도로 위험한 이론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영상 정태화가 "체이부정이란 말은 하지도 마시오"라며 손을 내저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정태화의 예상대로 남인들은 이를 이용해 송시열을 역모로 몰아 죽이려고 들었다.
예송 논쟁은 헛된 관념 논쟁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송 논쟁이 깨뜨린 공존의 틀은 조선 사대부 정치의 핵심이었다. 명분이 우선하는 성리학 사회에서 공존의 틀이 깨진다는 것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중략)
예송 사건은 송시열로 하여금 남인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송시열에게 남인은 더 이상 같은 사상을 가진 성리학자가 아니었다. 나아가 같은 성리학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한 유학 정치가는 더욱 아니었다. 농민들을 지배하는 같은 사대부 계급도 아니었다. 송시열에게 남인은 이제 자신이 살기 위해서, 서인이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할 정적이 되었다. 인조반정 후 남인 정승 이원익을 영의정에 추대한 것은 이제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과거지사가 되었다. 예송 논쟁 이후 서인과 남인은 자당의 권력과 상대당의 허점을 이용해 서로를 죽이는 파행적인 길을 걸었다.
- 이덕일,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논제 1>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난 관용과 정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시오.
(300자 이내)
<논제 2> 송시열의 태도를 극복할 방안을 제시문들을 활용하여 논술하시오.
(500자 내외)
■공동 출제 = 대성논술아카데미 / 대성교육출판 과목별 논술 교재 '다수'(多秀)
출처 : 별먹는 빛
글쓴이 : 설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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