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회 사건이 재심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26년 만이다. 그런데 무죄보다 더 뜻있는 일이 법정에서 벌어졌다. 재판부가 과거의 잘못된 재판을 진심으로 반성했던 것이다. “그동안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심적 고통을 주고, 사법부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 데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사죄드립니다.” 재판장인 이한주 광주고법 부장판사의 판결문은 반듯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떠한 정치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책무에 충실하겠습니다. 앞으로 재판부는 좌로도, 우로도 흐르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겠습니다.” 이 판사는 또 이렇게 약속했다. “법대(法臺) 위에서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소신으로 판사직에 임하겠습니다.” 공판이 끝난 후 피고인과 가족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법정의 경위들이 이를 제지하려 하자 이 판사는 “말리지 말라”고 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그러나 판결로는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사연, 핏빛 절규가 있다. 이는 판사가 대신 말해야 한다. 이 판사가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었기에 비로소 ‘죄없는 피고인들’은 세상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 온갖 잘못된 판결로 정의와 양심을 속였음에도 ‘60년 사법부’는 진실로 국민 앞에 사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판사는 진심으로 엎드렸다. 법정은 향기로웠다. 피고인들이 서로를 껴안고 만세를 부른 것은 무죄 선고가 아닌 이 판사의 ‘사죄’ 때문이었다. 내일이 수상한 요즘, 광주지법 301호 법정에서 희망을 보았다.
<김택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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