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사설] 입학사정관제가 몰고 올 수 있는 부작용도 봐야

설경. 2009. 6. 11. 11:35
서울대는 현재의 고2가 치르는 2011학년도 입시에서 입학정원 3114명의 38.6%, 1201명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능과 내신의 성적위주 입시에서 탈피해 창의성과 잠재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2009학년도 입시에선 294명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뽑았다.

대학이 학생의 종합적 능력과 가능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입시를 바꿔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대학이 신입생을 성적만 보고 뽑으면 고교 교육은 아이들을 '성적기계'로 키우게 된다. 비싼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게 돼 결국 자녀가 부모의 지위와 재산을 물려받는 '신분 상속'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입학사정관제를 일거에 대입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으로 보면 안 된다. 입학사정관제엔 그것대로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등 미국 명문 사립대들이 1920년대에 도입했다. 그 전까지 미국 대학은 학업능력을 기준으로 신입생을 뽑았다. 그랬더니 동유럽 출신 유대인 학생 비중이 급증했다. 하버드·예일·프린스턴은 성적이 뛰어나긴 해도 세련되지 않은 이민 자녀를 배제하고 능력은 좀 처지더라도 학교 재정에 기여할 상류층 자녀를 선발하려고 입학사정관제를 시행했다. 미국 대학의 초기 입학사정관제는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대학이 원하는 학생을 대학 마음대로 뽑기 위한 제도다.

집안 배경이 좋은 신입생을 선호하는 미국 명문대의 경향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2002년 하버드·예일·프린스턴의 동문 자녀 입학생 비율은 39·29·35%나 된다. 고교 졸업생 중 사립고 출신은 11%밖에 안 되지만 이 3개 대학 입학생 중 사립고 출신 비율은 37·43·47%다.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더라도 미국의 이런 부정적 측면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한꺼번에 급작스럽게 입학사정관제 비율을 늘리는 게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경험을 축적해가면서 앞서 간 나라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피할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