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를 만나더니 친형제라도 만난 듯이 반가웠나 보다. 과거 친미 인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의 나이와 관계없이 응석이라도 부리고 싶었던 모양. 나는 확실하게 당신네 편이야. 저쪽은 ‘친북좌파’니까 ‘친미우파’인 나를 당신들이 확실히 지원해 주어야 해... 뭐 이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겠지. 그래서 앞뒤 가릴 것 없이 고자질하 듯이 ‘저들은 친북좌파’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온 것일 게다.
‘친북’은 죽음과도 같은 의미를 가졌던 때가 있었다.
해방 이후 남북분단과 전쟁과 긴장 속 대치가 수십 년간 이어졌으니 그 동안에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다가 역사의 정통성을 놓고 볼 때 남쪽은 열등감을 가질 만도 했다. 북이 수많은 항일투쟁 경험을 자랑스럽게 꼿꼿하게 내세우고 그것의 계승을 건국이념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면 남쪽은 치졸한 친일행적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세력들이 오랫동안 주도권을 쥐고 외세를 등에 업은 채 집권을 했으니 말이다.
해방 후 남쪽의 주류는 친일행적에 대한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반공과 친미를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들은 반공 반북이 지상 최고의 이데올로기라도 되는 듯이 목청을 돋웠다. 젊은 세대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관련서적 복사한 것 한 페이지라도 가지고 있으면 잡혀가지 않았던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반공교육부터 주입 받았다. 반공포스터그리기는 왜 그리 자주 시켰던지. 나는 그들에게 배운 대로 뿔이 달리고 털이 숭숭 난 빨간 도깨비를 열심히 그렸던 것이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까칠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자기들은 양반이 상놈을 억압한 것도, 일제의 수탈과 억압도 절대로 잊을 수 없다며 억누르는 자도 억눌리는 자도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굳은 맹세를 했고, 일제에 맞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자들을 규합하여(숙청하며?) 정치권력을 잡아 오매불망 인민을 위한 인민의 나라를 세우기에 바빴건만...
남쪽에서는 미국의 앞잡이거나 ‘만주에서 일본군 장교복을 걸치고 독립군을 잡다가 해방 후 친일반역죄로 잡혀 열차로 후송되던 중 탈출한 것들’이 대통령이 되고 총리가 되어 온갖 악법을 만들고 국민을 탄압해 가며 18년이나 해 먹더니, 그의 아우들과 같은 전두환 노태우가 또 다시 정권을 거머쥐고...
신사참배에 앞장서며 돈을 모아 일제에 경쟁적으로 갖다 바치던 목사들이 해방 후에는 남쪽에서 군사독재정권을 지지하며 기독교의 주류가 되어 고등학교, 대학교를 설립하고 기독교 방송국의 이사장이 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만들더니 사사건건 친미반북을 외쳐대고...
그러니 북의 입장에서 보면, 남쪽은 먹을 것 입을 것이 풍족해져서 기름은 뻔질거려도 역사적 정당성이 있기를 하나, 도덕성이 있기를 하나, 외세의 간섭에 주체적이기를 하나 그 사는 꼴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북의 입장에서 가장 부러운 이웃나라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으나 베트남공산당을 창건한 호치민은 국민의 저항을 조직하여 식민강점국 프랑스를 몰아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다시 베트남 남부에 반공정부를 세우자 미국이 이를 지원하면서 월남에 10년간 785만 톤의 폭탄과 75만 리터의 화학약품을 살포했지만 베트남 국민의 끈질긴 저항에 못 이겨 1975년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자국의 이해를 위해 기웃거리던 외세를 모두 물리친 것이다.
그 뒤 베트남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전후 30여 년간 주체성을 가지고 빠른 속도로 정치적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 더 이상 외국군대의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이며, 내전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원치 않는 전쟁에 참가하라는 강대국의 간섭도 없으니 군사비가 크게 절약된다. 어떤 정치시스템을 갖건, 어떤 경제시스템을 갖건 모두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누구의 간섭과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명실상부한 독립국가가 되어 많은 나라들과 소통을 하며 국제적인 고립상태를 벗어났다. 이제 베트남은 캄보디아, 라오스 등 주변국 국민들이 선망하는 국가로 변모해가고 있다.
