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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만난 사람]좌편향 논란, 교과서 집필자 김한종 교수

설경. 2008. 9. 12. 08:50

[내일신문]

“교과서가 아니라 사람 마음이 편향됐다”

학계 연구성과, 좌편향 공격 안돼 … “교육을 정치에 종속시키려 하나”

최근 전국시도교육감들이 좌편향적인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도록 일선학교를 지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말한 역사교과서는 금성출판사가 발간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이다.

이 교과서는 이번뿐 아니라 보수단체들에 의해 여러 차례 좌편향 논란에 휩싸였다. 현재 이 책은 전국 고등학교의 절반 가량이 채택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대표적인 좌편향 서술로 지목된 교과서의 집필자인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김한종 교수의 입장을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들어보았다.

-시도교육감까지 나서 교과서 편향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가.

교과서 내용은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서술된 것이다. 교과서 내용이 편향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970~80년대 중반에 발간된 교과서 내용과 다르다고 해서 편향됐다고 주장한다면, 그 시기의 교과서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보수진영에서는 교과서가 해방직후 상황을 기술하면서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근현대사 교과서의 어느 부분에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이라고 서술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은 자신들의 눈에 교과서 서술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인데, 이는 트집을 잡기 위한 억지 해석이다.

이들이나 일부 언론의 말을 그대로 믿기 전에 한번 교과서 내용을 직접 확인해보기 바란다.

-보수단체들은 저자가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근거로 새마을운동보다 천리마운동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것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서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서술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하면, 경제발전의 문제점은 일절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이 부분은 교과부 전 장관까지 문제를 제기했던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새마을운동보다 천리마운동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는 것도 트집을 잡기 위한 억지 주장이다. 이 부분도 교과서를 직접 확인해보기 바란다.

새마을운동과 천리마운동은 비교, 서술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새마을 운동은 경제·사회·문화를 다루는 단원 본문에, 천리마 운동은 북한의 변화를 다루는 단원에 자료로 소개되어 있다.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의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소득이 높아졌으며, 농민들 사이에 잘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겨났다는 효과를 비중 있게 서술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주도해 박정희 정부의 독재와 유신 체제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는 문제점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천리마운동에 대해서는 북한 주민의 노동력을 최대한 동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1960년대 전반에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대중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고 서술했다.

새마을운동은 본문에, 천리마운동은 읽기자료로 서술되어 있으며, 서술 분량도 새마을운동이 많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천리마운동이 북한에서 한 역할을 서술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새마을운동보다 천리마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새마을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무조건 편향된 역사서술이 될 것이다.

-좌편향 기술을 제기하는 보수진영의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는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것을 내세워 정부의 모든 통치행위를 정당화하고, 이를 비판하면 편향되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이 정치·경제적으로 이처럼 발전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통치행위뿐 아니라 온 국민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를 이승만이나 박정희와 같은 통치자 개인의 치적으로만 보려고 한다.

더구나 이들은 통치자뿐 아니라 재벌과 같은 기업이나 미국을 비판하면 모두 ‘좌편향’이라고 몰아붙이려고 한다.

아직도 맹목적인 이념논쟁이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역사인식이 우리 사회와 자라나는 후세의 교육에 긍정적일지 묻고 싶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가.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역사교과서가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에 만들어졌으므로 그 내용도 편향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겉으로는 교과서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지난 정부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렇지만 교과서 내용을 서술하는데 지난 정부의 간섭을 받은 적은 없다. 더구나 교과서 내용의 토대가 되는 교육과정(제7차 교육과정)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그 이전인 김영삼 정부 때 만들어진 것이다.

-학계의 검증을 받은 적이 있는가. 받았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학계의 검토가 있었다.

지난 2004년 10월 대표적인 학회인 역사교육연구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가 공동으로 한국근현대사교과서의 편향성시비를 주제로 한 연합심포지엄을 열었다.

당시 심포지엄에서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1980년대 이후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했을 뿐 별다른 편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이후 한국사 자료를 수집하고 한국사를 연구하는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도 한국근현대사교과서를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도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이 편향되었다고 보고 있지 않다. 그 밖에 한국근현대사 전공자들도 여러 차례 같은 견해를 밝힌바 있다.

역사학계와 근현대사 연구자 대부분, 국사편찬위원회도 문제가 없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는데 교육감들이 좌편향됐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정부나 출판사로부터 기술 내용을 수정하라는 압력을 받은 적이 있는가.

교육부는 여러 차례 전경련이나 대한상의와 같은 경제단체나 보수단체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비판 내용을 출판사와 집필자에게 전달하고, 그 비판 내용을 어떻게 반영하였는지 의견을 첨부할 것을 요구했다.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라는 압력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비판 내용을 검토해 그 중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주장은 이미 반영해 교과서 내용을 수정했다.

-이번 문제가 앞으로 교과서 집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교과서는 물론 학교교육 전반의 자율성을 크게 억압하고, 교육내용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학교장이나 교사들은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교육감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들어할 것이다. 이는 결국 교과서 채택의 자율성을 해치게 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 교과서를 집필하는 사람들이 정부가 원하는 역사해석이 무엇인지 눈치를 보아서 서술하는 ‘자기검열’이 훨씬 늘어날 수 있다.

또한 교육부가 교과서 검정과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교과서 내용에 대한 간섭이 커질 것이다.

결국 이는 교과서를 다양화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서 교과서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검정제도의 취지를 크게 손상시킬 것이다. 특히 교육을 정치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교육감들과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문제를 일으킨 교육감들이 먼저 발표내용을 철회하고 국민과 교사들에게 사과하기 바란다. 또 앞으로 이와 유사한 행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기 바란다.

그래야 교육이 정치에 종속되지 않고, 교사들이 마음 놓고 역사를 가르칠 수 있으며 더 좋은 교과서가 개발될 수 있다.

교육감들이 해야 할 일은 이처럼 교과서 내용을 통제하고 채택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도록 자료를 수집한다든지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교육감뿐 아니라 교육부를 비롯한 다른 정부기관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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