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수능 결과를 기다리는 부모들에게

설경. 2008. 11. 24. 18:13

[한겨레] 진로·진학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

벌써 수능 시험을 본 지가 2주가 다 되어가고 또 앞으로 2주 정도 지나면 수능 성적이 발표된다. 잘 본 사람이거나 못 본 사람이거나 그 결과가 궁금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초조한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수능 발표일 새벽에 인터넷에 올린 어떤 학생의 일기가 모든 수험생의 마음을 잘 나타내는 것 같아 인용해 본다.

“오늘은 수능 성적 발표날이다. 개인적으로는 수능을 말아먹었기 때문에 그다지 반갑지 않다. 온통 수능에 대한 이야기이니 머리가 아프다. 수능을 잘 친 학생들에게는 반갑겠지만 말아먹은 학생들은 미칠 노릇인데…. 학교 가서 우는 거 아닐까? 지금도 감정이 푹푹 하는데. 아…. 맘을 다스리고 준비하자.”

수험생도 수험생이지만 부모도 초조하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와 같이 앉아 마주 보고 답답해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이 상황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평범하지만 비범한-한 청년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중고생 때 공부하기는 싫고 늘 놀고 싶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도 어렵고 공부해 놓은 것도 없어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공장에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가을 무렵부터 공부를 조금 해서 전문대학에 들어갔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갔다 온 것까지는 남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복학해서 우연한 기회에 일본의 자매결연 대학으로 가는 유학 공고를 보았는데 일본어를 전혀 못하지만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남은 기간은 6개월! 학원비가 비싸서 학원 다닐 처지는 안 되고 공부할 방법은 찾아야겠기에 그 학교의 관광학과에 찾아가 낯모르는 일본어 교수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다. 그 교수의 배려로 6개월 동안 매달려서 일본 유학 선발에 합격했다.

유학 가는 대학이 단기대학(우리나라의 전문대)이었는데, 일본으로 가는 도중에 배에서 만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이왕 시작한 거 국립대학으로 편입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단다.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열과 성을 다해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한 덕에 돈을 더 받기도 하고 졸업 무렵에는 정식 직원 채용 제의까지 받게 됐다. 그러나 그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뜻한 바대로 국립대학 편입 시험에 합격해서 그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가? 우리 아이가 이런 정도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갖는다면 부모가 얼마나 좋을까? 지금 수능 성적이 좀 못 나온다고 해도 걱정할 것이 아닐 것이다. 지금이 아이에게 책임을 가르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어떻게 하는 것이 책임지게 하는 것일까? 영화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누군가가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줄까요? 아니면 인내심을 발휘할 기회를 주시려 할까요? 용기를 달라고 하면, 신은 용기를 줄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줄까요?”

지금이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부모가 아이의 안타깝고 힘든 점을 알아줄 수는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정보를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정은 온전히 자기 몫인 것이다. 이제 그럴 나이도 되었고 그럴 능력도 충분히 갖추었다.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아이의 삶에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멀게 만드는 것은 없다. 남관희 한국리더십센터 전문교수·한국코칭센터 전문코치 khnam@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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