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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조기유학 광풍] <2> 한국학생들이 점령한 국제학교

설경. 2008. 7. 4. 19:11
"한국말로 잡담해도 교사가 통제 못할 정도"
말레이시아 국제학교 30% 차지 '포화 상태'
대입자격 없는 사립학교 선택 불이익 감수도
"대기번호 100번 넘어"… 무작정 왔다간 낭패

지난달 26일 오후 6시께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한 영어학원에서 국제학교 SIS(Sayfol International School)에 다니는 8학년 여학생 3명을 만났다. 한국 학년으로 치면 중학교 2학년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3명이 조를 이뤄 그룹 과외를 받고 있었다.

모두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을 공부했다. 말레이시아로 건너온 지는 각각 7개월, 1년3개월, 1년6개월, 출신 지역도 광주 부산 수원으로 서로 달랐다. 홈스테이 어머니 언니 등 현지 보호자도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학교에 한국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30명이 한 반인 학급에서 20명이 한국 학생들이다. 한국 학생들이 몰리면서 이 학교는 재학생이 2,000명까지 늘었고, 현재 이 가운데 45% 정도가 한국 학생들로 채워졌다.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이 한 반에 절반 이상 되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국제학교는 한국 학생들이 넘친다. 한국 학교 인지, 외국 학교 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현지 교육 전문가들은 "30여 개 국제학교 재학생 1만4,000여명 중 4,000명 이상이 한국 학생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10명 중 3명은 한국 학생이란 뜻이다. 외국인 중 단연 으뜸이다. 학비가 비싸건 싸건, 학제가 미국계든 영국계든 한국 학생들은 늘 '메이저 그룹'에 속해 있다. 국제학교 수업료는 1년에 200만~1,700만원 정도 되지만 학비에 상관없이 한국 학생 비율이 이미 '임계치'에 도달했다.

따라서 무작정 건너 왔다간 자녀 입학도 못 시키고 낭패를 보는 일도 있다. 실제로 SIS의 경우 이번 학기에는 초중고 모두 자리가 없다는게 학교측 설명이다. 교민들은 그러나 "조만간 쿠알라룸푸르와 푸트라자야 등에 생길 신생 국제학교도 한국 학생들로 채워질 것이 확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필리핀 국제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 학생들이 몰리자 들어갈 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필리핀 내 명문 국제학교로 통하는 ISM(International School Manila)과 브렌트(Brent)는 우리나라와 같은 12학년 시스템인데다 졸업 후 외국대학 진학이 용이하다고 알려지면서 인기가 높다.

1년 학비가 2,000만~3,000만원 수준으로 필리핀의 다른 사립학교보다 몇 배나 비싸지만, 이미 30% 가까이 한국 학생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도 한국 학생들의 대기행렬은 끝이 없다. 입학을 알선해 주는 현지 한 유학원 관계자는 "대기번호가 100번이 넘어 언제 입학할 지 기약 없다. 더구나 순수 유학생보다는 상사원과 주재원 자녀에 입학 우선 순위가 있다"고 귀띔했다.

명문 국제학교에 자리가 없자 한국인들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사립학교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필리핀 사립학교는 대부분 중학교 과정이 없는 10학년이나 11학년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졸업 후 우리나라 대학에 바로 입학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필리핀 상류층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알라방 빌리지 내 사립학교인 라살(La Salle)이나 우드로즈(Woodrose) 같은 학교는 이미 한국 학생들이 꽉 차 입학이 쉽지 않다.