아, 6 25 이후에 한반도도 그리 될 수 있었건만! 통일이 되었다면 한반도 전체를 통해 친일 청산을 확실히 하여 민족정기를 드높이 세우고 기회주의가 발을 못 붙이도록 했을 것이며, 더 이상의 남북대결은 없을 것이니 군사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되고, 평화로운 상태에서 자율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인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투자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놈의 '원쑤'같은 미국이 개입하여 분단된 이후 군사비 지출에 허리가 휠 지경이 되었으며 밖에서 빗장을 채워놓아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말았다. 남쪽에서는 반동적인 기회주의와 사대주의가 판을 치게 되어 통일의 길은 점점 힘이 들게 되었다.
그나마 국민들의 각성이 높아져 친미군사독재정권이 끝장나고 한민족으로써 대화가 통하는 정치권이 등장하면서 소통의 물꼬가 트이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한반도가 자율적 번영을 이루려면 친북성향의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고 정당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힘들게 북남 간 평화협조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때에 제1야당에서 뽑아 놓은 대선후보라는 작자가 친미반북의 칼을 휘두르고 남쪽 내 평화개혁세력까지도 좌파라며 미국에 고자질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이명박이 추후에 북쪽에 대고 다른 어떠한 사탕발림을 하더라도 한반도의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 손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은 절대로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었다.(오해마시라. 북의 입장이 위와 같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쪽의 상황을 보자. 해방 후 60년이 지난 지금, 인민들에게 계급투쟁과 항일정신의 숭고함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강조하며 자긍심을 고취해온 북쪽과는 달리 남쪽의 국민들 대부분은 역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 18년간 대통령을 해먹은 자가 일본군 앞잡이였던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태반이며 오히려 그가 경제를 일으킨 탁월한 지도자라고 그리워 하는 국민들도 있다.
계급사회의 모순이나 제국주의에 휘둘리는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상당수는 ‘빨갱이’의 너울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주류기득권 층에서 제외되고 소외되었고, 기회주의자들이 판을 쳐왔다.
그러다가 ‘성장한 민주세력’의 힘으로 사회가 투명하게 정리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 전이다. 수구세력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민주세력의 입장에서야 이제 비로소 ‘바로 세우는 10년’이 된 것이다. 친일 청산이 시작된 것도 최근의 일에 불과하다.
일부 남쪽의 국민들은 ‘경제성장’을 아직도 국가의 지상과제인 것처럼 요구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보라. 최근 한국의 정치경제성장은 A급으로 여겨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민주화세력에 의한 정의로운 정치경제의 발전이지, 군사독재정권이 소수를 위해 파이를 키운 정의롭지 못한 경제발전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동안 확실한 주류가 되어버린 수구우파들은 아직까지도 자기들의 파이를 키우는 것에만 급급할 뿐, 양극화가 그대로 진행되면 지속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해지며 공동체의식은 깨지고 사회는 자기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정도로 불안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남북의 문제를 요약한다면, 남쪽의 문제는 물질은 많이 풍요로워졌으나 아직도 기회주의자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어 ‘함께 나누기’를 제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고 개혁의 발목을 잡아 제동을 건다는 것이고, 북쪽의 문제는 기회주의자들은 청산했으나 에너지가 부족하고 고립되었으며 김씨 일가에 대한 지나친 집중으로 정치권력의 변동에 융통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남쪽에서 필요한 것은 ‘각성한 소비자’, ‘각성한 유권자’가 이끌어내는 ‘정의로운 자본’, ’정의로운 정치‘, 그리고 양극화를 확실히 해소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사회투자‘다. 그러기 위해 까칠하기는 하더라도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 온 북의 노력과 고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북의 경험은 한반도 전체를 놓고 보자면 큰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남에서 친북성향의 정치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앞으로 더욱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유다.
북쪽에서 필요한 것은 안정적 에너지 확보, 다양한 교류를 통한 ‘효율적인 생산’과 ‘인민의 주체성을 추동해낼 융통성 있고 유동성이 있는 정치권력’이다. 그러기 위해 성숙한 국민의 역량을 고스란히 흡수해낼 수 있는 남의 정치적 경제적 경험은 한반도 전체를 놓고 보자면 큰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북에서 친남성향의 정치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앞으로 더욱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유다.
이렇게 한반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 이제는 친북성향의 남쪽 정치지도자와 친남성향의 북쪽 정치지도자들이 만나야 한다.
