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명화, 생각의 캔버스]붓과 캔버스=만국언어

설경. 2008. 10. 21. 17:03


[동아일보]

창세기의 에덴동산… 비너스여신… 구성-채색만으로 무엇이든 우리 눈앞에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합니다. 창조주가 흙을 가지고 첫 인간을 빚어내고, 또 남자의 몸에서 여자를 떼어낸 것은 성서의 창세기 편에 실려 있지요. 그러나 이들은 따먹지 말라는 과일을 먹고는 눈이 밝아져서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숲에 숨어 있다가 그 모습을 들키는 바람에 저주를 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지요.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었어요. 성서에 기록된 내용은 무엇이든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

[?] 그림에는 내용과 형식이 있어요. 이 둘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생각해볼까요? 또 그림에는 줄거리가 담겨 있어요. 성서와 신화는 서양 미술의 주제를 제공해주는 가장 큰 보물창고지요. 글이 그림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생각해봅시다.

그림 1은 아담과 이브를 소재로 그린 작품입니다. 크고 두꺼운 책 속에 들어 있는 낱장 그림이지요. 채색 기도서의 한 쪽을 네 칸으로 나누어서 창세기의 사건을 보여주네요. 한 칸씩 위에서부터 아래로 줄거리가 진행됩니다.

맨 위쪽 칸에는 아담의 창조 장면과 잠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는 창조주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뒤쪽에는 창조주의 놀라운 솜씨에 감탄하는 천사가 둘 보입니다. 둘째 칸에는 아담과 이브를 짝으로 맺어주는 장면과 이 나무의 과일을 따먹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모습이 보이네요. 아담과 이브는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하게 생겼네요. 부부가 닮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 봐요. 창조주가 수염도 안 난 젊은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띕니다. 그 다음 셋째 칸에는 뱀의 유혹에 빠져서 먹어서는 안 된다는 사과를 몰래 나누어 먹는 두 사람과, 부끄러운 곳을 가린 채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창조주에게 들켜서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군요. 마지막으로 맨 아래 칸에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다음에 허리를 구부리고 밭갈이하는 아담과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는 이브가 보이네요. 모두 네 칸으로 이루어진 낱장 그림을 4등분해서 하나로 이어붙이면 기다란 두루마리 그림이 될 것 같네요.

우리가 읽는 책은 대개 왼쪽이 묶여 있어서 한 장씩 넘겨가면서 읽게 되어 있지요. 그런데 이런 네모난 책, 곧 코덱스가 발명되기 전에는 기다란 두루마리를 책으로 썼다고 해요. 보통 때는 동그랗게 말아서 보관하다가 두루마리를 펼치면 글이나 그림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담과 이브를 그린 이 그림은 네모나기는 하지만, 실은 예전 두루마리 책의 형식을 빌려왔군요.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인간의 탄생과 유혹에 따른 타락과 추방에 대한 이야기를 공부했을 테지요. 화가들은 비록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를 본 적이 없지만, 성서의 기록에 충실하게 그림을 그리려고 애썼어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성서가 어려운 라틴어로 씌어져 있어서 어지간한 학식을 갖추지 않고는 읽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화가들은 신부나 사제에게 성서의 내용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곤 했지요.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림은 글을 아는 사람에게 책과 같다”는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의 말씀처럼,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은 교회로서도 무척 중요했어요. 성서를 읽지 못하는 까막눈들은 그림을 보면서 삶의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심지어 외국인이라도 그림을 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니, 그림을 가리켜서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만국언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림 2는 르네상스 화가 보티첼리의 작품입니다.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사실은 ‘키프로스 섬에 도착한 비너스’라고 불러야 옳을 것 같네요. 바닷바람에 떠밀려온 여신을 영접하기 위해 바다 밑에서 없던 섬이 하나 불쑥 솟아올랐다고 해요. 그 섬이 바로 키프로스 섬이지요.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아프로디테 송가’에는 바다의 물거품에서 탄생한 아프로디테가 파도를 헤치고 키프로스 섬에 도착해서 계절의 여신들로부터 시중을 받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어요.

여기서 아프로디테는 비너스의 그리스식 이름이지요. 비너스는 아름다움의 여신답게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고 있어요. 금빛 아침햇살을 받으며 수줍은 듯 가슴을 가리고 서 있는 비너스의 자태는 마치 손을 내밀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어요. 또 여신의 휘날리는 금발머리와 다른 등장인물들의 펄럭이는 옷자락이 그림에 생동감을 더해주네요. 바닷바람에는 장미향기가 가득하고, 키프로스 섬의 푸른 숲에서는 오렌지나무가 윤기 나는 가지를 뻗어 비너스의 도착을 반깁니다.

화가 보티첼리는 어려운 고전을 읽을 만한 실력이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훌륭한 조언자가 있었어요. 피렌체의 철학자이자 인문학자로 명성을 떨친 안젤로 폴리치아노가 호메로스의 송가를 읽고 보티첼리에게 비너스의 탄생에 얽힌 신화를 설명해주었다고 해요. 마치 중세 시대의 화가에게 신부님이 성서의 줄거리를 설명해주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잉크와 종이로 이루어진 여신이 이처럼 아름답고 생기 있게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네요. 화가는 구성과 채색의 살붙임을 통해서 우리를 단숨에 창세기의 에덴동산이나 호메로스의 키프로스 섬으로 데려갑니다. 신화를 상상하는 보티첼리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지중해의 푸른 바닷바람이 귓불을 간지럽게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네요.

보티첼리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척 용기가 필요했다고 해요. 비너스는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인데, 바로 이 점이 말썽이었어요. 고대 신화는 이교도들의 종교라고 해서 교회의 조롱과 타박을 받았거든요. 이교도의 여신을 벌거벗은 알몸으로 그려놓으면 교회에서 좋아할 리가 없었지요.

그러나 보티첼리는 고대의 문화와 예술을 열린 눈으로 바라보았어요. 성서와 신화를 구분 짓지 않고 예술의 세계에서 조화시키려고 애썼지요. 고대 신화를 이교도라고 깔보지 않고, 옛 선조들의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거지요. 비록 어려운 라틴어는 모르지만 당대의 철학자와 인문학자들과 사귀고 우정을 나누면서 예술의 진작을 위해 땀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어요. 아마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 고대의 부활을 의미하는 르네상스의 탄생을 상징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노성두 서양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