한국학생 입학이 비교적 쉬운 것으로 알려진 필리핀 사립학교 사우스빌(Southville)의 레미 라게라 입학담당관은 "3년 새 한국 학생들이 3배 정도 늘면서 이제는 정원의 20% 가까이 된다"며 "특히 ESL 과정 대부분은 한국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ESL은 영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수업과는 별도로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입학한 지 얼마 안돼 영어에 서투른 한국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 학교 ESL 과정에 다니는 4학년 김모(11)양은 "교실이 전부 한국 학생이다 보니 한국말로 잡담해도 교사가 통제를 못한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의 필리핀 행렬이 멈추지 않자 최근엔 필리핀 내 '이름 없는' 사립학교나 한국인이 현지에서 세운 학교까지 한국 학생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입학할 여유가 있는 학교는 학생 유치에 더욱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태국은 방콕에만 국제학교가 70개나 있지만 한국 학생 비율은 2~10% 정도로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방콕 시내에서 만난 미국계 국제학교 트리니티(Trinity)의 뷔롯 시리와타나카몰 이사장은 "우리학교는 방콕 시내 중심에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 커리큘럼과 같다"며 "졸업하면 세계 어느 대학이나 입학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 학교는 현재 9% 수준인 한국 학생 비율이 계속 늘고 있어 한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학부모에게도 방과후 무료 영어강좌를 실시할 계획이다. 시리와타나카몰 이사장은 "외국인 중에 한국인이 가장 많지만 현재 6대 4 수준인 태국인 대 외국인 비율이 5대 5가 될 때까지 계속 받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 현지 입학담당자 인터뷰
"중등 이상은 자리 없어" "한국학생 영어학습 열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학교 UIS(Utama International School) 하산 학사담당 이사는 "전교생 500여명 중 한국 학생이 30% 정도 된다. 절반 이상이 한국 학생들인 반도 수두룩 하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을 계속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예전엔 가능했지만, 지금은 중등 이상은 자리가 없다. 초등은 다음 학기에 오면 가능할 것 같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15~16세 때 입학하면 영어도 안 늘고 입시 준비도 안 되기 때문에 늦어도 중1, 2때는 와야 적응하기에 쉬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태국 방콕에서 만난 영국계 국제학교 해로우(Harrow)의 로버트 쏜힐 입학담당 이사는 "2년 전에 비해 한국 학생이 15% 정도 늘어 현재 전교생의 2% 수준"이라며 "한국 학생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여서 앞으로 4~5% 수준까지 더 뽑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 학교의 아시아 출신 학생 중 한국 학생이 가장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학생들은 영어를 배우려는 자세가 확실하고 입학할 때 마음가짐이 남다른게 두드러진 특징"이라며 "학부모들도 자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교장이 아시아권을 총괄하고 있다는 쏜힐 이사는 "아시아 국가 중 방콕과 중국 베이징에 있는 분교를 조만간 말레이시아와 인도에도 열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는 향후 5년 안에 진출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기유학생 몰리며 한인타운 집값 껑충
"마닐라 부촌 두세 집 건너 한 집은 한국인"… 음식점·노래방도 속속 문 열어

조기유학생과 가족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동남아시아 각지에는 거대한 한인타운이 들어서고 있다. 오직 조기유학 수요 때문에 형성된 것으로, 다른 외국인 집단 거주지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알라방(Alabang) 지역은 형편이 넉넉한 한국인들이 몰려 살고 있다. 마닐라 최고 부촌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성북동 수준의 2층 저택들이 즐비하다. 범죄가 없고 아이들을 위한 쾌적한 거주지를 찾고 싶은 한국인들이 몰려들다 보니 현재는 알라방 부근 알라방힐스(Alabang hills) 힐스보로(Hills boro) 비에프홈스(B.F.Homes) 지역까지 한인 거주지가 넓어졌다. 두세 집 건너 한 집은 조기유학생 가족이 산다고 보면 된다는 게 교민들 설명이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짧은 기간 안에 몰려들면서 임대료가 점점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330㎡ 크기에 정원이 딸린 알라방 빌리지 내 2층 주택의 경우 월 150만원 수준이던 월세가 200만~250만원까지 치솟고 있다. 마닐라 도심인 오르티가스(Ortigas) 지역도 주도로 양쪽의 고층 빌딩에 한국인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 건물 관리인은 "건물 내 40~50% 정도는 한국인이 살고, 이 중 80% 정도가 조기유학 때문에 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방 2~3개 딸린 콘도의 월세는 현재 70만~120만원 정도 되지만 환율의 영향으로 오름세다. 말레이시아 한인 밀집 지역인 수도 쿠알라룸푸르 암팡(Ampang) 지역도 조기유학생 때문에 형성된 한인타운이다. 한 가구 면적이 99㎡~165㎡ 정도의 아파트 단지인 암팡 에비뉴(Ampang Avenue)에는 전체 750여 세대 중 3분의 1 이상이 한국인으로 채워져 있다. 이 곳 역시 30평 대 기준 70만원 선이던 임대료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 학생을 따라온 학부모 등 한국인이 몰려 들면서 부근에는 음식점 교회 미용실 노래방 등 상가들이 속속 들어섰다. 영락없는 한국 아파트 촌 상가다. 교민들은 "암팡 지역은 유학생 때문에 형성된 한인타운 이라고 보면 틀림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마닐라ㆍ쿠알라룸푸르ㆍ방콕=강철원기자 strong@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