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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청년 김민석, 최고위원 김민석

설경. 2008. 11. 21. 21:15

1985년 5월3일부터 나흘간 미국문화원(당시 을지로 롯데호텔 맞은편 소재)을 서울시내 소재 5개 대학생 73명이 기습 점거해 농성한 이른바 ‘미 문화원 점거농성사건’이 발생했다.

학생들은 △80년 5월의 광주항쟁 당시 미국이 한국 공수부대 등의 투입에 동의했는가 △미국이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을 따져 묻기 위해 미 대사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후 학생들은 농성을 풀고 스스로 경찰에 연행됐다. 검찰은 이들 중 20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했다.

이 사건의 핵심 주동자는 김민석(서울대 학생회장), 함운경(서울대·현 통합민주당 당직자), 신정훈(고려대·현 나주시장)군 등이었다.

이 사건은 전두환 군부정권 출범 이후 강권 통치에 숨을 죽여오던 학원가에서 대규모 반정부 운동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신호탄이 됐고 이후 학내외의 민주화운동에 불길을 댕겨 87년 6월항쟁을 이끌어냈다.

나는 당시 신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공동대표 김대중·김영삼)의 인권옹호위원장으로서 농성기간 중 학생들과 간접 대화했고, 그들이 구속된 이후에는 변호인 단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변호했다. 지금 이 순간 김민석군 등이 법정에서 추호도 흔들림 없이 당당하고 논리정연하게 자신들의 정당성과 군부독재정권의 폭압통치를 비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법정에서 변호인이기 전에 이들이 나의 아들이라는 눈으로 바라보며 너무나도 의연하고 품격 높은 태도에 속으로 눈물을 감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사건 재판은 언론통제 아래서도 국내외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김민석군은 이 사건을 통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별이 되었다.

나의 뇌리에 김민석군은 순수, 순진, 단호, 열정, 티끌 한 점 없는 애국 청년으로 남아 있다.

어느덧 그로부터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시간이다. 김민석군은 김민석 의원으로,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세속의 정계에서 승승장구했다. 나는 유심히 지켜보고 가슴으로 성원하고 위대한 정치지도자가 되기를 기원해 왔다.

지금 나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민주당 당사에서 집행을 거부하며 농성 중인 김민석 최고위원의 모습을 TV로 지켜보고 있다. 사건의 자세한 경위를 나는 알 수 없다. 아니, 알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답답하고, 안타깝다. 없었더라면 좋았을 일이 그에게 일어난 것은 정말 가슴 아프다. 김 최고위원에게 바란다. 23년 전의 그 순수했던 민주화투쟁의 열정으로 돌아가 양심에 한 점 부끄럼 없는 결단과 처신을 하라.

김민석 최고위원, 그때 그 한여름 지옥 같은 서대문형무소 징벌방에서 나와 변호사 접견실로 걸어 들어오면서 나를 바라보고 환히 웃던 김민석군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박찬종 |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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