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재해라는 말이 농촌에 유행입니다. 큰물이 없었고, 가뭄도 이겨낼 정도로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닥친 태풍도 한반도를 피해 갔습니다. 싹을 틔운 작물은 모두 튼실한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배, 사과, 감 값이 떨어졌습니다. 땅끝 해남에선 배추를 갈아엎는 굿이 벌어졌습니다. 풍년은 재앙이고 농민은 풍년가를 부르지 않습니다. 고구마 10kg에 1만5000원 합니다. 고구마 10kg을 캐내려면 손에 피멍울이 맺힙니다. 이제 농민은 태풍이 한반도를 적당히 쓸어주기를 기도해야 할 판입니다. 추석 MB물가 중점 관리 품목 21개중 16개가 농산물입니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추진합니다. 1080개 농산물 품목이 개방되고 날마다 농민은 이 숫자만큼 농촌을 등질 것입니다.
강남에서 용 나오는 시대
이 정부는 농업을 도저히 경쟁력 없는 산업으로 낙인찍고 포기합니다.
정부는 법인세, 양도세, 소득세를 낮춥니다. 모두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입니다. 20% 국민을 80%가 먹여 살린다는 전통적 의미의 소득 불균형 이론은 대한민국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전체 국민 1%를 위한 감세 조치는 서민의 허리띠를 마지막까지 채우도록 강요합니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개천에는 용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강남에서 용 나오는 시대입니다. 이 정부는 교육받을 권리마저 그 좋은 시장에 내다 팔고 국제중을 가지 않으면 글로벌 인재가 아니라고 선전합니다. 지난 1년간 상위 소득 계층 20%는 사교육비가 20% 늘었습니다. 우리네는 아이들 학원비를 마련하려고 술 담배 끊고 모진 세월을 버텨봅니다.
가구 합산 18억원이 없는 서민은 부동산세를 면제받는 대신 IMF보다 힘들다는 혈압인상 시대를 찬물 먹고 버텨야 합니다.
‘좌파정권 10년’이 무너지고 이명박 정권이 섰습니다.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내용적 민주주의를 완성해 왔습니다. 간접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로, 거대 담론을 생활 담론으로 확장시켜 왔습니다. 독재란 무엇입니까? 토론과 합의에 기초하지 않은 일방통행적 정책을 남발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힘으로 제압하고 때론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실천 양태입니다. 이 정부는 그간 우리가 이룩한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비판할 자유를 억압하고자 합니다. 언론사에 경찰을 동원해 사장을 해임시키고, 자신과 친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고 촛불시위를 좌익세력의 배후조종으로 폄훼하고 집회할 때 마스크를 쓰면 불법이고 피해를 본 상인들이 시위대를 상대로 집단소송할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자신들을 위기로 내몰았던 인터넷에 사이버 모욕제를 신설하고 말입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민주주의가 필요없습니까? 이 정부는 일단 경제부터 살리고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폭등하고 물가는 오르고 실업자는 늘어갑니다. 시장만능주의시대에 우리 서민들은 시장 가기가 두렵습니다.
서민 등지면 망국의 길
군부독재 시절에도 살아있었던 남북간 직통전화가 끊어졌습니다. 남북을 오가는 육로가 전면 차단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전혀 없다는 말로 들립니다. 건강이상설이 나돌던 북한 지도자는 멀쩡하고 곧 붕괴되리라던 북한사회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삐라는 북한으로 날아가고 북한을 거친 겨울 철새는 남쪽으로 내려오겠지요. 개성공단이 문을 닫기 전에, 이산가족이 더 늙기 전에 남북관계가 풀려야 합니다.
지방을 버리고, 농업을 버리고, 서민을 등지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정책이야말로 망국의 길입니다.
11월까지 버티던 고추나무가 지난밤 된서리에 다 죽었습니다. 그간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했네요.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더 춥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고추나무가 다 서리를 맞았겠지요.
<강광석 | 전농 강진군·농민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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