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 연간소득이 평균 근로자 2만명이 버는 소득과 맞먹을 때 이 사람을 '억만장자'라고 칭하기로 하고 계산해 보았더니 1990년에 미국은 10억달러가 되었다. 시간을 더 당겨 2008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하면 20억달러다. 와우, 한 해 2조3000억원 소득이라! 이런 슈퍼 리치(Super Riches)가 도대체 미국에는 몇 명이나 될까.
1900년엔 22명, 1925년 32명으로 불어나더니 1957년엔 16명으로 쪼그라들고 1968년엔 13명으로 찬물에 담근 듯 더욱 줄었다. 그러던 것이 2007년 말 기준으로는 다시 160여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태다. 이런 계산을 하여 발표한 사람은 브래퍼드 들롱(Braford DeLong) 버클리대학 교수다. 그런데 왜 초갑부들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거지? 주식 혹은 부동산 가격 상승 때문에?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세금' 때문이라고 폴 크루그먼은 날카롭게 분석했다. 크루그먼은 노벨경제학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존 베이츠 클라크상 수상자니까, 그의 말이 맞겠지.
한국으로 대입해 보면 도시근로자 평균 월소득은 256만3000원이니까 여기에 12개월을 곱하고 2만명을 다시 곱하면 6152억원을 1년에 버는 사람은 들롱이 말하는 '한국의 억만장자'에 해당한다. 그런 이가 몇 명인지는 정부가 통계를 쥐고 안 가르쳐 주니 알 도리가 없다.
하여튼 한 가문이 대(代)를 이어 부자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것이 세금이다. 왜 세금이 중요한가? 한국은 연구가 부족하니 미국 역사를 되짚어가보자. 1870년 이후 산업혁명으로 역사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자본이 형성되고 타이쿤들이 생겨났다. 카네기 록펠러 모건 굴드 같이 철강 석유 금융 철도로 천문학적인 돈을 모은 사람들.
이들 귀족이 활개친 1920년대 소득세율은 단 1%였다. 돈만 벌면 누구든 부자로 만들어준 세상. 이 소득세율은 1963년 91%까지 치솟았다. 자본주의 본산 미국에서도 번 돈 중 9할 이상을 세금으로 뜯어간 적이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상속세도 1920년대는 20%쯤, 법인세는 그보다 낮은 15%에 불과했다.
부자들에겐 참으로 좋았던 시절-허나 1929년 대공황은 모든 걸 바꿔놨다. 주먹구구식인 국가가 시스템을 정비하고 사회 안전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그것을 창조한 인물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른바 뉴딜정책이다.
루스벨트 첫 임기 때 소득세율을 63%로, 두 번째 임기 때는 79%로 올렸다. 1963년에는 냉전부담금을 빌미로 앞서 말한 대로 91%까지 올린 것. 그 옛날 부자들의 화려한 저택, 한 무더기의 하인부대, 귀족들의 화려한 무도회는 사라져 갔다. 1940~1960년대 초반 이른바 대압착 시대(Great compression)-다시 말해 빈부격차가 가장 좁아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살던 시대-1929년 상위 0.1%가 부의 20%를 소유했으나 1950년대에는 10%로 반 토막 났다.
법인세는 대공황의 해인 1929년 14%이던 것이 1955년엔 45%까지 치솟았다. 상속세 상한세율은 20→45→60→77%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거쳤다. 미국 상류층은 들끓었다. "루스벨트는 배신자야!"라고 외치면서….
뭐든 지나치면 반작용이 일어나는 법. "미국을 소득세 상속세 규제가 없던 시대로 되돌려 버리자"는 보수주의 운동이 1965년께 싹텄다. 부자들의 돈과 배경으로 뭉쳤다. 80년대 레이건이 해결사로 나섰다. 그리하여 정비된 게 현행 세율체계로 소득세 최고 35%, 법인세 최고 30%로 각각 조정돼 우리나라보다 높다. 현재 부시 대통령은 상속세 폐지를 공약으로 하여 당선된 당사자다.
2007년 말 현재 미국 상위 1% 부가 차지하는 몫은 도금 시대라는 1900년보다 2%쯤 많다.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시대가 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공화당에 염증을 내고 민주당 후보는 흑인이든 여성이든 OK라는 생각이 잠시 유행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와 매케인 간 대결의 이면엔 이런 세금전쟁의 한자락이 깔려 있다.
