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논단―하연섭] 格이 있는 리더십

설경. 2007. 9. 3. 23:02

탈레반에게 납치됐던 한국인 인질들이 풀려나고 귀국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40여일 동안 이 사건과 관련된 보도를 접하면서 걱정과 함께 안도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이번 사건의 원인, 처리 과정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건 우리 국민인 이상 누구나 보호받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못내 아쉬움을 달랠 수 없는 건 이번 사태를 처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신중치 못한 리더십의 모습들이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절박한 상태를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협상의 상대방은 다름 아니라 테러집단이었다. 테러집단과의 직접 협상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그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이번 사태의 초반부터 대통령까지 전면에 나서야 했느냐는 것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처럼 테러집단에 대해 경고하고 꾸짖을 일이 아니었다면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서는 일에 대해서는 신중했어야 했다. 사태의 진행과정에 대한 브리핑을 청와대 대변인이 꼭 맡아서 했어야 하는 것도 의문이다. 테러집단의 대변인과 우리 청와대 대변인의 위상이 동일하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인질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중요했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격(國格)을 지키는 일이었다. 돌아온 피해자들에게 따뜻한 환영보다는 비난의 화살이 날아가는 것도 사태의 처리과정에서 겪었던 우리 국민들의 마음의 상처 때문일 게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자국민 보호를 위한 정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격이 있는 리더십에 투영되는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이다.

탈레반 사태 때문에 받은 상처는 며칠 전 환경부 장관의 상상하기조차 힘든 가벼운 처신 때문에 더 컸다. 이장 자리도 동네 사람들의 이목이 있어 함부로 던져버리지 못하거늘, 한 나라의 국무위원 자리를 특정인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것이다. 애초부터 장관감이 못되는 사람들을 불러들인 최고 리더십이 원망스럽고, 장관이 무엇인지 공직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사람을 국무위원으로 대접해온 국민 모두의 처지가 서글퍼질 뿐이다.

이승엽 선수의 홈런 한 방이 스포츠 뉴스를 장식하고 우리가 기뻐하는 건 그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성원으로서의 자존심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스타에 열광하고 지도자의 권위와 카리스마에 흠뻑 취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자국민 보호만큼 중요한 건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이다. 리더십의 격이 높으면 높아질수록 이를 통해 얻는 국민들의 자존감도 높아진다. 그것이 국격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것은 백번 옳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권위까지 사라져버린다면 이는 격이 있는 사회, 남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권위가 사라져버린 사회, 격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는 것은 그래서 서글픈 일이다. 내년에는 진보가 되었건 보수가 되었건, 격이 있는 권위가 살아 있는 리더십을 만나고 싶다.

하연섭 (연세대 교수·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