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엄지족 할머니’ 치매걱정 없어요

설경. 2008. 9. 18. 09:21


21일 세계치매의 날을 통해 본 치매예방법

노년층에겐 ‘디지털 라이프’가 치매를 예방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요즘 컴퓨터, 휴대폰 등 우리를 둘러싼 디지털 환경은 인간의 기억 능력 상당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형제, 친한 친구 전화번호도 모르고, 유행가 가사도 한 소절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굳이 외우지 않아도 휴대폰, 노래방기기에 입력돼 있어 별 어려움이 없어서다. 이런 환경의 영향으로 젊은 층에서도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른바 ‘디지털 치매’란 증세다. 그러나 이런 디지털 환경도 잘만 활용하면 노인 층의 치매 예방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휴대폰 메시지 사용법 배우면 치매 예방 도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의 이재홍 교수는 “디지털 저장장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젊은 층에는 디지털 치매와 같은 생활건망증이 올 수 있지만, 평소 두뇌를 쓸 일이 별로 없는 노인들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면 두뇌에 자극이 돼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치매는 정상적인 뇌 기능에 이상이 생겨 신경 기능과 성격에 장애가 오면서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 지장을 초래하는 질환이다. 기억장애, 언어장애, 시공간능력과 계산력 저하, 망상, 환각 등이 주요 증상이다. 이 중 알츠하이머병처럼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지는 퇴행성 질환이 50~60%의 비중을 차지한다. 알츠하이머병은 원인과 치료법이 뚜렷하지 않은 난치병이지만 두뇌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전문의들은 권고하고 있다.

노인들에겐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상당한 두뇌 활동이다. 50, 60대만 해도 휴대폰이 있으면서 문자 메시지 사용법을 모르는 이들이 꽤 된다. 이들이 그 방법을 배우면 뇌에 건강한 자극이 가해진다. PC를 통한 인터넷 서핑과 TV 조작을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마우스의 화살표와 커서를 원하는 위치에 놓고 클릭하기 위해 손 동작을 취해야 하고, 이런 행위가 마치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이 발달하는 원리처럼 뇌를 발달시킬 수 있다.

최근 여러 연구에 따르면, 정상인의 뇌줄기세포에서는 하루 수천 개씩 뇌신경세포가 만들어지고 ‘가지치기’를 한다. 김양래휴신경정신과의 김양래 원장은 “노후에도 낯선 디지털 기기 조작법을 배우는 등 두뇌 활동을 꾸준히 하면 뇌에 새로운 자극이 가해지면서 생리학적으로 뇌신경이 가지를 많이 치고 뻗어나가 두뇌 기능이 활성화된다”고 설명했다.

노인들은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학습능력이 저하돼 있다. 그래서 여러 번 가르쳐줘도 잘 따라 하지 못한다. 하지만 반복해서 배우다 보면 대부분 기억을 해내고 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인지재활의 하나로도 활용할 수 있다. 비단 예방에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발병한 상황에서도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재홍 교수는 “환자 자신은 일상생활에서 머리를 쓸 만한 일거리를 끊임없이 찾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뇌 기능이 보존될 수 있다. 두문불출한 채 아무 일도 안 하면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도 손빨래, 화초 물주기 등 안전한 일감을 계속 환자에게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머리만 쓰지 말고 몸도 써야 혈관성 치매 막는다’

치매 중엔 혈관성 치매도 30%가량 된다. 뇌졸중으로 생긴 뇌 기능 이상을 뜻한다. 더욱이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된 환자 중 3분의 1가량이 순수 알츠하이머병 외에 뇌졸중의 일종인 뇌경색을 동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결국 뇌졸중을 예방해야 치매도 예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뇌졸중 예방은 익히 알려진 대로 고혈압, 비만, 당뇨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올바른 식습관과 적당한 운동이 필수다.

치매를 완벽히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현실적인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치매를 초기에 진단하면 약물요법을 통해 질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과 정인과 교수는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에 금연, 절주로 젊을 때부터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며 “이와 더불어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스트레스에 민감하지 않도록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이달 초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급속하게 고령사회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치매 발병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체 노인 중 8%가 넘는 42만 명이 치매로 고생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환자 본인은 물론 돌보는 가족들의 심적 경제적 고통이 엄청나다. 오는 21일은 치매의 심각성을 상기시키고자 제정된 ‘세계 치매의 날’이다.

조용직 기자(yj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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