“미국 행님요, 저들은 친북좌파지만 나는 아니랍니다! (찡끗 *.^)”
이렇게 말하는 대선 후보? 강바닥 긁을 생각만 했지, 한반도 미래의 역사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고민해보지 않은 구시대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고은광순(한의사)
‘친북’은 죽음과도 같은 의미를 가졌던 때가 있었다.
해방 이후 남북분단과 전쟁과 긴장 속 대치가 수십 년간 이어졌으니 그 동안에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다가 역사의 정통성을 놓고 볼 때 남쪽은 열등감을 가질 만도 했다. 북이 수많은 항일투쟁 경험을 자랑스럽게 꼿꼿하게 내세우고 그것의 계승을 건국이념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면 남쪽은 치졸한 친일행적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세력들이 오랫동안 주도권을 쥐고 외세를 등에 업은 채 집권을 했으니 말이다.
해방 후 남쪽의 주류는 친일행적에 대한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반공과 친미를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들은 반공 반북이 지상 최고의 이데올로기라도 되는 듯이 목청을 돋웠다. 젊은 세대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관련서적 복사한 것 한 페이지라도 가지고 있으면 잡혀가지 않았던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반공교육부터 주입 받았다. 반공포스터그리기는 왜 그리 자주 시켰던지. 나는 그들에게 배운 대로 뿔이 달리고 털이 숭숭 난 빨간 도깨비를 열심히 그렸던 것이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까칠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자기들은 양반이 상놈을 억압한 것도, 일제의 수탈과 억압도 절대로 잊을 수 없다며 억누르는 자도 억눌리는 자도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굳은 맹세를 했고, 일제에 맞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자들을 규합하여(숙청하며?) 정치권력을 잡아 오매불망 인민을 위한 인민의 나라를 세우기에 바빴건만...
남쪽에서는 미국의 앞잡이거나 ‘만주에서 일본군 장교복을 걸치고 독립군을 잡다가 해방 후 친일반역죄로 잡혀 열차로 후송되던 중 탈출한 것들’이 대통령이 되고 총리가 되어 온갖 악법을 만들고 국민을 탄압해 가며 18년이나 해 먹더니, 그의 아우들과 같은 전두환 노태우가 또 다시 정권을 거머쥐고...
신사참배에 앞장서며 돈을 모아 일제에 경쟁적으로 갖다 바치던 목사들이 해방 후에는 남쪽에서 군사독재정권을 지지하며 기독교의 주류가 되어 고등학교, 대학교를 설립하고 기독교 방송국의 이사장이 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만들더니 사사건건 친미반북을 외쳐대고...
그러니 북의 입장에서 보면, 남쪽은 먹을 것 입을 것이 풍족해져서 기름은 뻔질거려도 역사적 정당성이 있기를 하나, 도덕성이 있기를 하나, 외세의 간섭에 주체적이기를 하나 그 사는 꼴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북의 입장에서 가장 부러운 이웃나라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으나 베트남공산당을 창건한 호치민은 국민의 저항을 조직하여 식민강점국 프랑스를 몰아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다시 베트남 남부에 반공정부를 세우자 미국이 이를 지원하면서 월남에 10년간 785만 톤의 폭탄과 75만 리터의 화학약품을 살포했지만 베트남 국민의 끈질긴 저항에 못 이겨 1975년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자국의 이해를 위해 기웃거리던 외세를 모두 물리친 것이다.
그 뒤 베트남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전후 30여 년간 주체성을 가지고 빠른 속도로 정치적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 더 이상 외국군대의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이며, 내전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원치 않는 전쟁에 참가하라는 강대국의 간섭도 없으니 군사비가 크게 절약된다. 어떤 정치시스템을 갖건, 어떤 경제시스템을 갖건 모두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누구의 간섭과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명실상부한 독립국가가 되어 많은 나라들과 소통을 하며 국제적인 고립상태를 벗어났다. 이제 베트남은 캄보디아, 라오스 등 주변국 국민들이 선망하는 국가로 변모해가고 있다.
