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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구체제와의 마지막 전쟁 / 우석훈

설경. 2009. 6. 12. 08:50
[한겨레] 서거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새 시대의 첫 사람이 아니라 구시대의 마지막 사람이 될 것 같다고 한 말이다. 이 말은 여전히 가슴에 아프게 남는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인가, 아니면 아직은 너무나 튼튼하게 남아 있는 한국 주류세력의 폐쇄성에 대한 절망인가? 한국은 신분제 사회가 아니고, 일제와 6·25를 거치면서 이른바 만석꾼·천석꾼 같은 전통적 부자들과 사대부 가문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상당수 몰락했다. 그야말로 새로 만든 경제이고, 전례없이 새로 만들어낸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절은 한국을 규정하는 한 단어이다. 노무현은 새 시대를 만들었을까? 확실히 그렇게 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새 시대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민중들이 보았다, 이건 사실인 것 같다. 지금의 대통령을 보면서, 앙시앵레짐이라고 할 구체제가 복귀하는 것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지 않는가?

잠깐 눈을 들어 세상을 보자. 임진각에서는 오체투지단이 정부의 힘에 막혀 회항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이론학과 폐지라는, 세계적 흐름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거로의 회귀가 진행되는 중이다. 서울 거의 전역에서 토목세력이 철거민을 양산하고 있으며, 냉동고에서 주검 다섯 구가 눈을 못 감고 있다. 그리고 강을 따라서는 전국에서 토목세력의 반생태적인 자연하천 죽이기가 진행중이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제주로 가면, 강정마을에서는 생태보존지역을 군사기지로 바꾸려는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이 진행중이다. 확실히 지금은 한국의 짧은 경제적 도약이 만들어낸 기이한 토건세력,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경제 엘리트와 지방토호들이 토건시대로의 복귀를 획책하는 중이다.

한국의 마을은 토건세력에 의해 붕괴하는 중이고, 정부와 토건세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타운’에는 마을들이 생겨나지 않는다. 주민들은 돈이 없어 그곳에서 살 수가 없다. 그뿐인가? 지금 20대 중에서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뉴타운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국 여성 중에서 앞으로 지금 정부가 제시하는 비전 속에서 자기 삶을 온전히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토목 중심의 구체제로 복귀하면 여성, 20대, 지방 거주민, 이들에게는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세계적으로 클라이맥스를 지나 완화되는 중이지만, 토건형 신자유주의로 복귀하려는 힘은 한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생태, 문화, 젠더, 다양성, 이런 것들은 냉전주의형 토목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다. 그리고 지금 이 두 힘이 서울시청을 상징으로 하는 전국의 공사장에서 부딪치는 이 순간, 이건 바로 구체제와 신체제의 전쟁이다. 삽을 내려놓고 꽃을 들 것인가, 비정규직 체계를 내려놓고 정규직 체계로 전환할 것인가, 타운을 내려놓고 마을을 만들 것인가, 그리고 해군기지 대신 생태 클러스터를 만들 것인가, 이 두 가지 힘이 한국의 미래를 놓고 지금 전쟁을 벌이는 셈이다. 구체제의 특징은 강행이고, 신체제의 특징은 소통이다. ‘소통 없는 삽질’, 이게 이명박 정부의 특징 아닌가? 이걸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그 마지막 전쟁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공화국의 운명을 건 마지막 구체제와의 전쟁, 이게 노무현 서거 이후에 우리가 보는 현실이다. 한국 자본주의, 지금 위기이고, 한국 사회가 지금 위기이다. 꽃이 삽을 이기고, 무농약 상추가 불도저를 세우는 기적, 그 기적이 6월, 우리에게 재림할 것인가?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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