한국인에게 세금은 무엇일까. 월급을 받는 날 명세서를 보고 세금이 한뭉텅이로 베여 나가는 걸 보면 얼른 가렴주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국가는 세금을 때리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하니 고로 존재한다는 그런 좋지 않은 느낌. 사실 국내에서는 세율 조정으로 부자와 빈자로 갈린다는 그런 생각까지는 국민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2008년 9월 1일 한나라당이 사상 최대 감세쇼를 펼치자 상황은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제 탁월한 재정학자 머스그레이브가 주장했던 부의 소득배분 효과가 아주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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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엔 22명, 1925년 32명으로 불어나더니 1957년엔 16명으로 쪼그라들고 1968년엔 13명으로 찬물에 담근 듯 더욱 줄었다. 그러던 것이 2007년 말 기준으로는 다시 160여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태다. 이런 계산을 하여 발표한 사람은 브래퍼드 들롱(Braford DeLong) 버클리대학 교수다. 그런데 왜 초갑부들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거지? 주식 혹은 부동산 가격 상승 때문에?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세금' 때문이라고 폴 크루그먼은 날카롭게 분석했다. 크루그먼은 노벨경제학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존 베이츠 클라크상 수상자니까, 그의 말이 맞겠지.
한국으로 대입해 보면 도시근로자 평균 월소득은 256만3000원이니까 여기에 12개월을 곱하고 2만명을 다시 곱하면 6152억원을 1년에 버는 사람은 들롱이 말하는 '한국의 억만장자'에 해당한다. 그런 이가 몇 명인지는 정부가 통계를 쥐고 안 가르쳐 주니 알 도리가 없다.
하여튼 한 가문이 대(代)를 이어 부자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것이 세금이다. 왜 세금이 중요한가? 한국은 연구가 부족하니 미국 역사를 되짚어가보자. 1870년 이후 산업혁명으로 역사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자본이 형성되고 타이쿤들이 생겨났다. 카네기 록펠러 모건 굴드 같이 철강 석유 금융 철도로 천문학적인 돈을 모은 사람들.
이들 귀족이 활개친 1920년대 소득세율은 단 1%였다. 돈만 벌면 누구든 부자로 만들어준 세상. 이 소득세율은 1963년 91%까지 치솟았다. 자본주의 본산 미국에서도 번 돈 중 9할 이상을 세금으로 뜯어간 적이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상속세도 1920년대는 20%쯤, 법인세는 그보다 낮은 15%에 불과했다.
부자들에겐 참으로 좋았던 시절-허나 1929년 대공황은 모든 걸 바꿔놨다. 주먹구구식인 국가가 시스템을 정비하고 사회 안전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그것을 창조한 인물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른바 뉴딜정책이다.
루스벨트 첫 임기 때 소득세율을 63%로, 두 번째 임기 때는 79%로 올렸다. 1963년에는 냉전부담금을 빌미로 앞서 말한 대로 91%까지 올린 것. 그 옛날 부자들의 화려한 저택, 한 무더기의 하인부대, 귀족들의 화려한 무도회는 사라져 갔다. 1940~1960년대 초반 이른바 대압착 시대(Great compression)-다시 말해 빈부격차가 가장 좁아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살던 시대-1929년 상위 0.1%가 부의 20%를 소유했으나 1950년대에는 10%로 반 토막 났다.
법인세는 대공황의 해인 1929년 14%이던 것이 1955년엔 45%까지 치솟았다. 상속세 상한세율은 20→45→60→77%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거쳤다. 미국 상류층은 들끓었다. "루스벨트는 배신자야!"라고 외치면서….
뭐든 지나치면 반작용이 일어나는 법. "미국을 소득세 상속세 규제가 없던 시대로 되돌려 버리자"는 보수주의 운동이 1965년께 싹텄다. 부자들의 돈과 배경으로 뭉쳤다. 80년대 레이건이 해결사로 나섰다. 그리하여 정비된 게 현행 세율체계로 소득세 최고 35%, 법인세 최고 30%로 각각 조정돼 우리나라보다 높다. 현재 부시 대통령은 상속세 폐지를 공약으로 하여 당선된 당사자다.
2007년 말 현재 미국 상위 1% 부가 차지하는 몫은 도금 시대라는 1900년보다 2%쯤 많다.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시대가 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공화당에 염증을 내고 민주당 후보는 흑인이든 여성이든 OK라는 생각이 잠시 유행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와 매케인 간 대결의 이면엔 이런 세금전쟁의 한자락이 깔려 있다.
한국인에게 세금은 무엇일까. 월급을 받는 날 명세서를 보고 세금이 한뭉텅이로 베여 나가는 걸 보면 얼른 가렴주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국가는 세금을 때리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하니 고로 존재한다는 그런 좋지 않은 느낌. 사실 국내에서는 세율 조정으로 부자와 빈자로 갈린다는 그런 생각까지는 국민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2008년 9월 1일 한나라당이 사상 최대 감세쇼를 펼치자 상황은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제 탁월한 재정학자 머스그레이브가 주장했던 부의 소득배분 효과가 아주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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