아, 6 25 이후에 한반도도 그리 될 수 있었건만! 통일이 되었다면 한반도 전체를 통해 친일 청산을 확실히 하여 민족정기를 드높이 세우고 기회주의가 발을 못 붙이도록 했을 것이며, 더 이상의 남북대결은 없을 것이니 군사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되고, 평화로운 상태에서 자율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인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투자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놈의 '원쑤'같은 미국이 개입하여 분단된 이후 군사비 지출에 허리가 휠 지경이 되었으며 밖에서 빗장을 채워놓아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말았다. 남쪽에서는 반동적인 기회주의와 사대주의가 판을 치게 되어 통일의 길은 점점 힘이 들게 되었다.
그나마 국민들의 각성이 높아져 친미군사독재정권이 끝장나고 한민족으로써 대화가 통하는 정치권이 등장하면서 소통의 물꼬가 트이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한반도가 자율적 번영을 이루려면 친북성향의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고 정당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힘들게 북남 간 평화협조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때에 제1야당에서 뽑아 놓은 대선후보라는 작자가 친미반북의 칼을 휘두르고 남쪽 내 평화개혁세력까지도 좌파라며 미국에 고자질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이명박이 추후에 북쪽에 대고 다른 어떠한 사탕발림을 하더라도 한반도의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 손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은 절대로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었다.(오해마시라. 북의 입장이 위와 같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쪽의 상황을 보자. 해방 후 60년이 지난 지금, 인민들에게 계급투쟁과 항일정신의 숭고함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강조하며 자긍심을 고취해온 북쪽과는 달리 남쪽의 국민들 대부분은 역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 18년간 대통령을 해먹은 자가 일본군 앞잡이였던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태반이며 오히려 그가 경제를 일으킨 탁월한 지도자라고 그리워 하는 국민들도 있다.
계급사회의 모순이나 제국주의에 휘둘리는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상당수는 ‘빨갱이’의 너울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주류기득권 층에서 제외되고 소외되었고, 기회주의자들이 판을 쳐왔다.
그러다가 ‘성장한 민주세력’의 힘으로 사회가 투명하게 정리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 전이다. 수구세력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민주세력의 입장에서야 이제 비로소 ‘바로 세우는 10년’이 된 것이다. 친일 청산이 시작된 것도 최근의 일에 불과하다.
일부 남쪽의 국민들은 ‘경제성장’을 아직도 국가의 지상과제인 것처럼 요구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보라. 최근 한국의 정치경제성장은 A급으로 여겨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민주화세력에 의한 정의로운 정치경제의 발전이지, 군사독재정권이 소수를 위해 파이를 키운 정의롭지 못한 경제발전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동안 확실한 주류가 되어버린 수구우파들은 아직까지도 자기들의 파이를 키우는 것에만 급급할 뿐, 양극화가 그대로 진행되면 지속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해지며 공동체의식은 깨지고 사회는 자기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정도로 불안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남북의 문제를 요약한다면, 남쪽의 문제는 물질은 많이 풍요로워졌으나 아직도 기회주의자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어 ‘함께 나누기’를 제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고 개혁의 발목을 잡아 제동을 건다는 것이고, 북쪽의 문제는 기회주의자들은 청산했으나 에너지가 부족하고 고립되었으며 김씨 일가에 대한 지나친 집중으로 정치권력의 변동에 융통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남쪽에서 필요한 것은 ‘각성한 소비자’, ‘각성한 유권자’가 이끌어내는 ‘정의로운 자본’, ’정의로운 정치‘, 그리고 양극화를 확실히 해소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사회투자‘다. 그러기 위해 까칠하기는 하더라도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 온 북의 노력과 고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북의 경험은 한반도 전체를 놓고 보자면 큰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남에서 친북성향의 정치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앞으로 더욱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유다.
북쪽에서 필요한 것은 안정적 에너지 확보, 다양한 교류를 통한 ‘효율적인 생산’과 ‘인민의 주체성을 추동해낼 융통성 있고 유동성이 있는 정치권력’이다. 그러기 위해 성숙한 국민의 역량을 고스란히 흡수해낼 수 있는 남의 정치적 경제적 경험은 한반도 전체를 놓고 보자면 큰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북에서 친남성향의 정치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앞으로 더욱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유다.
이렇게 한반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 이제는 친북성향의 남쪽 정치지도자와 친남성향의 북쪽 정치지도자들이 만나야 한다.
“미국 행님요, 저들은 친북좌파지만 나는 아니랍니다! (찡끗 *.^)”
이렇게 말하는 대선 후보? 강바닥 긁을 생각만 했지, 한반도 미래의 역사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고민해보지 않은 구시대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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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광순(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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