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논술通 테마筒]‘인문학’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은?

설경. 2008. 10. 21. 17:07

[동아일보]

관련 학과 통폐합…강좌 잇단 폐강… 관련 서적은 줄고…

1. 인문학의 위기와 현실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은 2006년 ‘인문학 선언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이 처한 위기 상황을 말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요지는 실용 과학 중심, 취업 중심의 대학 교육 풍토에서 한국의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고 그 가치마저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대학이 취업이 안 된다, 입학생이 없다 등의 이유로 철학과를 비롯한 인문학과를 통폐합하고 있다. 인문학 강좌는 잇달아 폐강되고, 성과주의와 실적 계량주의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정부 및 대학의 연구 지원은 해마다 감소하는 중이다. 인문학과 관련된 서적들도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인문학은 점점 자신의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2. 인문학 위기의 원인

인문학자들이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는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대학의 시장화와 사회의 물질주의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절하되고 있다. 경쟁과 효율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고, 실용·취업 중심의 교육을 지향하는 대학에서 인문학은 외면 받게 됐다. 국민들의 관심 역시 자신의 상품적 가치를 높이거나 재테크로 수익을 올리는 데 집중되어 있어 인문학적 가치와 소양은 사회적으로 무시되는 흐름이다.

둘째, 인문학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하다. 정부는 이공계열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이들 학과에 대해서는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 관련 학과에 대해서는 연구 지원이 매우 부족한 상태다. 지난해 국내 연구개발 투자예산 가운데 인문학 관련 부문의 지원금은 556억 원으로 전체의 0.7%에 불과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해온 BK21 사업에서도 인문학 분야에 대한 지원금은 과학 기술 분야의 8분의 1에 불과한 실정이다.

셋째, 인문학 자체가 변화하는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인문학이 변화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성찰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대중과의 소통 부재로 현실과 괴리됐다는 지적이다. 현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인문학은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는 따끔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3. 인문학 위기 선언의 의미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궁극적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학은 시대를 초월하여 가꿔가야 할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무차별적인 시장 논리와 효율성을 맹신하기 쉬운 현대 사회나, 과학 기술이 가져다준 풍요로움과 편리함에 길들여져 삶의 내면을 성찰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인문학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 그냥 넘기기 힘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의 인문학 선언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있다.

세계화의 급류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충돌을 해소하고, 문화적 다양성에 입각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국제사회를 건설하려면 인문 정신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인문 정신을 경시한 채 과학 기술만 발전시킨 사회는 기존의 사회 운영 원리와 도덕이 해체되고, 생명이 경시되는 피폐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인문학은 기술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문화적 파장에 대해서 성찰하고 과학적 탐구의 윤리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대안이다.

이명우 ㈜엘림에듀 대표 집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